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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지휘자 정명훈
두 얼굴의 지휘자 정명훈
  • 목수정
  • 승인 2014.12.29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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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중독된 VS 얌전히 규정을 준수한

 두 얼굴의 지휘자 정명훈

 다시, 정명훈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직원들에 대한 부적절한 언행으로 궁지에 몰린 박현정 서울시향 대표가 물귀신 작전으로 던진 정명훈 비행 리스트, 그 구체적 죄목들이 사실이라면, 정명훈은 노골적으로 서울시민들을 희롱한 셈이다. 확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명훈은 시의회의 소환에 연거푸 불응했고, 분노한 서울시의회는 “지난 10년간 단 한 차례도 서울시의회에 출석하여 공식적인 답변을 한 적이 없고, 이는 시의회에 대한 정 감독의 평소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성토하기에 이른다.

 

목수정 | 작가, 파리 거주

 

여전히, “그 정도 잘났으면, 그 정도 받아도 된다”, “해외 나가면 더 벌지만 조국을 사랑해 희생하는 중”이라는 호위세력은 존재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정명훈에 대한 절대 지지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당연히 계약엔 존재하지 않았던, 부인과 아들, 며느리의 비행기 삯, 서울 하얏트호텔 투숙비를 서울시향에 부담시키고, 아들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에, 재능기부란 명목으로 서울시향 단원들을 출연시키며, 유럽주재 비서의 인건비까지 서울시향의 예산에서 지급했다는 에피소드에 이르면, 누구도 그를 두둔하기 힘들다. 오랜 세월 정명훈의 매니저이자, 공연기획사 대표였던 정명근, 동생을 대신하여 손에 흙을 묻히던 그의 형은 사기, 횡령 혐의로 감옥에 가 있었고, 정명훈에 의해 올해 해임된 시향 단원들은 해고의 부당함에 맞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정명훈의 진짜 모습은?

 

많은 사람들이 거장 정명훈이 고국에 대한 애정으로, 더 높은 수준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외국 유명 오케스트라에서의 커리어를 접고, 서울시향에서 상임으로 활동하는 줄 알지만, 서울시향에서 상임지휘자로 있는 동안 그는 여전히 라디오프랑스 오케스트라에서도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여기에 더하여 그는 인천에서 그의 형이자 매니저인 정명근과 함께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도 상임지휘를 하고 있다.

라디오프랑스에 20여 년간 몸담아 온 한 관계자에 따르면, 국제무대에서 정명훈의 수준은, 아래 도표에서 보자면 B그룹이며, 그중에서도 중간 레벨이다. 따라서 그의 라디오프랑스에서의 연봉수준도 그에 준한다는 것.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자신이 상임으로 있는 오케스트라와 연 15회 내지는 20회 연주를 할 것을 계약서에 명시하고 바로 이것이 연봉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에 예술감독으로서의 급여가 포함된다. 아래의 도표는 한 지휘자가 자신이 맡은 오케스트라에서 연 평균 15회 공연할 때를 기준으로 삼고 있으나, 정명훈은 라디오프랑스에서 연 20회 지휘를 하기 때문에, 그의 연봉은 7억5천~8억 원 선이다.

 

대도시(Metropolitan)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의 급여 수준

 

 

연 기본급여

회당 공연료

연 15회 공연기준

전체 연봉 평균

 

A.경력 초반기

36,000 € à 60,000 €

4천8백만~8천1백만 원

 

8,000 € à 20,000 €

1천만~2천7백만 원

 

258,000 €

3억4천8백만 원

B.국제적 지명도를

획득한 지휘자

 

48,000 € à 72,000 €

6천5백만~9천7백만 원

 

20,000 € à 30,000 €

2천7백만~4천만 원

435,000 €

5억8천7백만 원

 

C.확고한 국제적 스타

 

 

72,000 € à 96,000 €

9천7백만~1억3천만 원

30,000 € à 50,000 €

4천만~6천7백만 원

684,000 €

9억2천3백만 원

 

 

 

 

 

출처 : lefigaro.fr/musique(2012)

 

