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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으면 빨갱이?
말 많으면 빨갱이?
  • 성일권
  • 승인 2015.10.06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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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으면 공산당!” 지금까지 살면서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어본 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권위주의가 팽배한 상명하달식 사회체제에서 토를 달면 여지없이 배제되던 사회분위기를 자조적으로 은유하던 표현이지만, 선거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남용되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공산당원, 속칭 ‘빨갱이’가 될까 두려운 나머지 오랜 세월 권력의 강압적 언어를 논증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권력의 언어가 앞뒤 맞지 않는 형용모순으로 가득 차 있어도, 때로는 의미가 통하지 않는 외계어 같아도, 우리는 그저 굳게 입을 닫은 채 ‘벌거벗은 임금’ 우화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왔다.  
 
 미셸 푸코에 의하면, 언술은 전통적으로 말하기, 말하는 행위, 담화의 의미로 통용되지만, 실제로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특정한 지식과 규율을 강요하는 하나의 담론이다. 어떤 언술은 허용되고, 다른 언술은 허용되지 않는다. 분류, 배분, 순서를 정해서 만들어진 언술체계는 개개인을 통제하고, 지배하고, 순응시키는 데 동원된다는 것이다. 푸코가 지적했듯 우리 사회에서는 사실과 논리에 입각해 논증을 할라치면 권력은 “말 많으면 빨갱이”라는 말로 핍박했고, 여기에 관제언론과 제도권 언론이 나팔수로 동원되어 왔다. 
 
 입만 열면 ‘열린 토론’을 부르짖는 정치권의 표리부동과는 달리, 풀뿌리 운동단체들이 다양한 쟁점들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요즘의 현상은 대단히 고무적이며,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여·야 정치권이 오픈 프라이머리, 선거구  구획, 국회의원 정원, 노동개혁, 대북정책 등 다분히 선거공학적인 이슈로 이전투구하는 것과는 달리, 풀뿌리 운동단체들의 의제는 동물권, 소수자 권리, 등록금 문제, 학교자치 등 지극히 현실적이다. 한때 민주화 주역이라고 불려온 386세대는 20~30대 젊은이들이 보수화됐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하지만, 젊은이들과 실제로 대화를 나누어보면 대체로 여러 쟁점에 대해 386보다 훨씬 더 ‘진정한 의미의 진보’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들의 지적 욕구와 참여의지가 강렬한 반면, 이를 뒷받침할 실제의 텍스트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시민단체의 홈페이지나, 대학 연구소, 제도권 언론매체에서도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깊이 있는 텍스트를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독자 분들을 중심으로 <르 디플로> 읽기모임들이 점차 생겨나고 있다. 이 읽기모임들은 <르 디플로>가 다뤄온 환경, 전쟁, 교육, 자원, 예술, 동물권, 소수자, 자유, 평등과 불평등, 제3세계, 동아시아, 한미 및 한일관계 등 다양한 이슈들을 찾아 읽고 토론하는 장이 되고 있다. 
창간 7주년을 맞은 <르 디플로>가 이제 민주주의 실현의 중요한 텍스트로서, 담론 질서의 새로운 층위를 가다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 여러분에게 기쁜 마음으로 보고 드린다. 부디 우리가 10월부터 개최하는 이벤트, 독자가 새로운 독자를 추천할 경우 4만원대의 책을 선물로 드리는 ‘지성 나누기’에 많은 분들이 참여하기를, 그리하여 담론의 새 질서가 펼쳐지길 학수고대한다.(38~39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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