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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가위눌림
청춘의 가위눌림
  • 문정빈
  • 승인 2016.09.30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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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말한다
     

몸을 움직일 수도, 숨을 쉴 수도, 말을 할 수도 없다. 익숙한 몸짓으로 손끝을 까딱까딱 거려본다.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야, 때가 돼야만 풀리는 한밤의 ‘가위눌림’. 나이가 들면 뇌의 전전두엽 부위가 퇴화된다고 한다. 그래서 잠은 줄어들고, 줄어든 잠은 얕아진다. 자는 것도 깨어있는 것도 아닌 가수면 상태. 
한창나이의 청춘인데 깊은 잠을 잘 수도, 긴 잠을 잘 수도 없다. 늘 실체 없는 누군가가 ‘청춘의 나’를 쫓아온다. 그렇게 뇌의 기능도. 삶의 시계도 멈춰 버렸다. 옆방의 할머니가 문밖을 나선다. 새벽 세시 사십분. 할머니가 밤새 쌓인 종이더미들을 찾아 헤매는 시간. 외벽을 사이에 두고 살고 있는 일흔의 할머니. 그리고 나. 그렇게 할머니의 시계도, 나의 전두엽도 우리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한밤의 가위눌림에 갇혀있다.
“사람한테도 가위에 눌리나 봐요.” 드라마 <청춘시대> 속 진명은 권력을 이용해 절박한 진명을 이용하는 매니저에게 말한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랑 다른 사람도 아닌데 이상하게 겁먹고. 어렵고. 마치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처럼.” 내 운명을 내가 결정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내 노력이 닿지 않는 곳이라고 체념할 때. 그 모든 건 삶을 짓누르는 권력이 된다. 그건 새벽을 휘감는 혼령이었을까. 편의점 최저시급을 제대로 주지 않았던 사장이었을까. 아니 그건 나와 같지만. 살기 위해서 나를 짓눌러야 했던 그 누군가였을지도 모른다.
내겐 집이 그런 존재였다. “보증금 백만 원짜리 집은 여기밖에 없어. 받아주기만 하면 들어가야지.” 부동산 중개업자는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라 숨이 턱 끝까지 찬 목소리로 말했다. 등이 땀으로 젖어, 더 이상은 못 걸어가겠다 싶을 때쯤 아저씨는 이 집이라고 했다. 집주인은 집을 3천만 원으로 전세를 얻어 그 집을 다시 내게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만원에 세를 놓는다 했다. 옆집에는 폐지 줍는 일흔의 할머니가, 그 옆집에는 혼령을 모신다는 여든의 할머니가 살았다. ‘네가 내 집이구나’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를 받아주는 곳. 그곳이 서울 하늘 아래 유일한 내 집이었다. 하나의 집을 외벽으로 나눠 만든 세 개의 집 중 하나였다. 그래서 옆집의 할머니가 코를 고시는 소리. 외출하는 소리. 텔레비전을 보는 소리가 한 집에 있는 것처럼 전해졌다. 그 점이 좋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아스팔트의 도로변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던 단층집은 한낮의 햇볕을 모두 흡수했다. 집 안에 있으면 땀이 비올 듯이 쏟아졌고, 그래서 집안이 밖보다 더 더웠다. 방안을 날아다녔던 미국 바퀴벌레는 밤마다 집에 들어가는 일을 두렵게 했다. 하지만 가장 두려웠던 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노력해도 나쁨이 좋음으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일흔의 삶도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는 것. 이 모든 것이 한 발 앞을 가늠하는 일조차 두렵게 했다.
달리기의 결승점. 좋은 대학을 가는 일. 좋은 직장을 얻는 일이 피날레라고 꿈꿨던 순간이 있었다. 그 결승점만 넘으면 삶이 무지갯빛으로 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좋은 직장을 얻는다 해도, 보증금 백만 원이 천만 원이 되고 삼천 만 원이 된다 해도, 내 보증금만큼 오른 전세 값에 또다시 집을 찾아 헤매야 한다. 임대주택 비중이 5%에 불과하니. 그것을 얻는 것 역시 내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가족 중 누군가 큰 병에라도 걸린다면 그 병원비를 감당하는 일 역시 내겐 힘에 부치는 일이다. 결혼을 해 아이를 낳는다 해도 사교육이 곧 교육의 성과를 결정하는 현실에서 그것 역시 내 노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다. 로또 당첨만큼 어려운 일. 로또 당첨처럼 노력으로 안 되는 제비뽑기 같은 일. 그런 일들이 지금 이 시간. 이 땅에선 결코 변하지 않을 상수(常數)처럼 버티고 있다. 그런데 그 상수들이 나와 할머니. 그리고 대다수의 평범한 우리에겐 숨을 쉬고, 잠을 자는 일처럼 없어서는 안 될 절실한 일들이다. 그래서 잠을 자는 일도. 꿈을 꾸는 일도 두렵다.
이 밤. 가위눌림이 끝날 것 같지 않다. 새벽 세시 사십분. 할머니가 문 밖을 나선다. 노력해도,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의 가위눌림은 도돌이표처럼 계속된다는 사실을 할머니도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벗어날 수 없다.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두엽이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 멈춘 시계가. 우리의 멈춘 시계가 다시 흘러갔으면.  

 
 
글·문정빈
자전거와 음악을 좋아하는 청년. 정직한 땀의 노력이 더 많이 담기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그런 ‘나’와 같은 ‘우리’에게 조금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어함. 언젠가는 그런 현실의 기록들을 발로, 글로 담아내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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