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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은 민주주의의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
"평등은 민주주의의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
  • 자크 랑시에르
  • 승인 2014.10.3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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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만들고, 그걸 즐기는 행위는 철학자의 활동과 진배없다. 관객이라고 해서 영화를 그저 수동적으로만 보는 객체가 될 수 없다. 누구나 철학을 할 수 있듯이, 누구나 영화 비평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의 시각예술과 영화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사람은 아마도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일 것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진은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철학자로선 예외적으로 철학이 아닌 영화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그를 만나, 철학과 미학과 정치에 대해 짧지만 심려한 대화를 나누었다. 랑시에르는 분홍 셔츠를 입은 은발의 신사였지만,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아주 격정적이었다. 미학과 정치에 대해 말할 때면 그는 비음이 섞인 프랑스어식 악센트와 억양으로 영어를 구사해 듣기 약간 거북하기도 했다. 74세의 철학자는 빠른 어투의 큰 목소리로 거침없이 답변을 하고, 가끔 어깨를 올리거나 커다란 손짓을 하기도 했다. 법과 제도보다 감각적 인식이 선행한다는 관점에서, 영화를 비롯한 예술 혁명도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민주주의의 절대적인 평등을 위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실천적 측면을 강조했다.

- 철학자인 당신이 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걸 보면서, 당신의 영화에 대한 철학적 개입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철학의 위기 내지 영화의 영향력을 동시에 느낀다. 왜 철학자가 영화 같은 예술에 개입하나?

“그것은 당신이 철학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철학은 여러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철학이 무엇인가? 철학은 무엇을 하는가? 거기에는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철학은 내게 있어 서로 다른 학문 분과간의 경계를 가로질러 넘나드는 실천행위나 다름없다. 철학은 이른바 침투양식과 연결양식을 통해 시간, 공간, 이미지, 노래, 말들을 연결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인식과 사고를 창출할 수 있다. 예술은 언제나 실천이면서 동시에 관념이다. 19세기에 음악이 철학의 지위에 올랐고, 요즘엔 영화 자체가 철학이 되다시피했다. 들뢰즈 같은 철학자는 영화에 관한 책을 2권이나 쓰지 않았는가? 내가 영화에 관심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정치와 미학은 말, 보기, 발음, 상황들 간의 관계를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즉 감각적인 것들을 자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 지금과 같은 정치적 시대에 예술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정치와 예술의 관계는 분리될 수 없다. 정치는 말(words)로 구성되고, 태도로 구성되고, 운동으로 구성되며, 또한 시간을 창출하고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예술 또한 장(field)을 창조하고, 이 장은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며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사람들과 관계를 창출한다.”

- 미학이라는 단어가 예술뿐만 아니라 정치행위에도 남용되는 듯싶다.

“사람들은 흔히 정치가 정치적 행위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학에 대해선 그저 ‘보는 것(looking)’과 관계된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정치 또한 말, 보기, 발음, 상황들 간의 관계를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감각적인 것들을 자각하게 하는 미학과 닮아 있다고 본다. 결국, 정치와 미학은 이미지와 의미의 관계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같다고 하겠다.”

미술 비엔날레를 찾은 방문객은 자신이 바라보는 대상을 예술작품인지 의심하지만, 영화제의 방문객은 자신이 예술을 본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영화가 차지하는 위치가 궁금하다.

“영화를 판단하는 기준은 정해지지 않았고, 불확실하다. 영화엔 내러티브의 즐거움과 미학적 감상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있다. 이렇게 특정한 공간에서, 또 특정한 시간적 상영 속에서 발생하는 대중오락의 구조는 일반적 예술의 ‘탈동일화(désidentification)’ 과정에서 벗어나 있다(철학자 이지훈 박사의 랑시에르 인터뷰 참조. 탈동일화는 기존의 질서가 자신을 규정하던 정체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해해는 과정). 탈동일화는 특히 조형예술과 같이 미술의 전통을 물려받은 현대 예술에 영향을 주었다. 조형예술은 예술과 비예술(non-art) 사이의 분리를 무너뜨리려 했고, 심지어 미술 비엔날레를 찾은 방문객이 자신이 바라보는 대상을 예술작품인지 의심할 정도가 되었다. 반면 영화제의 방문객은 자신이 예술을 본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심지어 자신이 관람하는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말이다.”