이 관계자는, 정명훈이 라디오프랑스에서 받는 대우에 비할 때, 그가 서울시향에서 받는 연봉에 큰 놀라움을 표했다. 정명훈이 현재, 서울시향에서 받는 연 기본급여는 2억2천만 원, 그리고 매년 5%씩 상승해 온 회당 연주료는 금년에 4,900만 원에 이르렀다. 연 급여로 치자면, 자신이 속한 레벨에서 한 단계 위인 사람들보다도 더 받는 셈이며, 회당 공연료 역시, 자신보다 한 단계 위의 스타급 지휘자들에 준한 개런티를 받은 것이다. 라디오프랑스가 정명훈을 판단하는 기준이 절대적인 국제 스탠다드인지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부당한 대우였다면 14년간 정명훈이 거기에서 머물렀을 리 없다. 분명한 사실은 21억(2011년, 서울시의회 장정숙 의원의 행정감사자료에 근거)이라고 하는 서울시향의 정명훈에 대한 대우는 라디오프랑스의 3배 수준에 달한다는 것.

 

라디오프랑스, 지휘자에게 인사권은 없다

 

마에스트로라 불리는 한국 음악계의 슈퍼갑 정명훈이 시향 안에서 인사권을 갖는 것이 많은 사람들 눈에는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상임지휘자로 일하는 라디오프랑스에서, 그는 인사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라디오프랑스는 국립방송국으로 두 개의 오케스트라가 그 안에 있다. 하나는 국립 라디오프랑스 오케스트라, 또 하나는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니. 정명훈은 후자에서 지휘봉을 들고 있다. 새로 단원을 위촉할 땐, 콩쿠르를 통한다. 공고가 나가고, 12명의 심사위원이 콩쿠르를 심사한다. 지휘자는 그 12명 중 한 사람일 뿐이며, 나머지 심사위원은 주로 단원들이다. 당연히, 지휘자가 원치 않는 사람이 다수결에 의해 단원으로 선발될 수 있다.

해임에 대한 권한은? 없다. 대부분의 경우, 단원의 개인적 동기로 떠나지, 지휘자에 의해 해임되진 않는다. 치명적 문제가 있는 단원이 해임될 수도 있으나, 그 또한 지휘자의 권한은 아니다. 그리고 정명훈은 물론, 라디오프랑스의 규칙에 충실히 따랐다. 그러나, 서울시향에서 그는 단원 위촉과 해임에 대한 전권을 가졌다. 단원들은 물론, 자신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대표이사도 그의 의지로 채용된 인물이다. 정명훈은 매년 5%의 단원들을 해고했다. 지난 10년간 75명의 단원이 그렇게 잘려 나갔다. 올해 해임된 5명 중 4명은 현재 부당해고를 고발하기 위해 소송 중이고, 현재 노동중재위에선 이미 승소한 상태이다. 매년 정해놓고 5%씩의 단원들을 잘라낸다는 것은 단지, 탄탄한 실력을 갖춰야 함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지휘자의 눈 밖에 나서는 아니되며, 그의 말에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 또한 남아있는 단원들이 모두 자르기에 아까운 출중한 실력자라 해도, 누군가는 희생양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카이스트에서 연쇄 자살사태를 발생시켰던, 그 잔혹한 시스템의 원리와도 같다. 모두가 우수하다 해도, 반드시 누군가는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면, 단원들 사이에 아름다운 조화와 협력이 자리하는 대신, 공포와 불안이 자리 잡는다. 5%씩 매년 잘려나가도 지금까지 비교적 조용했던 것은, 정명훈이 서울시향에 부임하면서 노조를 깨끗이 없애 버린 탓이다. 그러나 정명훈이 고분고분 규칙을 따라왔던 또 다른 직장, 라디오프랑스에는 3개의 노조가 있고, 노조는 지휘자, 단원, 그리고 경영자 측과 민주적인 관계를 맺어나가는 데 적극 기여한다. 그리고 정명훈이 주로 객원으로 공수해오는 음악가들은, 바로 이 단원으로서의 지위가 확고하게 보장되는 라디오프랑스 오케스트라에서 일하는 단원들이다.

