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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속의 미국정치
혼돈 속의 미국정치
  • 세르주 알리미
  • 승인 2016.09.01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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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첫 번째 월요일은 미국의 노동절이다. 그런데 올해의 노동절은 다소 기이한 날이 될 듯하다. 공화당 후보의 토론장에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주로 백인남성) 노동자들이 대거 몰리는 광경이 연출됐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는 미국 내 오랜 공업도시의 탈공업화를 재촉한 자유무역협정을 공격함으로써 지지층을 얻었다. 탈공업화와 함께 노동자층의 지위 실추, 고통, 절망도 덩달아 찾아왔다. 트럼프가 약속한 ‘법과 질서’는 1960년대의 미국에도 있었다. 당시 백인들은 고임금 일자리를 보장하는 대학학위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집집마다 차를 두 대씩 끌고 다녔고, 휴가도 며칠씩 누릴 수 있었다. 
 
뉴욕 출신의 억만장자 후보는 로널드 레이건이 만든 조세제도보다 더 퇴화된 시스템을 주장하고, 언행불일치를 일삼는다(방글라데시와 중국에서 제품 생산, 자기 소유의 고급호텔에 불법체류자 고용). 노조활동이 위축되지만 않았어도, 트럼프가 이토록 쉽게 노동자의 대변인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40여 년이 지나도록 미국의 진보주의 정당들이 자신들의 지지층과 노동자 출신 간부들을 특권을 누리는 직업정치인과 홍보전문가, 고위공직자와 기자들로 대체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좌파와 노조는 대중교육, 토지 구획정리, 지능적인 노동계층 ‘관리’ 등의 과업을 실현했다. 이들은 지지 세력을 정치적으로 움직였다. 사활이 걸린 문제가 발생하면 투표를 독려했고, 생계를 위협받을 때면 사회보장제도를 보장해주었다. 또한 노동계층 연대의 이점과 노동투쟁 승리의 역사를 상기시키고, 분열·제노포비아·인종차별에 대한 위험성을 일깨웠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이러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설혹 한다 해도 예전만은 못하다. 그로 인해 이득을 얻는 이가 누구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정치 네트워크가 부실한 사회운동은 발걸음이 멈추기 무섭게 ‘정체성 논란’이라는 대홍수 속에 잠기기 마련이다. 이러한 탈선을 부추기는 이슬람국가조직(IS)의 학살행위는 미국 극우파 선거운동에 요긴하게 활용된다. 
 
미세한 부분만으로도, 이념적 풍경의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때가 있다. 지난 8월 13일, 조르주 세기(Georges Seguy)의 별세 소식이 부르키니 논쟁에 빠진 프랑스 언론에 의해 순식간에 단 몇 줄로 묻혀버렸다. 최근 몇 개월간의 뉴스가 역사적 지식의 전부인 대다수 기자들은 아마도 고인이 프랑스 최대노조를 15년 간 이끈 인사라는 사실을 몰랐나보다. 그러고도,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종용한다. 그러나 국민의 눈에 민주주의가 자신들을 짓밟는 특권층의 장식품으로 비쳐지지  않을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확립될 수 있다.  


글·세르주 알리미Serge Halimi

번역·이보미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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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 알리미
세르주 알리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프랑스어판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