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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같은 다큐, 프랑스 국영TV의 역사왜곡
쇼 같은 다큐, 프랑스 국영TV의 역사왜곡
  • 리오넬 리샤르 | 역사학자
  • 승인 2009.11.05 2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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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사실까지 조작하며 스펙터클에만 몰두
다큐 생명은 충실한 자료와 균형 잡힌 시각

수백만 명의 텔레비전 시청자가 거의 6시간짜리 역사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시청하는데 어찌 축하할 일이 아닐까? 그러나 <아포칼립스>(묵시록)라는 일련의 다큐멘터리에는 비판정신이 엿보이지 않는다. 프로그램의 핵심 주제인 ‘반전체주의 투쟁 개념’이 이미 합의된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민주주의의 역할에 관계된 수많은 모순을 언급하지 않는다. 똑같은 이데올로기 노랫가락이 베를린장벽 붕괴 20주년에도 흘러나오고 있다.


9월에 텔레비전 채널 <프랑스2>는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5시간이 넘는 6편으로 구성된 제2차 세계대전 다큐멘터리 <아포칼립스>의 방영을 예고했다.(1) 대중의 호응은 엄청났다. 600만~700만 명의 시청자가 이 시리즈물을 지켜봤다.

<프랑스2>의 광고는 많은 사람에게 전세계 기록보관소에서 어렵게 찾아낸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미지를 꼭 봐야 한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다큐멘터리에는 비행기 엔진 소리와 집중포격 소리들이 울려퍼졌다. 게다가 모든 전선의 군사작전 실체를 가장 잘 드러내기 위해, 이미지들을 부분적으로 ‘채색’했다. 제작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색채의 복원”이 더 맞을 것이다. 잔해 위의 화염에는 노란색을, 아돌프 히틀러의 뺨에는 회색을, 이오시프 스탈린의 뺨에는 빨간색을 넣었다. 간단히 말해 모든 것이 눈길을 끈다. 젊은 세대가 현재 공상영화에서 흔히 보는 것들과 달라 너무 큰 괴리감을 준 게 아쉬웠다. 프랑스 텔레비전 의사소통 전문가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탁월한 프로그램의 장엄함을 완성시킨” 독창적 음악이 가미된 “뛰어난 시나리오”였다.

사실상 그 장면에는 시청자를 사로잡는 무엇인가가 있다. 이 전투에서 저 전투까지 모든 사람이 그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편집 솜씨는 무엇인가를 기대하게 한다. 또한 게임에 참여하려면 전쟁은 전쟁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적어도 반 이상의 화면에서 군인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전차, 보병대대, 전투비행대, 폭격, 연기 자욱한 폐허, 주검도 등장한다. 만약 강렬한 소음과 이어지는 폭발 장면에 충격적인 논평 문장들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유럽에서 태평양까지의 전투 장면을 바라보는 시선은 곧바로 지쳐버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지에다 주의를 집중시키게 하고, 의미를(혹은 오해를) 덧붙이는 것이 바로 그 논평이기 때문이다. 시리즈의 첫 장면에 붙은 타이틀은 ‘베를린 1932년’이다. 출처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이 요제프 폰 스턴버그의 영화 <푸른 천사>의 장면이 몇 초 동안 화면을 채운다. “마를레네 디트리히가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서 노래 부른다”고 설명했다. 사실일까? 1928년부터 마를레네는 <카바레나> 잡지 어디에도 출현하지 않았다. <푸른 천사>는 1929~30년에 촬영되었다. 1932년 마를레네는 <금발의 비너스>라는 스턴버그의 새 영화에 출연하느라 할리우드에 있었다.