- 지금, 당신의 이 말은 관객의 주체성을 말하는 것 같다. 당신의 책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에서 당신은 “민주주의는 통치되어야 할 사회도 아니며 한 사회의 통치 체제도 아니”라며, 민주주의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법과 제도보다도 감각적 인식이 더 선행한다는 관점에서, 영화를 비롯한 예술 혁명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민주주의의 절대적인 평등을 위해선 ‘행동해야 한다’는 실천적 측면을 강조한 바 있다. 예를 들면, 아시아 영화 역시 초기에는 미국과 프랑스 영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요즘은 독자적인 길을 가면서 대중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삶에 영향을 준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관객이 구경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예술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주체적 시각에 방점을 두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평등이 시작되는 지점을 규정하는 원리다. 누구나 공동체의 모습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평등한 능력을 갖고 있다.

- 요즘 현대사회에선 절대적 평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은데, 이게 가능할 것으로 보이나?

“평등은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평등이 시작되는 지점을 규정하는 원리다. 누구나 공동체의 모습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평등한 능력을 갖고 있다.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행동하기에 나서느냐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이다.”

- 당신의 저서를 보면, 유러피안 시네마, 아메리칸 시네마에 대한 글이 꽤 눈에 띄지만 아시아 영화제에 대해 특별하게 언급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당신 역시 서구지식인들이 동양에 대해 갖는 어떤 편견, 이를테면 오리엔탈리즘적 사고에 치우쳐 있는 건 아닌가?

“오리엔탈리즘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같은 이름의 책을 썼을 때, 중요한 쟁점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이제는 상황이 그때와 많이 다르다. 아시아 영화는 그들만의 특별한 전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 대만 영화, 일본 영화, 인도네시아 영화 등 각 국가별로 나름의 영화적 특성들도 지니고 있다. 물론, 아시아 영화는 초기에 미국이나 프랑스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게 사실이다. 그런 영화를 받았으면서도 나름의 전통과 역사를 많이 담아내고 있는 게 아시아 영화의 특징인 듯싶다. 이른 점에서 오리엔탈리즘은 어느 정도 극복된 것으로 판단된다.”

- 철학자인 당신이 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해서 한국의 많은 철학도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당신의 소감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나름의 기준에 따라 영화를 선별하는 건 영화이론을 공부한 사람이나 비평가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화라는 매체는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면모도 있지만, 동시에 아마추어리즘 또한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철학이란 여행과 비슷하다. 여행을 떠나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듯, 철학 역시 특정분야에 한정된 학문이 아니라 예술, 영화 등 다양한 분야와 영향을 주고받는다. 부산영화제가 나를 심사위원으로 부른 건, 내가 영화에 대한 저서를 쓴 이론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길 원해서가 아니었을까? 누구나 비평가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철학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심사위원직을 수락했다. 좋은 경험이었다.”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1940년 알제리 출생으로 파리8대학에서 1969~2000년까지 철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이 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루이 알튀세의 제자로서 1965년 <자본론 독해(Lire le Capital)> 작업에 참여해서 명성을 얻었으나 1968년 프랑스 학생운동을 기점으로 알튀세와 결별했다. 결별의 이유는 마르크시즘의 엄격한 과학성과 결정론적 사상에 충실했던 알튀세와 실천 중심의 마오이즘에 경도되어 있던 랑시에르의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특히 알튀세의 단정적 언어해석 원칙에 반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알튀세와는 다른 노선을 추구했고, 1974년 <알튀세로부터의 교훈(La lecon d’Althusser)>을 출간하면서 알튀세의 사상을 비판했다. 1970년대 말 이후에는 노동해방 연구에 몰두하면서 <프롤레타리아의 밤>, <노동자의 꿈에 대한 보고서>를 집필했다. 랑시에르는 1980년대 중반부터 과거와는 다른 인물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물이 <무지한 스승(le Maitre Ignorant)>이었고, 이 저서를 발표하면서 명성을 얻음과 동시에 마르크시즘과의 결별을 공인받게 되었다. 그는 다수의 책을 집필한 영화애호가이기도 해서, 미학과 정치의 관계를 분석한 저술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인터뷰·사진/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

진행/김혜영

문학평론가. 1997년 <현대시>로 등단했고, 부산대학에서 영미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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