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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대에 오른 우크라이나의 위기
시험대에 오른 우크라이나의 위기
  • 장 피에르 슈벤느망
  • 승인 2015.07.0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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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 각국 정상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이유로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이 글을 기고한 장-피에르 슈벤느망 전 장관은 2014년 5월 5일 프랑스 대통령의 요청으로 블라드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 갈등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슈벤느망은 본지에 서방이 왜 러시아를 불신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적었다.



1991년 말, 보리스 옐친과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 대통령의 주도로 소비에트 연방이 평화적으로 해체되었다.당시 대통령이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엄청난 갈등의 가능성을 안고 있었다.소련 해체로 2,500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국경 밖에서 살아야 했고(1989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의 인구는 1억4,700만 명이고 구소련의 인구는 2억 8,600만 명이었다) 러시아 내에도 다양한 민족들이 살았다.게다가 변화무쌍한 국경선은 신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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