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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다시 ‘인간’을 생각한다
5월에 다시 ‘인간’을 생각한다
  • 이인우
  • 승인 2013.05.13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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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르 디플로’ 읽기

매년 5월 초만 되면 알레르기성 안질이 찾아온다. 나이가 들면서 면역력이 떨어진 탓이라고 한다. 처음 노안이 왔을 때의 심리적 충격만은 못하지만, 가려운 눈에 안약을 넣으며 부쩍 빨라진 육체의 조락을 실감하고 있다. 하필이면 신록이 눈부신 5월에 찾아오는 안질이라니…. 아무튼 그 지랄 같은 눈물의 봄도 이제 3년째니, 이 또한 지나가는 중일 것이다. 다음에는 육체의 다른 곳에서 다른 형태의 신호가 올 것이고, 나는 그 신호에 대처하는 일에 다시 얼마간 전념하게 될 것이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은 참으로 엄정하고 엄중하며 엄숙한 법칙이다. 그 피할 수 없는 우주적 진리 앞에서 한 개체의 노화야 찰나 같지도 않은 사건일 테지만, 인간 존재의 불가사의를 생각하면 그리 간단한 사건만도 아니다. 육체의 노화를 체감하며 은연중 함께 감지하게 된 정신의 변화 때문이다. 나는 뭔가 꼭 집어 말할 수 없지만, 나이가 들면서- 노화되면서- 조금씩 사고의 체적이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나라는 존재의 한쪽에서 조락이 진행되는 동시에 다른 쪽에선 성숙이 진행되고 있다고 할까.

문제는 그 변화하는 육체와 정신에 무엇이 담기고 있느냐다. 조락하는 육체에 약동하는 욕망은 가혹한 비대칭이지만, 성숙하는 정신에 통찰의 능력은 축복이다. 무엇을 담든 변화의 방향은 이런 쪽으로 잡아야 현명할 터, 노화를 피할 수 없더라도 인간이라면 늘 새로운 욕망과 이정표가 앞에 있어야 한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던 공자의 구도(求道)처럼, 진정한 인간성은 열정 안에서 생겨나는 법이다. 죽을 때까지 뜨거운 인간이고자 하는 것, 그것이 육체의 조락과 정신의 성숙을 동시에 진행시킨 신의 진정한 뜻일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며, 그 존엄과 권리에서 평등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은 이 프랑스 인권선언 제1조를 '재탈환'하자고 선동하기 위해 무려 200자 원고지 73장에 달하는 장문의 글(상단의 칼럼)을 쓰고 있다. 그러고도 모자라 '천부의 인간평등권을 되찾기 위한 정치적 전략'에 대해 다음호에 또 글을 쓰겠다고 예고했다. 지난 2월 타계한 스테판 에셀(35면)의 어머니는 젊은 아들에게 인간애를 이해하려면 일생에 한 번쯤 동성애를 경험해봐야 한다고 말했단다. 자유와 평등을 향해 여전히 뜨거운 분노와 열정을 뿜어내는 내 또래 중년, 평생을 자신이 믿은 가치를 향해 멈춤 없이 살다간 97살의 노인, 일평생 사랑의 전모를 알고 싶어 했던 전 세기의 앞서간 여성…. 나는 이들에게서 5월의 신록만큼이나 전율하는 약동과 흥분을 전수한다.

조락하는 육체만 있고 성숙하는 정신이 없다면 늙음은 그저 추한 쇠락일 뿐이다. 흐르는 시간만 있고 역사의 충적이 없다면 인간이나 시대나 껍데기 자루일 뿐이다. 비록 실패로 잠정 결론이 났다 해도 '정치 386'들이 다시금 초심의 열정으로 돌아가 새롭게 시대정신을 묻고 자기 세대의 역사적 소명을 되찾아간다면, 긴 역사의 호흡에서 그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5월 광주'의 흘러간 시간에 다시 민주주의 역사를 되묻는 뜻도 마찬가지다(29~30면).

인간 존재의 고귀함에 대해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남은 인생이 남루한 시대 속에서 흘러가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비록 습관적이고 상투적인 행위일지라도 자꾸 그런 질문을 던져보자. 5월이면 5월, 6월이면 6월의 의미대로.

*

/ 이인우 편집장 editor@ilemonde.com /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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