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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해방’이 두려운 졸렬한 사회
어린이 ‘해방’이 두려운 졸렬한 사회
  • 이주영
  • 승인 2016.05.02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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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방정환을 빼놓을 수 없다. 5월 5일 어린이날, 그리고 이 ‘어린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이 방정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딱 여기까지다. 많은 사람들이 방정환에 대해 그 이상은 잘 모른다.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우리 겨레의 역사에서 불꽃처럼 살다 간 방정환이 왜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었고, 왜 어린이날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두가 봄이다.
산도 봄 물도 봄이고
사람도 봄이고 공기까지도 봄 공기다.
그 부드럽고 따스한 봄바람에 섞이어
가장 유장하고 가장 평화로운 노래 소리가
독립문 전체를 싸고돈다. 그것은.   

방정환이 쓴 <유범>이라는 소설(1)에 나오는 노래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을 하기 전날 그 주역인 학생들이 인왕산 성 끝에서 독립문을 내려다보면서 마음속에 그려보는 세상이다. 방정환은 이 노래처럼 조선을 따스한 봄 공기가 가득차고, 아름답고 평화로운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 한다. <개벽>을 비롯해 천도교에서 발행하는 여러 가지 잡지 편집을 맡아서 민족 해방, 여성 해방, 노동 해방을 위한 언론 활동을 펼친다. 나아가 어린이 운동 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하고, 색동회 회원들과 함께 <어린이>라는 월간지를 펴낸다. 이 잡지는 1930년 무렵에는 약 3만부를 발행할 정도로 호응을 받았다. 곧 수많은 어린이들이 <소년회>를 만들고, 모임에서 <어린이>를 함께 읽으면서 스스로 토론과 문예체 활동을 비롯한 다양한 소년 운동을 했다. 
당시 소년회는 천도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단체에서 만든 소년회와 지역별로 만든 소년회가 있었는데, 그 활동이 신문 기사로 알려진 소년회만 500개가 넘었다. 신문에 나지 않은 소년회도 상당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월간 <어린이> 소년회가 지향하는 사상은 1923년 5월 1일 제1회 어린이날에 나온 ‘소년 운동의 기초 조건’이라는 어린이 운동 선언문에 잘 나타나 있다.

 
▲ <가방 속의 꿈>,2016 - 권재원
<소년 운동의 기초 조건>
1.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1.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1.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허하게 하라.

우리들의 희망은 오직 한 가지, 어린이를 잘 키우는 데 있을 뿐입니다. 다 같이 내일을 살리기 위하여 이 몇 가지를 실행합시다.

-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하십시오.
- 어린이를 결코 윽박지르지 마십시오.  
- 어린이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 주십시오.
- 어린이를 항상 칭찬하며 기르십시오.
- 어린이 몸을 항상 주의해 보십시오.
- 어린이들에게 잡지를 자주 읽히십시오.
- 희망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다 각각 어린이를 잘 키웁시다.(2)

앞 세 가지는 기본 방향이고, 아래 여덟 가지는 실천 사항이다. 기본 방향을 보면 어린이 해방 선언이다. 어린이를 윤리적·경제적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윤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 가정과 사회에서 평화롭게 배우고 즐기며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즉 어린이 해방 선언을 한 것이다. 방정환이 지향하는 세상은 어린이가 어른과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어린이 해방 세상을 추구하고 있다.
이렇듯 완전한 어린이 해방 선언은 인류 역사에서 최초라고 할 수 있다. 국제 사회에서 어린이 권리에 관한 최초 선언으로 보는 제네바 선언과 견주면 그 중요성을 더욱 또렷하게 알 수 있다.

1. 어린이에게는 물질과 정신 양면에서 정상적으로 자라나는 데 필요한 수단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2. 배고픈 어린이는 먹여 주어야 하고, 몸이 아픈 어린이는 돌보아주고, 뒤처진 어린이는 도와주고, 잘못 비뚤어진 어린이는 바로잡아 주고, 부모 없고 집 없는 어린이는 일할 곳과 도움을 주어야 한다.
3. 어린이는 재난을 당했을 때 제일 먼저 구조돼야 한다.
4. 어린이는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하고 모든 형태의 착취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5. 어린이는 자기의 모든 재능을 자기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데 바쳐야 한다는 것을 깨닫도록 길러져야 한다.(3)

이 선언문은 국제어린이구호협회에서 1923년 선언했고, 1924년 국제연맹에서 제네바선언으로 채택했다. 제네바 선언문은 어린이를 권리 주체보다는 보호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어린이를 삶의 주체로 세울 수 있도록 해방시켜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1923년 방정환이 주도한 제1회 어린이날 선언문이 훨씬 앞서 있다. 1920년대 전국에서 강렬하게 일어나던 어린이 해방 운동은 1931년 방정환이 세상을 떠난 후 일제 탄압에 위축됐다. 더 안타까운 일은 어린이날이 어린이 해방이 중심이 아니라, 소비하는 날로 변질된 것이다. 그 결과 지금 우리 사회는 어린이가 없는, 즉 미래가 없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 나라에 사람이 있는가?
아직도 이 나라에 사람이 있다면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
그들을 가두어 놓은 쇠창살 우리를 헐어
풀어놓아 사람의 자식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아이들을 살리는 길은 오직 이것뿐!(4)

