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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국제주의에 맞선 ‘탈자본’ 국제주의
자본의 국제주의에 맞선 ‘탈자본’ 국제주의
  • 성일권
  • 승인 2017.01.0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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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조동매(조선, 동아, 매일경제)로 상징되는 거대 언론재벌과 중앙, 한국(동화그룹 소유)과 같은 한국경제로 대변되는 거대 재벌언론의 틈바구니 속에서 한국 저널리즘은 얼마나 자유롭게 향유되고 있는가? 또한 비판적 독립 언론임을 주장하는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정파적인 편집방향에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균형 있고 보편적인 식견과 가치를 접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사실, 저널리즘이 직면한 이런 의문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프랑스를 비롯해 미국,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들이다. 에밀 졸라와 볼테르의 나라인 프랑스에서조차 10대 대기업 중 6개 사(1위, 5위, 6위, 8위, 9위, 10위)가 언론을 소유하고 있는 현실이다.(1)

대자본이 장악한 언론 환경에서는 관점부터가 ‘자본 편향적’이다. 가까이는 지난해 그리스 경제의 위기가 대두됐을 때, 대부분의 대자본 언론들은 그리스 사태의 원인을 복지 등 좌파정책에 있다고 떠넘겼다. 30년 전부터 자신들과 같은 부유한 납세자들에게 이득을 준 일괄적인 세금인하와 민간은행 구제계획에 소요된 비용을 끝내 계산하지 않은 채, 모든 책임을 대중들의 사치와 좌파 정부의 실패에 돌린 것이다.

그러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디플로’)는 재벌언론이나 언론재벌이 지배한 자본의 약탈적 메카니즘을 폭로하고, 투기자본에 맞선 서민들의 부채탕감을 비중 있게 주장하고 나서 국제사회의 여론을 ‘탈 자본화’로 이끌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의 자매지인 르디플로는 “경제가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라고 스스로 천명하듯, ‘탈 자본’의 편집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2) 르디플로는 한국을 포함해 세계 20개 언어, 37개 국제판으로 번역돼 동시 출간되고 있다(2016년 12월 현재). 1954년 5월, 위베르 뵈브-메리가 일간지 <르몽드>의 부록으로 발행하기 시작한 르디플로는 교수와 연구자, 시민단체, 정부 관료 등 여론 주도층을 주요 독자층으로 하고 있다. 클로드 쥘리앵이 1973년에 발행인에 취임하면서, 르디플로는 별도의 법인으로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으며, 때로는 모기업인 <르몽드>를 상대로 공격적인 논조와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3)

현재 르디플로의 대주주는 지분 51%를 가진 르몽드 그룹이지만, 편집권은 우리사주 자격을 가진 기자들(지분 24.5%)에게 철저히 보장돼 있으며, 또한 발행인 및 편집인 임면권은 주주로 참여하는 독자그룹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친구들(24.5%)’에게 주어져 있다.

2016년 10월 현재 르디플로의 발행부수는 프랑스판의 경우 평균 22만여 부이며, 세계 각국의 국제판을 모두 합하면 총 250만여 부에 이른다. 특히 국제판의 경우 에스페란토어를 포함한 20개 언어와 37개 국제판으로 출간되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진이 가장 많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국제판의 확산이다. 
 
 
▲ <2016년 1월호에서 12월호, 한국어판>, 2016 - 김수정

최근 발행을 시작한 팔레스타인어판이나 쿠르드어판의 경우 성공적인 발행을 위해 스스로 재정지원하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에 기부금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1975년부터 포르투갈어판과 그리스어판이 발행됐고, 1980년대에는 스페인어판과 아랍어판이 나왔다. 1990년대에 들어선 탈냉전이후 미국의 우월적 지위아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거세게 일자, 이에 대응해 르디플로의 국제판들이 더욱 성장했다. 1995년부터 독일어판과 이탈리아어판, 남아프리카공화국판이 나왔다. 그리고 러시아어판, 폴란드어판, 힌두어판, 한국어판(4) 등도 출간됐다. 기존의 종이매체 외에 새로운 온라인판(이란어, 중국어, 일본어, 카탈로니아어, 에스페란토어 등)도 발행됐다. 각국에서 발행되는 르디플로 국제판은 프랑스어 기사 번역본 70~80%와 현지집필 기사 20~30%로 구성돼 있다. 이 같은 르디플로의 성공적 확산은 인쇄매체의 퇴조 경향 속에서 극히 이례적 현상으로 기록된다. 기사의 기획 방향에서부터 ‘탈자본 국제주의’를 지향하는 이 잡지는 국제, 외교,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제반 문제에 대해 비판적이며 독창적인 시각과 심층적인 분석기사를 통해 세계적 권위지로서 국제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범지구적인 경제문제, 무엇보다도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세계화나 그 경제논리의 독선과 위험을 파헤치고 있다. 르디플로의 편집기조는 정치권력과 기업권력에 안주하는 관영, 상업언론을 경계하며 국가나 인종차원의 협소한 이해보다는 휴머니즘, 문화다양성, 시민사회 연대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5)

