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3월호 구매하기
224110 VS 10000
224110 VS 10000
  • 성일권
  • 승인 2015.07.31 09: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한 신문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실감나는 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직원들의 이름이 줄줄이 적힌 대형 판넬이 로비와 각 층의 사무실에 적혀 있는데, 이름 옆에는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일간지와 주간지, 월간지의 판촉 부수가 빨간 스티커로 기록돼 있더군요. 직원 수가 1천명이나 되는 이 신문사는 두둑한 판촉 수당을 쥐어주는데, 독자 1명 확보 시에 3~4만원의 인센티브가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위부터 아래까지 훑어보니, 직급이 높을수록, 또 부서별로는 경제부, 정치부, 사회부 기자의 순으로 판촉 실적이 적혀 있습니다. 간부들은 대개 세 자리수의 실적을 기록하지만, 더러 한 두 자리 수에 그친 이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스티커를 가장 많이 받은 직원들은 대기업을 취재하는 경제부 소속 기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100~300부의 실적을 거뜬하게 올려, 역시 ‘경제부’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합니다. 자매지인 주간지나 월간지의 경우, 신문사의 막강한(?) 영향력 덕택에, 사내 판촉이벤트를 한차례만 해도 몇 천부의 구독 실적을 올리곤 합니다.

이 신문사의 마케팅 간부는 “대개 직원참여 판촉 때마다 독자 1만여 명의 확보 실적을 어렵지 않게 거두는데 이번 여름에는 장기적인 경기침체 탓인지 구독 확장이 쉽지 않다”고 말하는군요.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대형 신문사의 판촉 이벤트를 소개하는 것은 저희 <르 디플로>의 현실을 솔직히 고백하고, 독자님께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저희에게는 대형 신문사처럼, 출입처에 ‘압력’(?)을 가할 기자군(群)도 없고, 시민사회와 정치권을 연결하는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지닌 고급 간부진도 없습니다. 더욱이 대형 신문사의 자매지처럼, 발행광고를 마음대로 낼 수 있는 신문지면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독자님들도 아시는 것처럼, 요즘엔 신문의 광고지면이 상당부분 비어 있지만, 이 공간은 광고수주를 목적으로 한 재벌기업용 대포광고나 서비스 광고로 채워질 뿐, <르 디플로>에겐 전혀 제공되지 않습니다.
 
독자들의 격려 속에 지성계의 필독지로 성장
 
사실, 발행인을 비롯해 편집위원, 번역위원, 그리고 그 주변에는 세상 물정을 잘 몰라, 어디 가서 강매하거나 광고 한건 받아오기 힘든 풋내기 백면서생들뿐입니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원문에 충실하도록 번역문을 다듬고, <르 디플로>의 지향점과 가치에 부합하는 국내의 훌륭한 필진을 찾고, 시대정신에 맞는 편집기획을 하고, 기껏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저희 매체의 진정성을 알리는 일 뿐입니다. 지난 7년여 동안, 적지 않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럴수록 반성하고, 노력하면서 저희는 가파른 실적 곡선을 향해 달음질치지 않고 한걸음씩 꾸준히 내딛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처럼, <르 디플로>는 독자님들의 사랑과 격려 속에 지성계의 필독지로 어렵게 자리 잡았습니다.
언론계에서는 광고주 대신에 독자님만 바라보는 <르 디플로>의 생존 방식에 주목합니다. 전체 매출액 가운데 독자구독료가 95~100%에 달하는 매체는 한국 언론사상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종이신문의 위기 속에 감각적인 기사들을 앞세워 광고매출에 전적으로 목매는 언론 상황에서 <르 디플로>는 독보적인 콘텐츠의 질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지극히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독자님들의 감성을 일깨운다는 게 언론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고급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전문가들의 지적은 백번 옳은 얘기이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현실의 세계는 고단하기만 합니다. 독자 구독료 범위 안에서 빠듯한 살림살이를 하다보니, 번역진과 필진들에게 변변치 못한 원고료에 늘 죄송할 뿐이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편집진에겐 늘 넉넉한 급여를 지급 못해 미안할 뿐입니다.
 
독자와 더불어 '언론 혁명' 꿈꿔
 
사람들은 저희를 책망합니다. 아직도 <르 디플로>의 구독자 수가 그것밖에 안되냐고. 또 어떤 사람들은 감탄 아닌 감탄을 합니다. 상업광고도 없는 <르 디플로>같은 매체가 여지껏 문 닫지 않아 놀랍다고. 이유야 어떻든 간에 발행인의 입장에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르 디플로>를 접할 기회를 드리지 못한 점에 안타깝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존경하는 독자님, <르 디플로>는 지금 새로운 도약대에 오르려 합니다. <르 디플로>의 존재적 가치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실 독자님과 더불어, 한국 언론사상 유례없는 ‘혁명’을 만들어 가려 합니다. 저희에겐 대형 신문사처럼 막강한 네트워크나 광고지면이 없지만, 우리를 믿고 응원해주시는 독자님이 계시어 든든합니다. 독자님이 조금만 관심을 가져 주신다면, 지금처럼 대형 유통망이 <르 디플로>의 판매를 대행할 경우, 그들에게 지급하는 30~40%의 수수료를 아껴서 좀 더 좋은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투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위의 공공 도서관에 <르 디플로>를 추천해주십시오!
(22면 광고면 참조)
-친구 분들과 <르 디플로> 공부 모임을 만드시면 언제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르 디플로>의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언제든지 알려주십시오.
바로 반영하겠습니다.
 
저 멀리, <르 디플로> 프랑스판의 경우 8월호 마지막 면에 ‘2015년 7월호, 224110’이라는 숫자가 찍혀 있습니다. 한때 28만부를 발행한 프랑스판이 지난해 19만부까지 내려가다가 올 들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 22만부 이상을 찍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독자님과 함께라면, 머지않은 장래에 <르 디플로> 한국판의 1면에 자신 있게 10000이라는 숫자가 찍힐 그날이 다가오리라 믿습니다. 한 여름의 무더위에 건강유의하시고, <르 디플로>와 더불어 알찬 여름휴가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성일권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