라디오프랑스 산하에 있는 두 개의 오케스트라와 한 개의 합창단에는 각각 지휘자가 있고, 또한 행정부분을 담당하는 음악국 소속의 예술행정관이 있다.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운영에 있어서 모든 것을 이 예술행정관과 상의하여 함께 진행한다. 지휘자가 갖는 권한은 다음 시즌의 레파토리를 구성하는 것, 솔리스트를 선정하는 것, 객원 연주자, 객원 지휘자를 고르는 것 등 예술적 영역에 관한 것이나, 단원들은 선출된 그들의 대표를 통하여, 레파토리 구성이나, 다음 시즌에 프로그램에 대한 모든 부분에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할 수 있다. 이는 그들의 목숨이 지휘자 손끝에 달려있지 않고, 같은 음악가로서 평평한 운동장에 함께 서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미 예매가 시작된 공연일정을 취소하는 지휘자, 라디오프랑스에서 관용될 수 있느냐 물었다.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라면, 그런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건강상의 이유가 아니라, 중간에 들어온 다른 공연 때문이라면? 라디오프랑스의 관계자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묻는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하겠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 나는 답했다.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정명훈의 라디오프랑스에서의 임기는 2015년 상반기로 종료된다. 미코 프랑크라는 핀란드 출신의 젊고 뛰어난 지휘자가 내정되어 있다”고.

라디오프랑스에서 정명훈은 얼마든지 합리적, 민주적으로 오케스트라를 꾸려갈 수 있는 노하우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익혔을 것이다. 정명훈이든 누구든, 라디오프랑스에서는 누구도 달리 행동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 관계자는 말한다. 정교하게 짜인 민주적인 운영의 틀을 흐리는 미꾸라지는 허용되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선 얌전하게 규정을 준수하던 정명훈, 왜 자신의 조국에 와선, 규정 따위는 모두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한 것일까?

 

정명훈 이후, 눈부시게 성장한 서울시향?

 

확실히 10년 전에 비하여, 그들은 활발하게 공연했고,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같은 정규 공연장뿐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가서 음악을 들려줬다. 이명박이 장로로 있다는 소망교회를 비롯, 사랑의교회 등 특정 종교에 치중된 장소 선정을 잊어준다면, 특히, 서울시향이 자랑하는 무료공연 <찾아가는 음악회>는 바람직한 시향의 활동이라 칭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명훈으로 인하여, 서울시향의 실력 자체가 월등히 향상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분명히 답하기 힘들다. 정명훈은 자신의 공연 때마다, 전체 연주자의 15% 정도 되는 인원을 해외에서 데려와 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향 연주자들이 연주 때에 받는 연주수당 6만 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수당을 제공해 가며. 이런 방식이 일반적 관행인지, 라디오프랑스 관계자에 묻자, “그것이 오케스트라의 정책에 부응하는 것이라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렇게 매번 많은 수의 용병을 데려다가 만들어 내는 소리가, 서울시향 자체의 실력 향상이라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많은 비용을 아무 문제없이 감당할 수 있는 건지는 의문”이라고 답한다.

보수 언론들을 비롯한, 자본의 논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렇게도 말한다. 정명훈 부임 후, 서울시향의 유료관객수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아느냐, 그러니 정명훈이 20억 정도 가져가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정명훈 부임 후 유료관객이 3배로 늘어났다면, 서울시가 서울시향에 쏟는 예산은 4배로 늘어났다. 2014년 서울시향의 예산 170억에서 서울시 출연금이 108억이다. 서울시향은 수익을 내기는커녕, 재정자립은 꿈도 꿀 수 없는 예술단체다. 시향이 티켓을 팔아 벌어들인 돈은 정명훈의 연봉조차 줄 수 없는 19억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향은 돈을 벌자고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공립 예술단체의 본연의 임무는 시민들의 음악에 대한 향유권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시향처럼 이토록 자주 내홍을 겪고,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국공립예술단체도 흔치 않을 듯하다. 정명훈이란 슈퍼스타로 인해 주목받는 탓일까? 아니, 그보다 서울시향 Seoul Philharmonic Orchestra의 문제는 바로 이 이름 속에 들어있는 하모니, 즉 조화가 깨졌고, 그래서 움직일 때마다 끝없이 파열음이 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술감독은 구름 위로 한없이 올라가고, 대기업 마인드로 단련된 대표는 예술감독을 컨트롤하는 데 실패한 화풀이를 직원들에게 폭언으로 풀었다. 단원들은 데스노트 리스트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몸 사리고, 공연 때마다 몰려와 초특급 대우를 받고 돌아가는 해외연주자들 옆에서 위축된다. 시향 예산의 대부분을 제공하는 서울시는 의회의 부름에 지휘자가 출석하지 않아도, 속수무책이다. 시의회를 무시하고, 서울시를 무시해도, 서울시민의 권리를 지켜줘야 할 최고책임자 박원순 시장은 ‘다른 대안이 없지 않냐’고 말할 뿐.