 르디플로는 ‘탈자본 국제주의’ 운동을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전개하고 있다. 하나는 글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맞서는 ‘탈자본 국제주의’를 확산시키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거대 미디어들의 신자유주의적 논리와 횡포를 저지하는 미디어 감시기구의 활동 뿐 아니라, 범세계적인 탈자본 국제주의 운동단체인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 WSF)>과 ‘아탁(ATTAC)’ 등 NGO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르디플로의 주요필진으로는 프랑스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진보학자들이 참여한다. ‘아탁’의 이론가인 수전 조지를 비롯해 자크 데리다, 알랭 투렌, 피에르 부르디외, 앙드레 고르, 하워드 진, 펠릭스 가타리, 마크 페로, 에릭 홉스봄, 브루스 커밍스, 노엄 촘스키, 제임스 갈브레이스, 그리고 인도의 반다나 시바와 로렌스, 필리핀의 월든 벨로 등 세계의 저명한 진보적 지식인들이 르디플로의 지면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해왔고, ‘탈자본의 국제주의적’ 가치를 주창해왔다. ‘탈자본 국제주의’의 실천을 위해 르디플로는 광고수익을 스스로 5% 이하로 제한하면서 광고주들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기사를 쓰겠다고 밝힌 바 있다.(6) 

실제로, 2015년 광고수익은 전체매출의 3%에도 미치지 못했다. 평균 광고매출이 전체매출의 50%이상인 여타 매체들에 비하면 실로 미미한 수치다. 매출 측면에서 광고수익의 약화는 신문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르디플로는 광고수익의 3배에 달하는 29만 6천유로(전년도 24만 2천 유로)의 기부금을 열성독자들로부터 받았고, 정기구독자 수도 최근 1년 간(2014년 8월~2015년 9월) 8.7%나 상승했으며, 판매부수 또한 증가하는 추세다. 이 결과는 언론계의 전반적인 추세와 상반된 것이어서 특히 고무적이다. 르디플로의 대응방식은 다른 미디어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여타 미디어들이 오래 전부터 비용절감과 독자들의 관심부족을 이유로 국제시사를 외면했지만, 르디플로는 줄곧 국제 지향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르디플로의 발행인 세르주 알리미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서, 국제지향적인 편집진의 각오를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 우리가 던지는 질문은 간단하다. 세계로 향한 보편적 이익을 추구하는 저널리즘에 지속적인 재정지원을 하며, 잠비아 광부들과 중국해군, 라트비아 사회를 다루는데 2개 지면을 할애하는 이들이 과연 우리 말고 있겠는가? (…) 본지 필자들은 세기의 만찬에 초대받은 적도 없고, 제약업계의 로비에 휘말리지도 않으며, 거대 미디어들과 모종의 관계에 있지도 않다.(…)” (7)

르디플로는 철학가 토니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제국’이라고 지칭한 미국과 유럽연합, 일본 등 선진 국가들과 WTO, 세계은행, IMF 등 국제기구의 부당성을 부단히 비판하고 있다. 네그리가 비판적 개념으로 사용한 ‘신자유주의적 제국’은 르디플로의 ‘탈자본 국제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8) 르디플로의 편집방침은 명확하면서도 직선적인 탓에 종종 극단적인 찬사와 비판의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미디어들이 자본과 권력의 ‘자본의 국제주의’를 옹호하는 충실한 전도사로 전락한 현실에서 르디플로의 ‘탈자본 국제주의’야말로 현대 지식인의 개념과 역할을 다시 되새겨보게 하는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대항 헤게모니의 ‘진지전’    

