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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위험신호가 울리고 있다”
“파시즘의 위험신호가 울리고 있다”
  • 김진주
  • 승인 2016.11.21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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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인터뷰

2014년 11월 26일, 프랑스에서는 ‘콜라보라시옹(Collaboration; 나치 독일에 부역한 반민족행위)’을 주제로 한 전시가 열렸다. 파리의 마레 지구에 위치한 국립기록보존소에서 4개월 남짓 진행된 이 전시는 해방 7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 국방부가 주최한 국가 차원의 행사였다. 한편, 같은 해에  ‘해방’ 70주년을 맞은 다른 한 나라에서는 한 마음으로 과거를 청산해야 하는 정부와 국민 간에 일어난 ‘역사전쟁’이 한창이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및 ‘제2차 한일굴욕협정’이라 불리는 한·일 위안부 합의 등으로 역사를 왜곡하려는 친일정부와, 이를 저지하려는 ‘역사독립군’ 간에 전투가 벌어졌던 것이다. 이 치열한 전장의 중심에는, 25년 간 역사독립군을 이끌어온 민족문제연구소(이하 ‘민문연’)가 있었다. 그리고 1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후, 민문연은 부역자 청산에 있어서만큼은 선배격인 프랑스에서 “제법 강력하다”는 백신을 발견, 국내에 입수했다. 

프랑스보다 약 2년 늦게, 그리고 훨씬 짧은 기간 투여되는(1) 이 백신의 이름은, 다름 아닌 ‘고통스러운 과거와의 대면’이다. 우리 내면에 증식하는 ‘망각과 외면’ 박테리아와, 전 세계적으로 감염자가 확산 중인 ‘파시즘’ 바이러스를 억제하고자 수입된 이 백신은, 과연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우문이지만 현답을 듣고픈 욕심에, 동대문구에 위치한 민문연 본부를 찾은 날은 절묘하게도 11월 17일,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의 서거일이자 순국선열의 날이었다. 

연구소의 겉모습은 짐작했던 것보다도 소박했다. 그러나 35명의 정예요원들과 금액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자료들로 가득한 내부를 보고 나면, 소박함이 넘치는 겉모습은 마패를 감추기 위한 암행어사의 낡은 도포자락으로 다가온다. 5층 자료실에서 임헌영 소장과 김승은 자료실장, 두 사람과 마주앉아 이번 전시를 기획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이런 테마의 전시를 구상한 시점은 1991년 연구소를 창립할때 부터였습니다. 부역행위와 부역자, 우리 기준으로는 친일행위와 친일파에 대해 규명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연구소의 핵심 사명이니까요. 단지 그 방법이 관건인데,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백년전쟁>등 동영상 제작, 현재 모금 중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의 설립 등이 그 방법들이지요. 그리고 올해 2월, 프랑스가 해방 70주년을 기념해 콜라보라시옹 전시를 진행했다는 기사를 읽고 이거다, 싶었지요.”

역사 청산에는 완성이 없다. 배신자의 이름, 영원히 남겨야

그렇게 프랑스의 ‘콜라보라시옹’ 전시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민문연 사람들은 “아, 이거다!” 하면서도 한편 의문이 생겼다. 해방 70주년에 왜 자랑스러운 레지스탕스에 대한 전시가 아니라, 수치스러운 콜라보(Collabo; 나치 부역자)에 대한 전시를 할까? 프랑스는 부역자 청산을 모범적으로 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프랑스를 여러 차례 방문했던 임헌영 소장은 곧 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우선, 레지스탕스의 희생을 기리는 박물관들이 이미 너무나 잘 갖춰져 있다는 겁니다. 지역별, 인물별로 상세히 자료가 갖춰져 있어서, 해방 70주년이라고 특별전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을 정도죠.”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역사 청산에는 완성이라는 게 없다는 것이다.
“물론, 프랑스가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적극적으로 부역자 청산을 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끝이 난 것은 아닙니다. 어제 몸을 깨끗이 씻었어도, 살아서 움직이는 몸이라면 오늘도, 내일도 씻어야 하지요. 망각과 왜곡으로 더럽혀지고 녹슬지 않도록, 역사 청산도 반복되고 지속돼야 합니다.”

