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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이버 망명인가?
왜 사이버 망명인가?
  • 성일권
  • 승인 2014.10.30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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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카톡?”

지우들의 잇단 충고들을 듣다보니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자꾸 들어, 결국 지난주에 독일에 서버를 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텔레그램에 가입했다. 가입절차는 카카오톡보다도 더 간단했다. 이미 많은 지우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망명을 축하한다”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렇게 해서 필자와 지우들은 말로만 들어온 이른바 사이버 망명객이 되었다. 필자가 참여하는 몇몇 모임에서는 아예 카톡 대화방을 폐쇄하고, 텔레그램으로 집단 이주했다. 최근 ‘텔레그램’의 국내 이용자, 즉 사이버 망명객이 2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사이버 망명은 자국 내 온라인 서버의 사용자가 자유로운 인터넷 이용에 제한을 받는다고 느껴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e메일, 블로그 등 디지털 서비스를 국내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해외 서버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로 옮겨가는 행위를 말한다.

이번 파동의 불씨는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사이버상에서 ‘아니면 말고 식’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이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언급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 이틀 뒤 검찰은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꾸려 온라인 명예훼손을 엄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검찰의 발표 이후 “검찰이 카카오톡 등 SNS나 포털 게시판을 24시간 감시해 처벌한다”는 루머가 온라인상에 떠돌았고, 해외에 서버를 둔 SNS로 갈아타는 움직임이 지금까지 계속돼 왔다. 이 과정에서 텔레그램 등 외국 SNS의 국내 다운로드 순위가 급상승했다. 의외의 방향으로 불똥이 튀자 검찰은 급히 “포털 같은 공개된 서비스만 모니터링할 뿐 메신저 같은 사적 대화는 대상이 아니다”며 부인했다. 카카오톡도 “하루 평균 메시지 전송 건수가 60억 건을 넘으므로 실시간 감시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논란을 잠재우려 했지만 사이버 망명 현상은 줄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 받는 것에 대한 반감이 사이버 망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이버 망명 현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부가 온라인상의 악성 댓글이나 허위사실 유포를 단속하겠다며 규제 방안을 내놓을 때마다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2008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최진실 씨가 인터넷에서 악성 루머에 시달렸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회에서 ‘사이버 모욕죄’ 도입을 추진하자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며 적잖은 누리꾼 사이에서 사이버 망명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07년에는 인터넷에서 댓글을 작성할 때 실명을 입력해 인증하도록 하는 ‘인터넷 실명제’가 실시되자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해외사이트로 대거 이동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의 인터넷 감청과 관련해 여러 가지 사실을 폭로했을 때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일처럼 치부했던 게 사실이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그같은 일들이 엄연히 일어나고 있다. 르 디플로 11월호에서는 디지털 시대의 소통과 윤리를 파괴하는 국가 권력의 횡포와 탈선을 집중 조명했다. 여전히 사이버 망명의 갈림길에서 고심하고 있을 모든 분들에게 꼼꼼한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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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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