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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만이 곧 살길이다?
빚만이 곧 살길이다?
  • 세르주 알리미|프랑스판 발행인
  • 승인 2009.12.03 16: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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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덕에 은행들은 본연의 색을 되찾았다. 은행들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고 힘들었던 위기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양상이다. 다음에도 또다시 이런 위기가 발생할 경우, 은행들은 정부를 ‘볼모’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각 정부는 골드만삭스(미국), 도이체방크(독일), BNP파리바(프랑스) 등 자국의 은행을 살리기 위해 도를 넘어서는 공적자금을 쏟아부은 탓에 지금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이제 은행들의 도산은 교묘하게 유보됐으나, 이번에는 예산 부족과 수익성이라는 이름 아래 각 정부의 공공예산들이 대폭 축소되고 있다. 즉, 경제위기로 더욱 무거워진 부채 비중이 이번에도 역시 사회복지와 공익사업 폐기의 구실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1년 전, 우리가 잘 알다시피, 자유주의자들은 혼수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그들은 “국고가 동이 났다”는 반복된 주장에서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소생할 길을 찾았다.

살아나갈 돌파구를 찾은 그들은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새로이 보수 연정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추가로 240억 유로의 세금이 감축됐으나, 이 나라의 적자는 이미 다음해 국내총생산(GDP)의 6.5% 가까이 될 전망이다(유럽연합의 ‘안정 및 성장에 관한 협약’에서 정한 최대치의 2배를 넘는 수준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집권 이후 프랑스 우파는 추가 노동시간에 대한 과세를 꾸준히 철폐해왔다. 기업의 투자 수익에 대해서는 ‘세금 방패’를 만들어줬고, 상속세는 완화시켰다. 또한 우파 정부는 기업에서 거둬들여 지방자치단체에 제공하던 직업세를 철폐했다.

과거 보수 진영들은 세금을 인상하면서까지 재정 상태의 균형을 맞추는 데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지난 30년 이래로 보수는 의식적으로 공공적자를 만들어내며 정부의 사회복지 개입을 무력화했다.

2002년 미국의 리처드 체니 부통령은 직접세의 추가 인하를 염려하던 재무장관에게 “레이건 대통령은 적자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입증해주었다”고 반박했다. 체니 부통령이 이를 통해 하려던 말은 비록 재정적자가 나더라도 통치권자에게 그렇게 큰 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첫 임기 동안 적자를 세 배로 불리고도 1984년 대선에서 당당히 승리를 거두지 않았던가. 하지만 막대한 재정적자는 그 후임자에게 더 무거운 짐이 되기 마련이다. 더욱이 새로 정권을 잡은 이 후임자가 우파가 아니라면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이들은 예산을 헤프게 썼다는 혐의를 받을 수 있다. 하여 오바마 대통령 또한 자신의 건강보험 개혁안이 채택되는 최소한의 가능성을 확보하려 사전에 이 개혁안이 공공부채를 단 한 푼도 더 높이지 않을 거라는 약속을 해야 했다.

프랑스 정부의 경우 역시 카페나 요식업체가 내야 할 부가가치세를 3분의 1로 줄여줌으로써 최근 24억 유로의 세수를 기꺼이 포기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형평성’을 구실로 정부는 산업재해 피해자들에게 지급되던 수당에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1억5천만 유로를 거둬들였다. 사르코지 정부가 이런 면에서 탁월한 자질을 갖추기는 했으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따라가려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남아 있다. 레이건 정부는 부유층의 세금을 삭감한 뒤, (최악의 상태로 치달은) 적자를 줄이기 위해 교육예산을 삭감하면서 학생식당 쪽에 식사 메뉴의 영양학적 가치를 평가해 케첩을 채소로 분류하라고 요구했다.

1978년 전세계를 휩쓴 조세 반혁명의 시동을 걸었던 곳이 바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주지사로 있던 캘리포니아주였다. 오늘날 캘리포니아주의 금고는 완전히 바닥난 상태다(이곳의 적자 규모는 260억 달러에 이른다). 이에 따라 지난 11월 17일, 공립대학은 등록금을 32% 인상했다. 이에 앞서 일자리는 이미 2천 개나 없어진 상황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역서로 <미래를 심는 사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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