▲ <진실>, 2000-루이 르두
당시 베를린의 무사태평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급 주택가의 커피 테라스를 오버랩으로 처리하면서 “토마스 만은 ‘운터 덴 린덴’가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노벨상 수상을 만끽하고 있다”라는 자막을 내보낸다. 놀랄 일이다! 이 작가는 뮌헨에 살았는데 바캉스 때 외에는 뮌헨을 떠나지 않고 악착같이 글쓰기 작업을 했다. 1929년 그는 소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로 노벨상을 받았다. 그런데 베를린이라고? 그는 1932년 괴테 사망 100주년 기념 연설을 하기 위해 3월 18일 프러시아 예술아카데미가 소재한 베를린에 갔다.(2)

토마스 만이 근심·걱정이 없었다고? 완전히 그 반대다. 연설이 끝난 후 그는 독일을 ‘인간 정신이 도달한 단계에 합당한’ 체제인 ‘이성적 질서’ 위에 올려놓기 위해, 괴테 정신의 유산자들인 ‘부르주아 계층의 아들들’을 초청해 민주주의 수호에 착수한다. 그 전날 밤 파울 폰 힌덴부르크 사령관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사실에 대해 <비엔나 신문>의 질문을 받은 그는, ‘파시스트 독일을 외치는’ 히틀러가 패배한 것이 기쁘다고 선언했다. 그가 볼 때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파시스트 기류의 해악을 불식하는’ 것이었다.

상투적 표현들의 나열

두 장면의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왜곡들은 <아포칼립스> 시리즈물이 작동하는 방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프로그램은 미리 짜인 담론에 맞추기 위해 조작되었다. 여기에는 미디어들이 반세기 전부터 퍼뜨린 상투적 표현들이 집약돼 있다.

현대사가 히틀러와 스탈린이 각각 구현한 2개의 ‘전체주의’에 의해 지배되었다는 중심 담론에서 모든 것이 맴돌고 있다. 민주주의는 이런 전체주의의 틀에 직면해 마비되었다. 이런 도식에 따라 첫 방송의 첫 장면은 1945년 5월 베를린의 소련 군대에서 시작된다. 베를린이 거짓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증오’에 가득 찬 소련 군대는 도상에서 마주친 ‘몇몇’ 독일 사람을 해치고, 체계적으로 ’독일 여성‘을 강간했다고 우리에게 보여준다. 마지막 방송은 “이 시리즈는 모든 전체주의 희생자에게 바쳐진다”라는 말로 끝맺는다.

세계적 분쟁 사건들을 도식적인 틀을 통해 재추적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히틀러가 독일의 수장에 오름으로써 1933년 1월 30일 유럽에서는 “모든 것이 동요한다”라는 논평이 들어간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의 “대중에 대한 놀라운 장악력”과 대치 중인 다른 “전체주의” 덕택이었다. “독일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의 명령을 받고 있었으며, 그들에게 사회주의자들은 진짜 적이었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과 동맹을 맺지 않았다. 당시 독일 공산주의자들은 국제노동자연맹(인터내셔널)을 맺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독일의 경제·사회적 배경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1933년 2월부터 시행된 압제 체제의 뒤틀린 상황, 거대한 국가 산업자본의 나치 체제 옹호, 반체제 인사들의 제거, 수많은 독일인들의 이민 행렬, 반국가 사회주의 투쟁 호소에 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스페인의 프랑코 지지자들에 대한 독일과 이탈리아의 지원, 1938년 합병되기 전의 오스트리아 상황과 특히 총리 돌푸스의 암살, 영국과 프랑스 정부의 망설임,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프랑스의 배신, 폴란드 정부의 우유부단은 또 어떤가? 텔레비전 시청자는 그런 사실을 알 필요가 없는 것처럼 언급조차 안 한다.

