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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제국’에도 표현의 자유가 있을까?
‘삼성 제국’에도 표현의 자유가 있을까?
  • 심정택
  • 승인 2017.01.0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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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14일, 1심 판결일이다. 오후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객관적 사실에 부합한다”는 취지로 이학수 전 삼성 그룹 전략기획실 부회장이 제기했던 명예훼손 소송에 대해 기각 판결이 났다. 나는 모든 공을 변호사에게 돌렸다. 실제로도 변호사의 공이 크다. 변호사는 처음 이 일을 맡으려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없다고 했다. 첫 번째 소송을 불과 며칠 앞두고 변호사가 선임됐기에, 사안에 대한 검토 기간이 필요했다. 다행히 재판부로부터 변론 기일 연기 요청이 받아들여졌기에, 변호사를 앞세워 재판에 임할 수 있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어느 맥주 광고 카피처럼, <이건희전>은 원고를 썼기 때문에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출간의 출발은 가을 날 은행나무 잎에서 비롯됐다. 2014년 늦가을, 나는 경기도 북부의 은행나무가 많은 동네에 있었다. 노란 은행나무 잎을 보면서, 90년대 초반에 읽었던 노란 표지의 <GM제국의 붕괴>​와 삼성을 떠올렸다. 번역서 <GM제국의 붕괴>는 미국의 자동차산업 분석가 마리안 켈러(Maryann Keller)의 <Rude Awakening>을 원전으로 한다. 2009년 파산 선고가 내려진 GM과 삼성의 유사점들이 보였다. 그렇게 원고를 만든 게 <삼성의 몰락>이다. 그리고 불과 몇 달 후 두 번째 책, <현대자동차를 말한다>를 출간했다. <삼성의 몰락>에서 다하지 못한 삼성 이야기를 여기에 넣었다. 세 번째 책을 쓴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두 번째 책의 홍보가 끝난 2015년 7월경 이건희 평전을 쓰고 싶어졌다. 어떤 끌림, 내지는 욕심이 있었다. 평전을 써본 적도 없거니와, 평전을 쓰려면 작가적 역량이 상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건희 회장에 대한 정보는, 의외로 많지 않다. 그는 은둔의 경영자였기 때문이다. 그럴 즈음, 삼성의 전 핵심 경영자를 만나게 됐다. 약 3시간에 걸친 그의 이야기가 씨앗이 됐다. 그의 말을 전해들은 삼성맨 출신의 선배는,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라면서 또 한 명의 전 삼성 경영인을 소개해줬다.

8월 중순 이맹희 CJ명예회장이 사망했다. 이것도 하나의 계기가 됐다. 이건희와 이맹희 형제의 갈등은 많이 알려진 일이다. 삼성 이건희를 제대로 알려면 시대별 구분이 필요했다. 초고는 9월말에 끝났다. <이건희전>은 이건희가 사실상 경영에 복귀하기 힘들다는 전제 하에 쓰여 졌다. 초고를 검토했던 한 출판사 기획자는 이런 “삼성 문제는 벅차다”고 했다. 사실이다. 한국 사회에서 삼성은 작가나 출판사에 벅찬 소재다. 그럼에도 비판적 관점의 삼성 관련 책은 많이 나와야 한다. 정치권력을 넘어선 삼성권력은, 권력의 속성상 기본적인 사실 자체를 왜곡하려들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는 “삼성과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좋은 말만 써야한다”는 막연한 강박관념이 깔려있는 듯하다. 실제로, 그렇게 쓴 책이 시장에서도 환영받는다.
책은 출간됐으나 3월 초, 나는 ‘통고서’라는 것을 받았다. 법적 조치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고, 나는 당황스러웠다. 출판사는 적극적인 판촉을 미뤘다. 4월에 정식으로 소가 제기됐고, 이로 인해 책의 적극적인 판촉 및 배급은 일단 막혔다. 이학수 측의 1차 목적이 달성된 셈이다. 나는 의문에 휩싸였다. 어째서, 한국사회의 거물로 평가받는 이학수 고려대교우회장이, 무명작가에 불과한 나를 직접 상대하는 것일까? 이 의문은 최근 몇 개월 간 진행 중인 이재용-최순실-박근혜 게이트를 보면서 풀려가고 있다. 책 내용의 상당 부분이 현 시국과 연결됐기에 발화성이 높기 때문인 듯하다. 

