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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첫걸음
오바마의 첫걸음
  • 세르주 알리미 | 프랑스판 발행인
  • 승인 2009.07.03 18:3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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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면에서 미국의 새 대통령 오바마는 전임자들이 물려준 노선과 다른 길을 택했다. 물론 오바마는 미군의 이라크 철수를 서두르지 않으며 출구가 보이지 않는 아프가니스탄의 전쟁터에 오히려 미군을 증파하기도 했다. 내치에서도 자동차 업계, 은행,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보수 등과 관련된 그의 정책은 기업의 (이익은 혼자 차지하고) 손실만을 사회화하려 드는 끈질긴 ‘자유주의’와 결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오바마는 현 시점에서 미국의 체제가 배출할 수 있는 가장 진보적인 인물이라 할 만하다. 간혹 현재 워싱턴의 지도자들은 파리, 브뤼셀, 모스크바, 베이징, 혹은… 테헤란의 지도자들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백악관의 결심이 흔들리지 않고 미 의회에 대한 일부 로비가 실패로 끝난다면, 미국은 머지않아 노동조합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을 제정할 것이고 의료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4600만 명의 건강비용 마련에 고심할 것이다. 이것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오바마는 어쨌든 민주당의 대통령일 뿐이라고 그의 한계를 지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난 40년 동안의 미국 정치사를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이다. 1969년 공화당 소속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민주당 소속의 역대 대통령 두 명은 공화당 정책과의 결별을 약속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보수화의 길을 걸으면서 오히려 민주당이 지나치게 진보적이라고 여겼다. 이 두 전임 민주당 대통령들은 후임 공화당 대통령들(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에게 보수적 정책을 위한 멍석을 깔아줬다. 제임스 카터는 탈규제 정책의 기초를 닦고, 극단적 통화주의 정책을 격려하고, ‘인권 외교’라는 미명으로 신냉전 구도를 조장했다. 클린턴의 경우는 더욱 고약했다. 형벌제도를 강화하고, 사형제를 확대했으며, 연방정부의 저소득층 지원을 폐지했다. 국제적으로는 유엔의 승인 없이 아프가니스탄·이라크·수단·코소보를 무력으로 공격하는 등 사례는 부지기수다. 이 때문에 오바마의 정책을 평가하려면 민주당 전임 대통령과 비교부터 해야 한다.

지난 6월 4일 그가 카이로에서 한 연설은 근본에서는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부시 전 대통령도 이미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의 아이디어를 승인한 바 있고, 카터 대통령 이래로 모든 그의 후임자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지구 식민지화 정책을 중지하도록 (말로만) 요구해왔다. 그러나 새 대통령의 목소리는 톤이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과 중동 지역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의심과 불화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원하는 오바마는 그의 전임자가 애호했던 ‘테러리스트’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려 의도적으로 애썼다. 하마스를 언급할 때, 미 대통령은 심지어 이 조직이 “일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팔레스타인 주민에게는 과거 미국 흑인들의 (비폭력) 투쟁을 참고하라고 권유하면서, 이스라엘의 식민지 정책과 과거 미국에서 흑인들이 겪은 “인종차별의 치욕”을 암시적으로 동일시했다.

또 그는 “미국은 모두에게 우리의 판단이 최선이라고 자처하지는 않는다”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는 이런 원칙을 이란의 경우에도 적용했다. 카이로 연설에서 오바마는 “냉전 당시, 미국은 민주적 선거로 구성된 이란 정부를 전복시키는 데 특정한 역할을 했다”고 인정하면서, 1953년 미국 정보당국이 모하마드 모사데크 정권 전복 쿠데타를 조종한 것에 유감을 표했다. 이 점은 그가 지금 이란 선거부정의 장본인들을 경고하는 데 이상적인 위치에 서 있지 않음을 뜻하기도 한다. 특히 이란의 현 권력자들이 과거 이슬람 신정 체제의 일원이던 현 야당 세력에게 향후 ‘사탄(미국)의 용병’이라는 딱지를 붙이려 들 때에는…. 그러나 이란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미국의 네오콘은 테헤란과의 협상을 위해 유화적 태도를 취하는 오바마에게 비판을 집중할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은 누가 되더라도, 그가 제국의 주인 역할을 원하건 원하지 않건, 미국의 전략적 이해라는 극도의 압력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의 첫걸음은 자신이 시카고의 빈민가에서 보낸 진보적 과거를 완전히 잊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번역·김태수 asticot@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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