결국 1939년 8월 23일 2개의 주요 ‘전체주의’ 동맹이 재앙을 일으킨다. 논평은 소련이 제안한 공동방위계획을 서구가 끈질기게 거부한 사실을 ‘망각해버리면서’, “서구 국가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소련을 신뢰했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히틀러가 스탈린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빠른 속도로 서구 국가들을 점령할 것이다”라는 논평이 계속된다. 이것 자체로는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스탈린 자신도 수백만의 가련한 사람들을 수용소에 처넣었기 때문이다”. 음흉한 스탈린은 “독-소 협정이 전쟁의 신호다”라는 사실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줌으로써 눈을 뜨게 해줬다. 결과적으로 프랑스와 다른 나라를 포함한 유럽의 공산주의자들은 “독일이 소비에트를 공격한 후인 1941년 6월 22일에야 반나치 투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스탈린의 책임이 막중했다 해도, <아포칼립스>는 케케묵은 풍자적 단순 설명으로 우리를 오도하고 있다. 프랑스 공산당의 레지스탕스 참여 문제는 10여 년 전부터 전문가들이 이미 정리했다. 1940년 여름, 점령자와의 타협안을 공산당 지휘부가 모색했음에도, 공산당은 점진적으로 레지스탕스에 참여했다. 예를 들어 다양한 자료 증거에 따르면 공산당이 국민전선의 후원하에 프랑스의 독립투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텔레비전 시청자의 지적 수준을 무시한 사실은 사건들에서뿐만 아니라 그 연대순에 대한 수많은 추측·모순·오류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독일군은 1939년 9월 3일 폴란드를 침공하지 않았다. 영국이 대독 전쟁을 선포한 후인 9월 1일 아침에 독일의 급강하 폭격기들이 비엘룬이란 작은 촌락을 폭격해 1만6천 명의 주민 중에 12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1944년 7월 20일의 히틀러 암살 음모가 실패함에 따라 히틀러는 5천 명의 혐의자들을 ‘살해’가 아니라 체포하게 하는데 그중 200명은 사형에 처해졌다. 빌헬름 카이텔 원수가 베를린에서 서명한 항복 날짜조차 잘못되었다. 항복 날짜는 굵은 글씨로 표시된 1945년 5월 8일이 아니라 그 다음날이다. 그래서 소련이 나치독일에 대한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5월 9일을 국가 경축일로 채택했다.

반유대주의, 수용소, 유대인 학살에 대한 설명도 혼란스럽다. “전쟁의 끝이 불확실해질 경우에만” 학살이 계획돼 있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941년에 이미 나치 지도자들은 “전쟁의 끝”을 의심하고 있었다. 1945년 2월 4~11일의 얄타회담을 상기시키면서 프로그램의 혼란은 절정에 다다른다. 방송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육체적 연약함 때문에 모든 사항에서 스탈린에게 양보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윈스턴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이 함께 찍은 널리 알려진 사진은, 오래 이어져내려온 전설처럼, “냉전의 진정한 시작을 표시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사실 동맹국들은 그때 히틀러에 대한 최후 공격을 조정하고 있었다. 회담에서는 낙관주의가 팽배했고, 전쟁 후를 대비해 유엔의 설립 기반들이 만들어졌다. 게다가 처칠은 한 달 뒤 스탈린과 폴란드에 대한 자신의 시각, “얄타 정신과의 단절” 위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1944년 10월 비밀협정에서 소련의 이단 괴물과 유럽 분할을 논의한 사람은 바로 영국 총리다.

사실관계 왜곡 곳곳 드러나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마구 하는 바람에 논평이 이미지들의 내용을 벗어나고 텍스트가 잘못된 진술을 하게 된다. 1939년 9월 초에 폴란드 군대가 말을 타고 창을 던지며 나치 독일의 탱크를 공격했을까? “폴란드 군대가 독일 탱크를 맞이해 창기병을 동원한 구시대의 전투를 벌임으로써 대량 학살을 당했다”고 방송은 단언했다. 폴란드라는 지체(遲滯)국가를 비웃기 위해 트릭으로 만든 날조를 괴벨스의 선전부가 그럴 법하게 흘려보냈던 내용이다.(3)