 

해임된 단원들의 증언(1)

 

전 단원 A씨, “7년 전 상임지휘자로 정명훈 씨가 새로 온다고 했을 때 기대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무엇보다도 문제는 이 분은 단원들하고는 대화를 안 하더군요. 같이 있었던 4년 동안 대화라곤 딱 세 번 해봤어요. 그건 대화라고 할 수도 없어요. 그냥 그 쪽에서 훈시하듯이 하는 얘기였으니까요. 연주 때만 한국으로 들어와서 숨차게 몰아치는 식으로 지휘만 하고 또 나가고. 어떤 달은 연주만 10회가 넘을 때도 있었어요. 집중적인 연주 스케줄로 무슨 교회인가에 가서 ‘찾아가는 음악회’라고 하고. 난 개신교 신자도 아닌데, 교회 가서 연주하면 목사가 기도부터 하고. 이해가 안 됐어요. 서울시민의 시립교향악단이 툭하면 왜? 교회에 가서 연주를 하는지? 그 사람이 언제부터 세계적인 지휘자니, 마에스트로니 하고 떠드는지, 언론에서 언제부터 누군가가 만든 얘기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매스컴에서 이 사람을 너무 크게 뻥 튀긴 게 아닌가 싶어요.”

전 단원 K씨, “2002년에 객원 지휘로 왔던 로린 마젤이 한국에 왔을 때 예술의 전당에서 했던 연주가 가장 인상에 남아요. 지휘의 대가가 뭔지 그 때 알았어요. 열정적인 지휘였고, 제 음악연주 평생에 큰 감동적인 지휘였어요. 이후 정명훈 씨로부터 지휘를 받을 때는 그런 감흥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오디션 본다고 옥죄고…. 항상 불안했지요. 뭔가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 툭 터놓고 대화를 나눠볼 기회도 없었고.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연주 때면 외국인들 데리고 들어와서 근사하게 한 상 차려놓고 연주라고 벌려놓고는 연주 끝나면 외국인들 하고 같이 나가버리고.”

전 단원 F씨, “항상 불안했습니다. 정명훈 저 사람한테 밉게 보이면 안 된다. 저절로 눈치를 보게 됐습니다. 편안하게 연주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불만이나 의견은 있을 수 없습니다. 법인으로 만들고는 어떤 주장이나 여건 개선 같은 걸 주장할 수도 없었습니다. 단원들 중에 감시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고. 그만두고 나니까 집사람이 그랬어요. 당신 얼굴이 펴졌다고. 잘려서 먹고 살기가 막막해졌는데도 집사람이 저더러 그랬습니다. ‘당신 얼굴이 펴진 거 보니까 너무 좋다고’ 오랜 세월 악기를 다뤘지만 지금은 악기를 치웠습니다.

전 단원 H씨, “우린 연주하는 부속품이고. 젊은 단원들이 새로 많이 들어와 있는데, 오케스트라에 대한 인식이 고정될까봐 걱정이에요. 교향악단의 백미란 지휘자와 단원들의 혼연일치된 아름다운 하모니잖아요? 연주하는 기계들 모임이 아니고요. 제가 쫓겨난 건…. 그래요. 실력이 없다고 판단됐으니까 쫓겨났겠지요. 하지만 10년 이상을 그곳에서 땀을 흘렸어요. 어느 날 제 딸 또래의 아이가 사무직원인데 저한테 와서는 ‘이번 연주는 못 나가십니다’하고 말할 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내 파트가 외국인으로 채워지는 모습을 내 눈앞에서 보는 거란….”