비록 우리 손으로 얻은 해방은 아닐지라도, ‘해방’ 70주년이면 국가차원에서 역사 청산에 대한 전시를 진행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아직, 친일파의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정부가 그 일을 할 리가 만무했다. 당시 정부에서 관심을 가진 프랑스 관련 전시는 따로 있었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전 관장 퇴임 논란을 일으킨 프랑스 명품 전시회다.  박근혜 대통령이 좋아하는 루이 뷔통, 카르티에 등 프랑스 명품을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하려고 박물관 측과 갈등을 빚다가 결국 취소된 사건이다.

이러한 현실이니, 이번에도 민문연에서는 창립 이후 25년 간 늘 그래왔듯이 국가가 할 일을 기꺼이 떠맡았다.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와 연결해 해당 전시의 국내 개최를 진행한 것. 다행히 예술품 전시와는 달리, 전시물이 아닌 콘텐츠에 중심을 둔 전시라는 특성 상 전시물을 디지털파일로 받을 수 있어 진행이 비교적 수월했다. 실물을 주고받는 게 아니므로,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부담이 없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기꺼이 자료를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이번 전시기간에, 프랑스 국립기록보존소 부소장이 연구원과 함께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아시아권 국가에서 자신들의 역사에 관심을 보이는 게 신기하게 비쳤고, 또 고마웠던 거지요.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곧 알게 되겠지요.”

예리한 눈매의 임헌영 소장. 그는 수학자가 어울릴 법한 인상과는 달리 문학을 전공했고, 현재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임 소장은 문학전공자답게 부역, 즉 동족을 배신한 죄의 무게에 대해 문학작품을 언급하며 설명했다.

“단테의 <신곡>에 보면,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을 받는 사람은 바로 배신자들이잖아요? 배신이 그렇게 큰 죄인 만큼, 동족을 배신한 자들의 이름을 영원토록 남기고, 배신이 얼마나 악질적인 행위인지 계속 알려야 합니다.”

전 세계 파시즘에 보내는 경고,
다음 전시는 도쿄에서 개최했으면

이번 국내에서 열리는 ‘콜라보라시옹’ 전시에서는 프랑스에서 보유한 자료 총 300점 중 150점이 공개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공개되는 자료들도 있으며, 프랑스 밖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전시라고 한다.
“물론, 일본이 과거사를 인정하고 우리에게 사죄해야 함이 백번 옳지요. 하지만, 우리 내부적으로 친일파를 청산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친일행위 및 친일파와 관련한 역사교육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일본이 순순히 사죄할까요? 일본과는 달리 독일이 과거사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이, 일본보다 독일에 유달리 도덕적인 사람들이 많아서일까요? 아이러니한 것은, 두 전범국가가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같다는 겁니다.”

이유는 다름 아닌 “국익을 위해서”다. 독일의 경우, 유럽이라는 국제환경 속에서 사죄하지 않으면 국가적으로 큰 불이익을 받는다. 그러나 일본은 그와 반대로, 과거사를 인정도 사죄도 않고 버티는 쪽이 아시아의 현 상황 속에서는 그들에게 이득인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임헌영 소장은 이번 전시의 의의를 “아시아권 국가들, 특히 일본에 경종을 울리고, 나아가 전 세계에 위험신호를 보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파시즘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층의 극우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0년대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제 2의 1930년대인 셈이지요. 만일 이런 위험신호를 무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임 소장은 이번 전시가 ‘유월절 빵’이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유대인들이 일주일 간 누룩 없는 쓴 빵을 먹으며 고난의 시기를 기억하는 것은,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각오를 다지기 위함이다. 그렇게 우리에게도 전 세계적으로도 고통의 시기였던 1940년대를 상기시켜, “이 때로 돌아가면 절대 안 된다”는 경고를 전 세계에 보내고 싶다는 것이다. 

임 소장은 “그런 의미에서, 다음 전시는 도쿄에서 개최했으면 합니다”하며 웃었다.   


글·김진주
본지 홍보위원. 2012년 박근혜 당선 직후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동영상 <백년전쟁>을 보고 민문연의 후원회원이 됐다. 

사진·강동민
민족문제연구소 자료팀장

임헌영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1) 프랑스의 <콜라보라시옹> 전시는 2014년 11월 26일부터 2015년 4월 5일까지 약 130일 간 진행됐으며, 국내 전시는 2016년 11월 24일부터 2016년 12월 13일까지 20일 간 진행된다. 프랑스에 비해 시기적으로는 꼭 2년 늦고, 기간은 90일 정도 짧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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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주
김진주 본지 홍보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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