르디플로는 세계화 진영의 ‘자본 국제주의’에 가장 격렬하게 반대하면서도, 정작 그 방식은 학술 포럼, 토론, 세미나, 언론 활동 등 비교적 온건하면서도 지속적인 특징을 갖는다. 이 같은 운동방식은 세계화 진영의 거대한 성벽을 깨기에는 불가능할 정도로 탈조직적이고 분산적일 수도 있으나, 세계화 진영의 헤게모니에 지속적인 타격을 줘 그 근본부터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람시의 ‘진지전’을 연상케 한다. 또한 ‘세계화 반대’라는 대의 아래, NGO 지도자들 뿐 아니라 수많은 지식인들이 르디플로를 중심으로 문화적‧이데올로기적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그람시의 ‘유기적 지식인’과 ‘역사적 블록’을 떠올리게 한다. 

그람시는 1920~30년대 이탈리아 무솔리니 치하의 파시즘 정권 같은 부당한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강압 및 강제방식이 아닌 논리적 설득 아래 정당성과 리더십을 확보하는 ‘시민사회’ 조직의 형성에 주목했다. 르디플로의 미디어 운동은 마치 그람시의 진지전처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진영에 대항해 지식인들의 지적‧도덕적 지도력을 강화하는 게 목표이지, 어떤 물리력이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중대한 투쟁 사안을 결정하지 않는다. 거대한 세계화 진영에 저항하는 르디플로가 다루는 주제들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단순한 비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정학적 국제관계, 신제국‧탈식민지 문제, 식량문제, 여성문제, 사회보장, 생태와 환경, 문화‧교육문제, 미디어운동 등 다방면에 걸쳐있다. 시기에 따라 구분해 보면, 르디플로는 초기에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신흥국가들과 제3세계에 관심을 가졌으며, 1980년대에는 냉전 이데올로기 비판과 여성, 문화, 교육 문제에 집중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냉전종식 이후 새롭게 등장한 독단적 자본주의, 특히 미국식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논조를 견지했다. 1997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부터, 르디플로는 대안 세계화 운동과 맥을 같이 하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선봉에 나서 비판하기 시작했다. 

르디플로의 전 발행인 이나시오 라모네는 칼럼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교리가 현대의 유일사상(La pensée unique)(9)이 됐다”고 비판하고,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여기저기에서 지식인들, 학자들, 예술가들이 우리의 사고를 질식시키려는 유일사상을 규탄하고 이론적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르디플로의 목표는 유일사상의 지배에서 벗어나 세계를 변화시키는 대안을 제시하는데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와 관련해 투기자본이 세계금융시장을 교란시킨 1998년 6월, 르디플로의 편집주간인 베르나르 카상은 ‘시민지원을 위한 금융거래 과세를 위한 연합(ATTAC)’의 결성을 제안해, 지금까지 국제적 차원에서 금융지배적 축적체계로 인해 상실된 민주주의적 공간을 되찾고 금융시장의 독재 및 국제 금융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한 시민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화 진영에 맞선 르디플로의 투쟁공간으로 국제적인 미디어 감시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이데올로기적 진지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람시의 주장처럼, 2001년 브라질의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르디플로 편집진의 주도아래 개최된 제1차 세계사회포럼(WSF)에서 사회운동에서의 미디어감시기구의 역할과 그 중요성이 처음으로 제기됐고, 이 문제는 지속적으로 포럼의 핵심 이슈가 돼왔다. 세계사회포럼은 반세계화, 대안세계화 활동가들이 세계화 추진진영의 세계경제포럼이 열리는 해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동시에 개최하는 국제행사로 발전했다. 여기서 르디플로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세계사회포럼에서 미디어 감시기구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은 세계화가 곧 언론매체와 커뮤니케이션의 세계화, 정보의 세계화이기도 하며, 특히 거대 미디어 그룹들은 권력을 행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화 이데올로기의 선전 역할을 주도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국제적인 미디어 감시기구 ‘글로벌 미디어워치(GMW, Global Media Watch)’가 2002년 4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그리고 2003년 11월 파리에서 각각 열린 세계사회포럼 토론장에서 구체화됐다.(10) 르디플로의 이나시오 라모네 전 발행인은 2003년 11월, 르디플로에 세계미디어 감시기구의 창설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다음은 그 일부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간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제4권력(언론)은 그 본분을 잊고 탈선을 계속하고 있다. 언론이 견제권력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르디플로는 세계화에 따른 이 같은 제4권력의 변절을 충격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언론매체, 특히 세계적인 거대 언론 그룹들이 제4권력의 기능을 포기하고 세계 금융자본의 시녀로, 신자유주의의 선전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국제적인 미디어 감시기구인 ‘글로벌 미디어워치’의 창설을 제안한다. 언론의 탈선을 견제하기 위한 수용자들의 세계 차원의 자구(自救)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라모네가 지구적인 미디어감시 기구의 창설을 제안하는 논리는 아주 명료하다. 세계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지금의 자본주의는 이전의 단순한 산업자본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이것은 금융자본의 확장을 통해 세계의 모든 것, 심지어 우리의 영혼까지도 지배하는 투기자본주의라는 것이다. 세계화 혜택을 입은 다국적 기업들은 그 힘이 막강해졌다. 세계화 진행 이후 진정한 권력은 국가나 정부보다 세계적 규모의 대기업과 금융자본 그룹이 장악하고 있다. 국제문제 처리에 있어서도 국가나 정부보다 이들 대기업의 영향력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이들 대기업, 대자본이야말로 오늘날 세계화의 주역들이다. 이들은 매년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WEF)을 열고 IMF, 세계은행, WTO 등 이른바 세계화 삼위일체 기구와 함께 그들의 지배전략을 모색한다. 