기록보관소의 이미지 대부분이 나치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된다. 아마추어 영화제작자의 몇몇 촬영 장면을 제외한 나머지 이미지들은 전쟁 중의 군대를 위해 전문 촬영기사가 찍어낸 것이다. 그 이미지들을 전쟁의 여러 사건들에 대한 믿을 만한 설명으로 제시하는 것은 기만이다. 그 이미지들은 맥락 속에 재배치될 필요가 있다. <아포칼립스>에서 그런 것처럼, 재구성된 화면의 배합 속에 그 이미지들을 삽입하는 것은 진실이 내재적으로 결여돼 있다는 사실을 증폭시킨다. 나치가 촬영한 수km의 필름에서 뽑아낸 모든 이미지를 적용한 방식도 경망스럽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동부전선의 장면은 최악이었다. 20초 동안 레닌그라드 주민들이 돌을 운반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현실에서는 레닌그라드 주민이 1941년 9월 8일부터 1944년 1월 27일까지 거의 900일 동안 포위돼 있었다.

새로운 다큐멘터리가 시각적인 매혹에만 매달리려 하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비록 미디어가 손님 끌기를 할지라도 중요한 건 원래 선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제의 이미지들을 공정하고 교육적으로 사용해 이미 확고하게 확립된 지식을 완성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아포칼립스>는 이런 본질과 동떨어져 있다. 대학 연구물들이 시리즈물 전체에 의해 획득된 자료들보다 훨씬 더 확실하고 더 앞서 있다. 게다가 자문이나 조언 자격을 가진 어떤 역사가도 프로그램 첫머리 자막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 시리즈가 전달하는 수많은 정보를 기탄없이 찬양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실이 왜곡됐고 확인되지 않은 비방과 생략이 난무한다. 그런데 누가 감히 이 기록영화를 비판할 수 있을까? 이 영화 옹호자들은 영화가 ‘전문가들’을 위해 제작된 게 아니고 대중에게 충격을 주는 게 목표였다고 핑계를 대고 있다. 그리고 파편적 지식밖에 없던 기간에 대해 종합적으로 알게 된 것을 시청자가 기뻐한다고 주장한다. “멋진 이미지 역사 수업” 같은 이런 야망 큰 작품을 비난하는 것은 TV 프로그램 감독들이 관행을 넘어선 위험을 더 이상 무릅쓰지 못하게 해 범용한 작품만을 만들게 할 것이라고 <텔레라마>는 말한다.

위협적인 방어 자세다! 달리 말해 격정적 서정시나 광고선전 문구를 위해 모든 비판적 성찰을 포기하자는 것이다. 이런 추론이 권장하는 건, 최악을 염려해 결정권자들의 문화적 선택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글·리오넬 리샤르 Lionel Richard
여러 대학의 명예교수, <요제프 괴벨스, 배후조장자의 초상>(앙드레 베르사유 출판사, 브뤼셀, 2008)을 최근 출간함.

번역·고광식 kokos27@ilemonde.com 
파리8대학 언어학 박사. 역서로 <카인> <방법서설> <성의 역사> 등이 있다. 


<각주>

(1) <아포칼립스, 제2차 세계대전>은 장루이 귀이오, 앙리 드 튀렌, 이자벨 클라르크와 다니엘 코스텔의 시리즈 방송물로, 이자벨 클라르크와 다니엘 코스텔이 6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가와이 겐지가 음악을 담당했다. ‘프랑스 텔레비전 유통회사’가 3개의 DVD로 제작해 보급했다. 다니엘 코스텔은 같은 제목으로 아크로폴 출판사(29유로)에서 이 텔레비전 시리즈물을 책으로 출판했다. 출판사의 광고는 이 책을 “기억 속의 증인을 모든 세대에게 전달해주는 충격적이고 교육적인 책”이라 소개하고 있다.

(2) 토마스 만, <이성에의 호소, 에세이, 1926~33>, 피셔, 프랑크푸르트, 1994, p.341~342와 p.495~496.

(3) 앙드르제이 니외와즈니, ‘탱크부대에 대항한 창기병?’, <무기에 대한 역사 간행물>, 249호, 2007, http://rha.revu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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