시향을 떠나야만 했던 자들의 증언이다. 그들은 익명을 전제로 자신들이 겪은 정명훈 휘하의 시향을 증언했다. 온전히 그들의 증언을 토대로 해서 시향을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런 식의 내부로부터의 이야기는 한 번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고, 그들의 증언 속에 상처 난 지금의 서울시향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진실들이 들어 있을 터이다. 이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바는, 단원과 지휘자 사이에 소통이 부족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에게 언제나 불안이 상존했다는 사실이다. 조직원들이 불안에 떨며 소통하지 못하는 그 어떤 조직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독재는 집단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곳, 하나의 절대 권력이 군림하는 집단은 서서히 마비된다. 이성과 지혜를 가진 영물인 인간을 네 발 달린 짐승으로 전락시키는 장치가 바로 독재다. 우린 매일, 발밑에 찰랑거리던 자발적 복종의 시대가, 이제는 배꼽을 넘어서 가슴까지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정명훈은 우리가 상상했던 대로, 세계 정상의 지휘자는 아니지만, 한국인으로서 일찌감치 국제무대에 진출하여 활약하는 지휘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습득하지 못했다. 그가 제 능력으로 민주적인 시향 운영을 할 수 없다면, 라디오프랑스에서 똑같은 지휘자를, 같은 시기에 완벽하게 민주적인 시스템 안에서 그를 지휘자로 작동시킨 것처럼. 그를 고용한 서울시에서 그를 민주적인 틀 속에 넣어주면 될 일이었다. 민주적 틀의 핵심은 바로 힘의 균형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노조를 없앨 권리에서부터 시향 운영에 대한 전권을 정명훈에게 위임함으로써, 그가 자신의 휘두르는 힘에 걸려 넘어지게 만들었다. 민주주의는 한 사회를 작동시킬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집단을 운영하는데도 필요한 원칙임을 그들은 간과하였다. 애당초, 이명박이 서울시민들의 문화적 향유권을 확대하는 데 지대한 관심이 있는 시장이었다면, 서울시 산하의 나머지 6개 예술단체에 대한 출연금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굳이 서울시향 하나에 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시향을, 탄탄한 실력으로 우뚝 서는 단원들을 가진 교향악단으로 키워 내는 데 뜻을 두었다면, 단원들에겐 6만 원의 공연료를 지급하면서, 지휘자 한 사람에게는 4천9백만 원. 무려 800배에 이르는 차별적 지위를 제공하지도 않았을 터이다.

서울시향을 발전시키는 일보다는, 정명훈이라는 이름이 한국사회에서 갖는 파워에 기대어,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위한 정치마케팅의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이명박의 목적이 여전히 두 명의 시장을 거치면서도 남아있기 때문에, 지금의 서울시향이 갖는 기형적인 행태는 끝끝내 시정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시의회가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했지만, 자체 시정하지 못해 결국, 내분으로 인해 추한 꼴을 만천하에 내보이게 된 건, 서울시의 잘못뿐 아니라, 권력의 독에 중독되어간 정명훈 개인의 책임도 크다.

 

민주적인 시향 시스템 재정비

 

국제적인 수준의 무엇에 우리는 언제나 목을 맨다. 유라시아 대륙의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나라라는 본질적인 정체성이 우리에게 세계적인 인정이라는 아득한 로망에 많은 것을 걸게 했고, 바로 이것이 우리의 정명훈에 대한 신화를 부풀린 주범일 수 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 휘두르는 마술 지팡이가, 뭔가를 해결해줄 거라는 착각은 독재에 오래 머리를 적셔왔던 우리가 여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환상일 뿐이다. 우린 정명훈이 아니라, 그가 일했던 민주적인 교향악단의 시스템, 지휘자가 단원들을 같은 뮤지션으로서 존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오히려 배워왔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프랑스에선, 시스템에 적절히 순응하던 한 지휘자가 서울시향에선 똑같은 시기에 완벽히 다른 모습으로 돌변하였다면, 잘못은 분명, 지휘자 개인에게뿐 아니라, 제대로 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서울시 측에도 있다.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시향의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지휘자가 온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글·목수정

동숭아트센터 기획팀장, 국립발레단 기획팀장,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을 거쳐, 현재 파리에 거주하면서, 칼럼리스트, 작가,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1) 김상수 작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허락 받아 전제한다. 김상수 작가는 해고되고 난 뒤 찾아온 전 시향연주자들의 증언을 채록해 두었다가 본인의 SNS에 공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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