이러한 지정학적-경제학적 틀 속에서 미디어의 영역에도 결정적 탈바꿈이 일어나고 있다. 라디오, 신문, 텔레비전, 인터넷 같은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매체들은 점점 세계적 야심을 실현할 수 있는 그룹을 형성하기 위해 서로 결합하고 흡수한다. 뉴스 코프, 바이어컴, AOL-타임워너, 제너럴 일렉트릭, 마이크로소프트, 베르텔스만, 디즈니, RTL 그룹, 프랑스 텔레콤 같은 거대 미디어 그룹은 이미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이다. 여기에 한국의 거대언론인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약칭)이 신자유주의적 재벌과 더불어 권력과 자본을 공유 내지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화는 언론매체와 커뮤니케이션의 세계화, 정보의 세계화이기도 하다. 세계화를 통한 언론매체의 대형화는 다른 권력을 추구하게 만들고 기업의 확대와 권력의 증대에 몰두하게 된 언론기업은 더 이상 시민을 생각하는 미디어와 민주주의의 가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르디플로가 국제적인 미디어 감시기구 창설을 주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탈세계화 진영의 필수적 참고문헌

르디플로의 편집진은 유기적 지식인의 맥락 속에서 지면을 통해 다국적 기업들을 비롯해 IMF, WTO,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과 세계경제포럼, 주류 글로벌 미디어 등 세계화 진영의 허구를 드러내고, 세계 각국의 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주체의식과 연대의식의 가치를 고취해왔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에드워드 허만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매체인 르디플로야말로 세계 최고의 신문”이라 칭송한다.(11) 

그러나 르디플로의 글들은 종종 지나친 엘리트주의와 노골적인 반미‧반이스라엘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가령, 프랑스의 지정학자 프레데릭 앙셀은 “르디플로가 친팔레스타인, 반이스라엘의 미디어 공간이고, (미국에 적대적인) 피델 카스트로나 위고 차베스에 대해 호의적”이라고 비판한다.(12) 이와 관련해 르디플로의 이나시오 라모네 전발행인은 “쿠바 문제에 대한 우리 측의 논조를 문제 삼는 것은 (근거 없는) 카스트로에 대한 원초적인 비판이며, 여타 중남미국가들과 비교해서도 균형감각을 잃은 비판”이라고 지적한다.(13)

