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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완성은 부역자 청산부터
민주주의의 완성은 부역자 청산부터
  • 성일권
  • 승인 2016.12.02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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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의 횃불>, 2016 - 권재원

“어제의 죄악을 오늘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악에 용기를 주는 것이다.”-알베르 카뮈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함성이 전국에서 메아리치던 때, 극우단체들이 “(그들의) 대통령을 구하고, 빨갱이들을 몰아내자”며 맞불시위에 나서는 풍경은 대한민국의 굴절된 역사를 여실히 보여준다. 백주대로에서 극우단체들이 철지난 색깔론을 들먹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권력을 등에 업고 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들 극우단체가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세력은 과거 우리가 미처 청산하지 못한 친일세력의 잔재들이거나, 그 후손들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에 관계, 정계, 재계, 법조계, 교육계, 언론계, 경찰, 군대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형성된 친일세력들은 파시즘 체제에 순응해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조하고, 대중의 전쟁협력을 이끌어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 친일세력의 잔재들이 오늘날 청와대는 물론 검찰과 경찰, 행정부, 언론, 대학, 재벌 등 모든 권력집단에서 아직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이승만과 박정희의 친일·독재를 미화하고, 일본과 서둘러 위안부문제를 합의하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과 사드배치를 강행했으며, 이에 반대하는 국민들에게 ‘종북’, ‘빨갱이’ 딱지를 붙이고, 노동자 및 농민들의 정당한 요구에 가차 없는 박해를 가해왔다.  
 
“어제의 죄악을 오늘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죄악에 용기를 준다”는 알베르 카뮈의 지적처럼, 광복 후 친일부역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과오가 오늘의 비극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해방 직후 친일청산은 반드시 필요한 민족적 과제였고 시대적 요청이었지만, 친일 이승만의 농간에 따른 반민특위 활동의 실패로 인해 그만 좌절되고 말았다. 이후 친일세력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 등의 역대 독재정권을 뒷받침하며,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오랫동안 위세를 떨쳤다. 친일세력은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100년이 넘은 세월 동안 모든 분야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했다. 
 
독재체제는 친일세력이 부활하는 강력한 보호막이었고, 친일세력은 독재체제를 강건하게 지지하는 버팀목이었으며, 지금은 신자유주의의 메신저로서 경쟁력과 효율을 앞세워 노동자를 탄압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여기에, 시대의 양심이 돼야 할 교수들과 언론인들마저 친일 부역자들이 세운 대학과 언론사에서 앞잡이가 돼 반민주적이고 친독재적이며, 친자본적인 논리를 확대 재생산하느라 여념이 없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여 년 전부터 준비작업을 거쳐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친일인사 4,389명의 행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했으나, 교육부 등 관계기관의 지속적인 훼방으로 제대로 배포하지 못했을뿐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교과서 국정화’라는 이름으로 친일파들의 노골적인 역사왜곡을 마주해야 하는 오늘의 현실은 실로 참담하기만 하다. 이러한 점에서 친일세력의 잔재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는 장애요인이 되고 있으며, 오늘날 친일청산은 민주적 가치를 구현하는 역사적 책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에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하고, 르몽드 코리아가 후원하는 <콜라보라시옹-프랑스의 나치부역자> 전시회는 여전히 친일세력의 기세가 등등한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년 전 프랑스 정부가 나치 독일에 부역한 행위를 뜻하는 ‘콜라보라시옹(Collaboration)’을 주제로 국립기록보관소에서 개최한 전시회를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특별전으로서 우리가 이 땅에서 만나는 것은, 영광의 기록 못지않게 오욕의 역사에서도 교훈을 찾으려는 그들의 끊임없는 노력을 들여다보고, 우리의 과거 청산을 재개하려는 시도다. 우리는 이제 겨우 4,389명의 친일행적을 기록한 사전 하나를 펴냈을 뿐이지만, 프랑스에서는 해방 직후 특별재판소에서 나치 협력자 9만 8천여 명을 기소했고, 이 중 9천여 명을 재판 없이 약식 처형했다.
 
우리는 프랑스처럼 혹독하게 단죄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기록을 널리 남겨 후세에 교훈으로 삼자는 것뿐이지만, 그것조차 정부와 친일 잔재세력들이 막무가내로 방해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그들이 국민적 합의도 없이 일본의 바람대로 제멋대로 위안부 문제를 합의하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하는 것은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한 까닭이다. 이제부터라도, 결코 그들을 묵인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바로 그들을 방관하고 묵인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본지가 12월호에 ‘1936년 파리, 1916년 서울’(24~34면)에서 프랑스의 파시즘이 도래한 시기의 전후 상황에 견줘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는 것은 현 정권 같은 악의 세력의 귀환이 두려워서 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완성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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