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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을 선택하라!
투쟁을 선택하라!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15.02.01 0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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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을 선택하라!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발행인

 

1914년 8월. 신성한 동맹이 결성된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노동 운동이 위기에 처한다. 좌파와 노조의 지도자들이 이른바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동맹한다. 진보적인 투쟁은 잠정적으로 중단된다. 전쟁 초기부터 수만 명씩 죽어가는 난전이 거듭되는 상황에서는 다른 선택은 어려웠다. 무기들 부딪히는 소리와 애국심에 호소하는 목소리가 빗발치는 가운데 누가 한가로이 평화의 담화를 듣겠는가? 어쩌면 6월이나 7월에는 공격을 피하는 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한 세기가 지난 후, “문명의 충격”은 아직은 여러 가지 가능한 가정 중 하나였을 뿐이다. 유럽과 그리스 그리고 스페인에서 시작된 노력들로 어쩌면 그 가정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하드의 테러가 재앙의 시나리오를 만들고 만다. “테러와의 전쟁” 전략이 전면으로 등장했고 그와 더불어 공공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략도 무대에 올라섰다. 이로 인해 이보다 선행되어야 할 모든 노력들이 무력화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위기가 악화된다. 위협이 그러하니 그 위협에 대응하는 것이 차후 몇 개월 동안 계속될 ‘급선무’가 된다.

한 풍자화가가 모함메드를 풍자할 자유가 있는가? 한 이슬람 여학생이 부르카를 착용할 자유가 있는가? 유대계 프랑스인들이 점점 더 많이 이스라엘로 이주할 것인가? 정부와 유럽 연합의 경제적 선택들이 점점 악화되어가는 상황에 프랑스는 민주적·사회적 위기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그럼에도 종교와 연관이 있는 문제들이 거의 주기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20년 전부터 “교외 지역의 이슬람”, “문화적 불안정”, “집단주의” 문제들이 여론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며 미디어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수많은 선동가들이 거칠게 상처를 긁어 무대를 지배하려고 골몰하고 있다. 설사 선동가들의 선동이 성공한다고 해도, 또 나머지 전부가 그 해결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그 어떤 문제도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할 것이다.(1)

지난 1월 7일 샤를리 엡도 현장에서 12명이 살해된 사건(피해자의 대부분이 기자와 풍자 화가였다)과 그 이후 카세르 슈퍼에서 발생한 4명의 유태인 학살 사건은 경악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두 사건 모두 이슬람을 환기시키면서 저질러진 것이지만 다행스럽게도 현재까지는 그들의 선동자가 은밀히 기대한 바대로 증오와 복수의 응징 사이클로 접어들지는 않고 있다. 살해는 성공했다. 이슬람 사원이 공격받았고, 유태교회는 경찰이 보초를 서고 있고, 급진화되고 때로는 최근에 개종해서 그들의 신앙에 대해서는 받은 교육도 일천한, 결론적으로 같은 신앙을 가진 계층을 대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젊은 이슬람교도들은 지하드, 무정부주의, 무장투쟁에 유혹 당하고 있다. 그러나 살해는 또한 실패했다. 분쇄하려고 시도했던 잡지사가 오히려 영속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라는 사회가 탄성력을 보이고, 유럽 전역에서 보편적인 희망을 부활시키고 있다.

그러나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가진 두꺼운 열쇠는 모든 자물쇠를 열지는 못한다. 우리가 언제나 필요한 시간 내에 사건을 정확히 분석할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칠 줄 모르고 쏟아져 나오는 온갖 종류의 주석들에 응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멈추고 생각하라’고 하는 것은 이해하고 간파하고 또 경악하게 될 수도 있는 위험성을 무릅쓰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건이 터져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그리고 당연히 사건에 대한 반응도 터져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현재까지는 프랑스는 충격을 잘 버티고 있는 것 같다. 2004년 마드리드 테러 이후의 스페인이 그랬고 그 이듬해 발생한 런던 테러 이후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대규모 군중이 모여 들었지만 너무 소란스럽지 않았고 총리 마뉴엘 발스의 호전적인 담화에 완전히 빠져들지도 않았다. 그리고 9·11 테러 직후의 미국이 했던 것과는 달리 민주적 가치를 퇴행시키지도 않았다. 9·11 당시, 미국은 단지 도발적인 대화를 했다고 사춘기의 소년들을 종신형에 처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의 질서, 아니 여러 개의 질서가 새롭게 요동치면 거기서 발생하게 될 궁극적인 결과들을 예측하지는 못한다. 그 결과들이 파벌을 형성해 각자의 출신과 문화와 종교에 따라서 정치적 결정을 할 국민들을 분파로 대립하게 만들 것인가?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까지 포함해서 지하드, 극우가 건 도박의 판돈인 것이다. 소위 “문화적 충격”의 거대한 위험성 말이다. 이런 전망을 격퇴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진정된 사회를 상정할 것이 아니라(수많은 게토와 지역 차별, 사회적 폭력이 상존하는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이 사회를 짓누르는 악을 가장 잘 치료할 수 있는 투쟁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긴급하게 필요한 것은 유럽의 새로운 정치다. 그리스와 스페인에서는 이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프랑스판 발행인

 

번역‧이진홍

파리 7대학 불어불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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