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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인가
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인가
  • 홍세화 | 편집인
  • 승인 2009.04.04 01:29
  • 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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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한겨레21>이 손을 잡았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을 사이에 둔 프랑스와 한국의 독립 언론이 만난 것입니다. 이 만남은 진보 매체 간 콘텐츠 공유라는 구체적 의미를 넘어 우리에게 하나의 상징이 되어 다가옵니다. 분단은 우리 국토를 둘로 가른 것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대륙과 단절되면서 우리의 눈은 바깥을 내다볼 때 오로지 미국을 바라보도록 고정되었습니다. 미국적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한국 사회를 지배해왔고 다른 나라를 바라볼 때에도 주로 미국을 통해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일상화되고 내면화된 미국 편향의 시각과 가치관은 노엄 촘스키가 ‘세계의 창’이라고 부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만남으로써 균형 쪽으로 성큼 다가갈 것입니다.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의 시대가 끝나고 다극 체제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금융위기의 세계화는 이 흐름을 더욱 가속화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와 같은 ‘탈미’의 시대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듯합니다. 한-미 동맹이나 영어 등을 매개로, 미국 유학파의 대부분을 비롯한 미국 추종 세력이 정·관료계뿐만 아니라 지적 담론과 여론 형성의 장인 대학과 언론에서도 주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시장만능주의 신자유주의가 그 본거지인 미국과 영국에서 비판받고 나아가 부정되고 있지만 한국에서 여전히 성세를 누리고 있는 것도, 그들이 한국 사회 각 부문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계 체제의 중심부에서 주류 담론이나 가치관이 바뀔 때에도 주변부에서 지체 현상을 보이는 것은 대개 그런 연유에서 비롯됩니다. ‘대안적 가치’를 주창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우리에게 유일사상의 매트릭스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힘이 돼줄 것입니다.

요즘 선진화라는 말이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진화의 길은 경제 수치만을 선진화의 척도로 삼는 데서 벗어나 세계를 정확히 이해하고 호혜평등의 원칙 아래 그 주체적 일원이 되려 할 때 열릴 것입니다. 그동안 세계 각 지역에 대한 우리의 시각과 연구는 미국 패권주의라는 거대한 장벽에 가려져온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 이름이 스스로 말해주듯 국제 정치 전문지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우리에게 세계를 달리 바라보는 ‘눈’ 하나를 제공할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 4강국인 미국�일본�중국�러시아는 물론 다른 나라들도 유럽의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볼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흔히 중도좌파로 분류되는 자매지 <르몽드>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좌파 진영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비판 영역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최근 세르주 알리미 발행인이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과 가진 지상 대담(<한겨레21> 754호)에서 강조했듯이, 진보 매체가 자본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힘은 오로지 독자에게서 나옵니다.

종이 매체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인 터에 경제 한파가 덮친 상황에서 <한겨레>가 (주)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제휴하기로 결정한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실상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지형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같은 진보 매체가 한국에 자리 잡기엔 아직 이르다고 판단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번 제휴가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에 아주 적합한 경우라고 믿고 싶습니다.

한국판 편집인이라는 중책을 맡은 저는 개인적으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한겨레>의 만남에서 남다른 감회를 느낍니다. 프랑스에 머물던 시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사전과 씨름하며 읽으면서 시대와 긴장을 유지하려고 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히 남아 있는데 바로 그 ‘르 디플로’가 다른 데가 아닌 <한겨레>와 만났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독자 한 분 한 분 가슴에 남달리 품은 진보의 가치를 서로 확인하고 공감하는 장으로 지역 독자 모임을 꾸리려고 합니다. 그동안 ‘르 디플로’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애쓴 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시금 독자들의 각별한 지지와 성원을 기대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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