나에게 이 책은 삶의 여정 속에서 해야 할 하나의 일에 불과하다. 명동성당과 재속전교가르멜회, 거주지 인근 삼성산 성당 미사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났고, 사물을 관찰했다. 그리고 2014년 가을부터, 한국사회의 주요자산이지만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는 존재인 삼성과 ‘가면을 쓴 페르소나’이자 ‘은둔의 경영자’인 이건희에 대해 글을 쓴 것이다.

“I’m a writer!” 

지난 3월 이학수로부터 통고서를 받은 후, 전직 가톨릭 수도자가 힘들 때 마다 위로받았다는 <시편>의 한 구절을 꺼내들었다. 

나 자리에 누웠다 깨어남은 
주님께서 나를 받쳐주셨기 때문이니 
나를 거슬러 둘러선 수많은 무리 앞에서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시편 3.6~7>    

출간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책에 대해 재판을 전제로 한 통고서가 날아오자, 나는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던 출판사 편집장 대신, 법무팀장과 마주하게 됐다. 원고의 법률대리인은 저작물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며, 이로 인해 “이학수 전 부회장의 명예가 훼손됐다” 주장했다. 그리고 출판사에 ①시중에 배포된 책 즉시 회수 및 폐기 ②출판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책 관련 내용 삭제 ③인터넷서점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책 관련 내용에 대해 삭제 요청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신문광고를 통한 사과문 게재를 요구했다.

그러자, 출판사는 나에게 ①저작물의 내용 중 이학수 전 실장에 대한 기술 내용이 사실에 근거해 작성됐는지 여부 ②본 저작물로 인해 이학수 전 실장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주장을 수용하는지 여부 ③배포된 책 회수/폐기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 여부 ④온라인상의 홍보업무 중단 요구를 수용할 것인지 여부를 확인할 것을 요구했다. 작가를 대하는 출판사의 태도가 마치 이권을 노리는 ‘업자’를 보듯 돌변한 것이다. ‘작가와 출판사와의 기본적인 신뢰관계’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출판사의 요구에 대해, 헤밍웨이의 명언을 인용해 “I’m a writer!”라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4월 18일, 이학수 전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은 원고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하면서 3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나는 5월 말까지도 출판사가 나와 같이 동행해 소송에 임할 줄 알았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재판에 휘말려 들어가면서, 일상은 엉망진창이 됐다. 하기 싫은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은,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재판은 기도와 주변의 도움으로 원고 측이 요청한 당사자 증인신문을 포함해, 3회의 심리를 거쳐 1심에서 피고 승소 판결이 났다.  
   
두 달쯤 전, 신부님께 책과 관련된 강의를 청하는 문자를 전송했다. 지난 3월, 출판계 지인과 중림동 가톨릭출판사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처음 가본 그 곳에서, 우연히 H 신부님을 만났다. 마침 출판계 지인에게 건넨 책 외에 한 권이 더 있었다. 그렇게 헤어진 지 약 7개월 만에 연락이 된 것이다. 제법 늦은 시간에 전화가 왔다. 강의 날짜를 잡아보겠다고, 그리고 다른 곳으로도 강의를 확대하겠다고. 중간에 한 번 더 연락이 왔다. 그리고 1심 판결 이틀 전에 강의가 잡혔다.

강의 날, 매우 어렵게 수도원을 찾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이면 도로에 위치한 수도원에는 마당에 작은 등 하나 켜져 있지 않았다. 마침 저녁기도 시간이었다. 수도자들과 함께 성무일도를 마치고 저녁식사를 했다. 남자 수도회와 연결된 수녀회의 작은 문을 통해 강의장에 들어서자, 100여 명의 수녀님들이 베일을 쓰고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신부님은 나를 소개하며,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임을 설명했다. 강의 내용은 당연히 현시국과 밀접할 수밖에 없었고, 모두가 나를 위해 기도했다. 양성자 과정을 밟고 있는 다른 수도회의 수녀님들도 나를 위해 기도했다. 기도가 유일한 무기인 셈이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만일 내가 가진 것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재판에서 져서 뺏길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단지 물질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절대자가 나로부터 두려움을 앗아간 것이다. 지난 2월, 비오는 날 생일 저녁에 돼지김치찌개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식후  기도’에서 인간의 몸으로 나신 하느님께, “언제든 저에게 동의를 구하실 필요 없이 목숨을 거둬 가시라”고 청했다.
     