이와 함께 르디플로가 주도하는 세계사회포럼과 아탁 운동은 거대한 세계화 진영에 맞서기에는 탈조직적이고, 파편적이며 분산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는 이들 단체가 어떤 특정한 입장을 대변하는 기구나 조직이 아닌데서 기인한다. 세계사회포럼의 조직적 특성을 살펴보면, 포럼은 원리헌장 1조에서 명시하고 있는 것처럼 “시민사회의 조직들과 운동들 간에 성찰적 사고, 민주적 토론, 제안형성, 경험의 자유로운 공유, 효과적인 행동을 위한 상호연계를 목적으로 한 공개된 회합의 장”이다. 이처럼, 세계사회포럼은 공동의 강령이 없을 뿐 아니라 투쟁방침을 결정하는 단위도 없고 공식적인 대표나 지도부도 없다. 르디플로의 편집진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반세계화 국제NGO인 아탁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아탁의 운영방식은 회원이 모두 동등한 의사결정권을 가지며, 하향식으로 지침을 시달하는 관료적 조직분위기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디플로와 세계사회포럼, 그리고 아탁에 참여한 지식인들이 세계화 진영의 헤게모니에 맞선 투쟁의 성과는 지대하다. 2008년 월가 금융위기 이후 외견상 일부 세계화 진영은 금융투명성 제고, 사회안전망 구축 등 반대진영의 목소리에 귀기울기 시작했다.(14) 물론, 세계화 진영의 이념적 헤게모니가 몰락한 것은 아니다. 세계화진영은 막강한 권력과 재력을 내세워 글로벌 미디어의 언론인들, 유명대학의 경제학자들,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을 얼마든지 자신들의 지배담론을 확대 재생산하는데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세계화 진영이 국제사회로부터 헤게모니를 인정받은 것은, 그들에 의해 생산되고 유통되는 지배적 담론이 학문적 권위만이 아니라 정치적 권위에서도 경쟁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특히 축적된 정보와 광범위한 자료수집을 통해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고부가가치의 지식을 생산하는 동시에 글로벌 미디어를 통해 이를 ‘공공지식(Public knowledge)’으로 국제사회에 유통시키는 역량을 발휘한 결과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 세계화 진영의 담론이 지배적 담론으로 재생산된다는 것은, 대안담론의 부재 때문이 아니라 담론경쟁과정에서 대안담론이 주변부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의 결과로 이해된다.

그람시의 주장처럼 인류사회의 발전은 비슷한 계급이나 사회세력의 단순한 동의 반복적 선전선동이나 일방적 홍보 전략이 아니라, 상이한 사회집단들 간의 문화적‧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 획득을 통해 이뤄져왔다. 다시 말해 지식인과 민중, 지도자와 피지도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변증법적이고 유기적인 관계의 변화를 통해서 사회변혁이 가능한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그람시는 대중의 혁명의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유기적 지식인들과 연대 속에서 기존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탈신비화하고, 계급사회에서 노동자의 소외를 의식화하고, 설득함으로써 새로운 대항 헤게모니를 창출할 때 역사적 변혁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람시는 이데올로기적 토대로서 다양한 부분을 언급했지만, 그가 가장 역동적인 분야로 꼽은 것은 언론이다.

“언론의 역할은 그 나라에 존재하거나 형성돼왔던 모든 지적인 운동들과 조직들을 추동하고 모니터하는 것이다.” (Gramsci, 1971/1982, p.405)

이는 언론인들이 지적인 활동을 추동하는 중심세력이라고 인식하고 언론의 역할을 시민사회에서의 핵심영역으로 파악한 것이다. 또한 그람시는 언론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언론의 문화적 역할을 지적했다. “문화는 백과사전적 지식과는 다르다. 문화는 유기체다. 자신의 내적 자아의 원천이며, 자신의 성격을 소유하고 있는 존재다. 문화는 상위의식의 획득이며, 이 의식을 통해 역사적 가치, 삶에 대한 자신의 독자적 역할 그리고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Gramsci,1916)