평생 삶을 가꾸는 참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우리나라 현대 교육사 흐름을 바꿔놓은 이오덕이 유서처럼 쓴 ‘아이들이 없다’의 시 한 부분이다. 이 시처럼 우리나라는 지금, 아동복지법에 규정한 18세 미만 미성년자들이 매년 수백 명씩 자살하는 나라, 아니 나쁜 어른들로 인해 타살되는 나라다. 행동과 사고력 모두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쇠창살 우리에 갇혀 사육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4․16 세월호 사건이 그 끔찍한 결과를 증거하고 있다. 넘어가는 배 안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보이지 않는 권위에 갇혀서 생명을 잃은 어린이들, 금수저 흙수저를 가르는 쇠창살에 갇힌 어린이들, 헬조선에 갇힌 이 아이들을 풀어주지 않고는 어린이도 우리 겨레도 살아날 길이 없다. ‘희망을 위하여 내일을 위하여’ 어린이들을 잘 기르는 길은 오직 하나, 어린이들을 믿고 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 살기 위해 해방하려고 노력하는 길을 억압하거나 막아서지 말아야 한다.
모든 생명이 그렇듯이 어린이들은 스스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힘을 갖고 태어난다. 예수님은 어린이 같아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동학 2세 교주 최시형님도 어린이가 곧 한울님이라고 했다. 천도교에서는 어른과 어린이가 평등하기 때문에 서로 높임말을 쓰고 서로 맞절을 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을 부처로 보면 자신이 부처고, 다른 사람을 돼지로 보면 그 자신이 바로 돼지라고 했던 무학 대사 말처럼 어린이들을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할 한울님으로 보면 그 자신도 한울님이 되는 것이고, 어린이를 돼지처럼 우리에 가두고 키워야 하는 가축으로 보면 그렇게 보는 어른도 돼지가 되는 것이다. 아니 이미 수많은 어른들이 사람다운 사람이길 포기했기 때문에 어린이들을 사람이 아닌 경제 생산도구인 기계나 가축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겨레가 미래에도 지구촌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 대한민국이 더 이상 지옥이 되지 않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가려면, 방정환이 지향했던 어린이 해방 운동을 되살려 내야 한다. 어린이가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들이고, 그 새로운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믿고 맡겨야 한다. 방정환 말대로 어른들이 어린이를 소 고삐 잡듯 끌고 가려고 하지 말고 어린이들을 따라 가야 한다. 이오덕 말대로 어른이 어린이를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어린이를 보고 배울 수 있는 어른이 돼야 한다. 현대사를 보면 어린이들이 많은 일들을 해낸 사례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 않은가? 
대한민국을 건국한 3월 1일 독립선언,(5) 독립만세를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지게 한 일은 15세가 된 유관순을 비롯한 어린이들이다. 그 뒤 6․10 만세운동도 중‧고등학생들이 주도했고, 광주학생의거도 학생들이 앞장선 항일운동이다. 헌법에 명시한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도 그 불길은 초‧중‧고 학생들, 곧 어린이들이다. 이렇듯 대한민국 건국과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살려온 사람들은 어린이들이다. 당시 어른들이 그 어린이들을 짓밟은 것이 아니라 따라간 것이다. 그래서 3․1혁명이나 4․19혁명이나 본바탕은 어린이혁명이다. 어린이 마음을 잃지 않은 젊은이와 늙은이가 어린이를 따라서 어린이와 함께 이룬 혁명인 것이다. 이런 어린이들의 생명력은 2002년 월드컵 응원 때, 2008년 촛불집회 때, 최근 세월호 추모에 참여하는 초중고 어린이들한테서 찾아볼 수 있다. 무엇보다 13개 시도에서 진행하고 있는 혁신학교 만들기에 앞장서는 학생들 몸짓과 눈빛에서 찾을 수 있다. 3․1대혁명이나 4․19혁명과 눈빛은 같으면서도 몸짓은 또 다른 어린이혁명의 물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어린이혁명을 어른들이 무시하고 짓밟느냐, 아니면 어린이들을 믿고 그들이 스스로 일어서는 삶을 존중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와 겨레의 미래가 결정된다.
 방정환이 만든 ‘어린이’라는 말은 인생을 어린이, 젊은이, 늙은이 셋으로 나눠서 모두 높임말로 부르도록 한 것이다. 어린이는 18세 미만을 말한다. 언제부터인가 어린이라는 말을 초등학교 학생으로, 요즘은 아예 유치원생이나 그보다 더 어린 아기들로 좁혀서 쓰는 말로 퇴화시킨 것부터가 어린이를 우리 사회에서 죽이고 없애는 것이다. ‘어린이’를 지키고 살리려면 ‘어린이’라는 말부터, 방정환이 주장하는 어린이 해방에 맞는 의미와 가치로 부활시켜야 한다.  


글·이주영 
문학박사. 어린이문화연대 대표, 우리헌법읽기국민운동 공동대표, 어린이 월간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 기획편집위원, 계간 어린이문학 발행인. 저서로 <어린이문화 운동사>, <이오덕-아이들을 살려야 한다>, 동화집 <아이코 살았네>, <삐삐야 미안해>이 있다. 경민대학교 아동독서지도과에서 글쓰기를 강의하고 있다. 



(1) 방정환. 개벽, 1920년 6월호. 장정희 <방전환의 소설 流帆 연구> 한국근대문학회 2015, 하반기. 371쪽에서 재인용하면서 필자가 현대문으로 수정.
(2) 이주영. 어린이 문화 운동사, 보리, 2014, 15쪽-17쪽. 
(3) 나종일. 자유와 평등의 인권선언 문서집, 한울, 2012, 1047쪽.
(4) 이오덕. 얘들아 너희들의 노래를 불러라, 고인돌, 2013, 55쪽.
(5) 대한민국은 1919년 3월 1일 온 민족이 독립선언을 하면서 건국했고, 4월 13일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해, 침략국인 일본제국에 맞서 싸웠다. 이는 현재 헌법 전문에서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돼 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에도 ‘대한민국 원년 3월 1일 우리 대한민족이 독립을 선언’했다고 명시돼 있다. 곧 대한민국 원년은 1919년이다. 이를 부정하는 건 곧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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