법을 어긴 삼성이
‘법대로’를 외치는 역설

예전에는 군사독재정권이 펜을 탄압했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았다. 지금 시대는 자본이 펜을 탄압한다. 국내 언론이 자본의 통제 하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리고 언론과 자본은 탄압을 하고 받는 관계라기보다는, 공존공생하는 관계로 발전하는 듯하다. 국내에 쏟아지는 삼성관련 책들은, 삼성찬양 일색이다. 나 역시 출간 전에 모 출판사로부터 삼성을 칭송하는 책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었다. 평전은 영어적인 표현으로 ‘Critical Biography’이다. 대상이 되는 인물이 아무리 성인군자라 해도 비판적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이번 일을 겪으며, 한국의 거대자본은 이러한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1심 승소 후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허물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 거대자본이 책 내용을 가지고 소송을 하는 것은 표현과 생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돈이면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가 아닐까.” 

2016년 말 시국은 실로 ‘막장드라마’다. 게이트의 본질이 정치적 사안이고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부정부패를 저지른 기득권 세력들이 “법대로”를 외치고 있다. 시간을 벌어서 역전할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삼성 역시 마찬가지였다. 삼성은 1998년 12월 공식적으로 자동차 사업을 포기한 후 은행 등 채권자로부터 받은 대출금 투자에 대한 이건희 회장의 손실 보존을 정부로부터 요구 받자, “법대로”를 외쳤다. 그리고 반대급부로 정부로부터 받아낸 게 삼성생명 상장이었다. 2007년 김용철 전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의 비자금 폭로로 바뀐 정권에서 소위 삼성특검이 진행됐으나, 이건희 회장은 오히려 상당 부분 차명이었던 삼성생명 주식을 되돌려 받는 양성화 과정을 거쳤다. 

지금은 탄핵 정국임에도 대통령은 스스로 퇴진할 기미가 없다. 삼성도 “비선실세로부터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당했다”면서 “법대로”를 외친다. 수구언론은 “지금부터 법치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법을 어긴 기득권층은 법을 너무도 잘 지킨 촛불혁명가들에게 법을 거론하고 있다. 원래 법은 약자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법은 거대권력을 보호하는 투구와 갑옷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재판을 준비하면서, 지난 11월 12일 광화문 3차 집회부터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국민이 직접선거로 선출한 대통령이, 재벌과 아무 공식직함도 없는 비선실세에게 휘둘려 범죄를 저질렀다. 여기에 분노한 수백만의 민중이 매주 토요일 전국적으로 시위에 나섰다. 

 급기야 삼성을 비롯한 재벌 총수들이 12월 6일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심지어 바보 연기를 하는 듯하다. 청문회에서 이재용은 “삼성은 국정을 농단할 정도의 어마 무시한 괴물 집단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텔레비전으로 청문회를 지켜본 이들은, “이 부회장이 글로벌 기업 삼성을 감당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하구나”, “저런 이가 어떻게 회장을 하느냐”, 심지어는 “바보스럽다”고 한탄했다. 한편 한 전문가는 “평소 누군가를 설득할 필요가 없는 위치에 있었던 이 부회장이 생전 처음 대중을 설득하려다 보니 바보스럽게 보인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광화문의 대규모 집회 등을 통해 발산되는 국민들의 불만과 저항을, 오랫동안 국민들을 분할통치했던 방식 그대로, 즉 이념의 대립 문제로 치환하고 있다.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2016년 우리 국민은 직접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출이 잘못될 수도 있고, 역시 선거로 뽑은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을 대신하여 정치 및 경제적 현안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집회와 시위를 통해 지속적이고 능동적인 시민세력으로 거듭났다. 

 새롭게 등장한 시민세력은 정치권력의 불의에 대해 분노한다. 하지만 분노하는 것만큼 이들과 묘하게 얽혀있는 기업의 형상, 수구의 그늘에 숨어 있는 재벌, 재벌 중에서도 왕재벌인 삼성의 행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시민세력으로 거듭나기 이전, 고도성장시대를 거치며 거대기업의 허물에 대해 관대했던 습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반세기 이상 지속된 정치권력과의 유착관계, 3대 세습의 과정에서 복잡한 재무 및 금융 기법으로 얽힌 지배구조의 편법으로 일관한 흐름을 다는 이해하지 못한다. 비판하고 개혁하는 힘도, 결국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서 나온다.  


글·심정택 
칼럼니스트, 산업분석가. 쌍용자동차 입사 후 1993년 삼성그룹으로 옮겨 삼성그룹 21세기기획단을 비롯해 삼성자동차 경영기획실과 자동차소그룹 조사 부문 간사, 삼성그룹 대외협력단, 에스원을 두루 거쳤다. 현재는 홍보 및 미술 컨설팅을 수행하며 저술 활동에 매진 중이다. 저서로 <삼성의 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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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택
심정택 <이건희전>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