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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날의 감미로움
지나간 날의 감미로움
  • 피에르 드쉬
  • 승인 2013.05.13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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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트 폰 카이저링
세속적 가십이 아니라 존경받으며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이 있다. 이 작가들을 사랑하는 것은, 곧 이 작가들의 작품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로베르 마르제리, 에마뉘엘 보브, 프레데릭 엑슬레, 에두아르트 폰 카이저링 같은 작가가 대표적이다. 이번에 악트쉬드출판사는 카이저링의 작품을 선정해 13편의 소설을 묶어서 출간했다. 작가의 목소리, 특징, 시대에 대한 비판을 알 수 있는 기회다. 특히 카이저링의 목소리는 인상파 그림에 나타난 색채처럼 글을 통해 떨림을 준다.

독일 출신인 카이저링 백작은 1855년 동부 프러시아와 러시아의 경계인 현 라트비아에서 태어났다. 1877년 법학 공부를 그만두는 바람에 따돌림을 받게 된 카이저링은 불안정한 상황에서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를 여행했고, 1895년부터 뮌헨에서 살았다. 뮌헨 슈바빙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해 자주 들르게 되어 <룰루>의 작가 프랑크 베데킨트, 칸딘스키, 폴 클레 같은 작가를 만나게 된다. 카이저링도 다른 게르만 출신 작가들처럼 희곡·소설·단편 등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그러나 카이저링은 매독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바람에 척추에 큰병을 얻었고, 1907년에는 눈이 보이지 않게 돼 다른 사람에게 글을 받아적게 해서 작품을 집필했다. 1918년 카이저링은 지인들에게 둘러싸여 세상을 떠났다.

이번 작품집은 카이저링의 작품 세계와 색채를 일관성 있게 보여준다. 특히 1903∼18년에 쓰인 작품들은 카이저링이 실명이라는 비극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색채를 글로 잘 표현하는 진정한 독일 인상파 작가임을 보여준다. 카이저링의 작품에는 오렌지나무 잎사귀, 햇빛에 마르는 새틴 와이셔츠, 왁스, 향수인 멜리사 워터, 재스민 등 다양한 향이 상세히 묘사돼 있다.

번역가 3명이 의기투합해 카이저링의 작품을 일관성 있게 잘 번역한 덕분에 순서와 상관없이 어떤 작품을 읽어도 작품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다. 저물고 퇴폐해지는 세상 속에 익숙하던 것들은 본능이라는 압박 속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바로 기대, 가벼운 떨림, 질투, 고통과 상실, 광적인 감성, 체념이 반복되는 세상이다. "사랑은 한쪽을 다른 한쪽으로 밀어붙이는 것이지, 행복을 똑같이 느끼게 하는 일이 아니다. 사랑은 동등함이라는 계산을 비웃는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서로 괴롭히기 위해 사랑을 하는지도 모른다." 자연 배경을 별로 중시하지 않고 영혼의 변화를 분석하는 데 몰두한 슈테판 츠바이크와 달리, 카이저링은 열정이라는 바람에 흔들리는 인간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존재를 자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열정을 몰아낼 때 비로소 평온한 죽음이 찾아올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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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드쉬스 Pierre Deshusse

번역 / 이주영 ombre2@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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