 르디플로가 단순한 언론매체를 넘어 대항 헤게모니의 장으로 자리 잡는 것은, 편집진이 유기적 지식인으로서 치열한 글쓰기와 적극적인 시민운동, 국제적인 미디어 감시운동에 적극 나섬으로써 세계 각국 시민들의 공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람시의 주장대로, 이처럼 대항 헤게모니가 지적‧도덕적‧문화적 우월성에 입각한 설득과 동의를 기초해 구성된다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반세계화 진영의 헤게모니 획득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시대적인 상황이나 역사적 맥락이, 한국과 프랑스는 다른 까닭에 르디플로의 ‘탈자본 국제주의’운동이 우리 지식인 사회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더욱이 거대자본, 권력, 글로벌미디어 그룹 등 막강한 세계화 진영의 위용 앞에 지식인 사회가 파편화된 우리로서는 절망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같은 한계 때문에, 그람시가 강조했듯 ‘유기적 지식인’의 ‘역사적 블록’이라는 연대의 가치가 우리 지식인들에게 더욱 필요하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1) 각각 MM Bernard Arnault, Serge Dassault, Patrick Drahi, François-Henri Pinault, Vincent Bolloré, Xavier Niel. 출처, <Challenges(도전)>, Paris, 2015. 7
(2) www.monde-diplomatique.fr
(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현 발행인 세르주 알리미(Serge Halimi)는 이 잡지의 미디어 담당 기자였던 시절, <르몽드>가 주식을 대기업에 매각할 의향을 비치자 경영진을 “권력에 굶주린 사람들”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성일권, 2009, 신자유주의의 도전에 대한 <르몽드>의 대응과 그 한계, 프랑스 문화연구, 제19집, p.219). 또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전 발행인 이나시오 라모네, 전 편집주간 베르나르 카상, 현 발행인 세르주 알리미 등 편집진이 2003년 주도적으로 설립한 프랑스의 미디어감시기구 OFM(l’Observatoire francais des medias)은 <르몽드>가 자사 비판을 이유로 다니엘 슈나이더만(Daniel Schneidermann) 기자를 해고한 사실을 비판했다(박진우 외, 2004, 세계의 미디어비평, 한국언론재단, p.54).
(4)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의 경우, ㈜매일노동뉴스에 의해 2006년 9월 종이매체로 발행됐으나 1년여 후 문을 닫았다. 이후 2008년 10월에 재설립된 독립법인 (주)르몽드코리아에 의해 다시 발행되고 있다.   
(5)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세계의 창”이라고 격찬했고, 피터 드러커는 “나는 다수의 CEO들에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같은 잡지를 정기적으로 읽을 것을 권유한다. 여기서 얻은 지식과 정보가 갖는 중요한 관점은 시대정신에 대한 감각을 키울 수 있다”고 밝히는 등 지식인들의 찬사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노엄 촘스키의 발언에 대해서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홈페이지(www.monde-diplomatique.fr)의 매체소개 참조(피터드러커, 2005, CEO의 8가지 덕목, 시대의 창, p.300).
(6)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2년 3월호. 
(7) Serge Halimi, Notre Comba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9년 10월호.
(8) Tony Negri, L'Empire, stade supreme de l'imperialism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1년 1월호.
(9) Ignacio Ramonet, ‘La pensee uniqu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5년 8월호.
(10) OFM, Pourquoi un Observatoire? Presentation de l’OFM(왜 OFM인가? OFM의 소개), 2004년 4월.
(11) Edward Herman, Propaganda in the Free Press, entretien avec Z Magazine, 3 Mai 2003.
(12) Frederic Encel, Horizons geopolitiques, Seuil, 2009, p.126.
(1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2년 4월호
(14) 세계경제 위기의 여파로 인해 세계화 진영의 한계가 점차 드러나고 있다. 특히 1997~1999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비롯해, 2008년 미 뉴욕월가의 위기, 그리고 최근의 유럽 금융위기 등 잇따른 경제위기는 세계화의 본질적 가치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2009년 1월 28일~2월 1일 개최된 WEF에서는 위기 이후의 세계재편(Shaping the Post-Crisis World)을 주제로 국가원수 등 정상급 인사 2,500명이 토론을 벌였지만, 자신들의 무능과 미래의 불확실성만을 재확인했을 따름이다(연합뉴스, 2009.2.2). 또한 세계화 진영이 주류 진영의 정상회의 블록을 G8에서 G20으로 확대해 IMF와 세계은행의 권한 강화에 나서는 것도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회복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풀이된다(성일권 외, 2010, <르몽드 세계사2>, 서울: 휴머니스트, pp.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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