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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시험대에 오른 아웅산 수치
권력의 시험대에 오른 아웅산 수치
  • 크리스틴 쇼모
  • 승인 2017.01.02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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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의 아웅산 수치와 아웅산 장군의 초상화>, 2016년 - 마티유 퀴노
2016년 11월 1일, 3천 명에 달하는 로힝야족이 박해를 피해 미얀마를 탈출했다.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의 군부 그리고 반군세력과 함께 ‘21세기 팡롱 평화회의’를 개최했지만, 민족 간 분열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미얀마에서 총선이 있은 지 1년이 지났지만 수치는 여전히 군부에 의존하고 있으며, 해결해야 할 경제 문제도 산적해있다.

2016년 3월 국회에 입성한 390명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아웅산 수치가 당대표로 있다) 소속 의원들은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에 있는 모노톤의 옛 군부 숙소 건물에 머무르고 있다. 2015년 11월 8일 치러진 총선에서 NLD는 전체 의석의 75%를 차지했다. NLD 의원들은 국회 회기 중 여느 때처럼 8시 20분이 되면 의상을 갖추어 입는다. 소수민족 출신의 의원들은 자신의 출신 지방 의상을 입고, 바마르족 의원들은 전통 두건 까웅 빠웅을 두른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모두 보잘 것 없는 방문을 잠그고 나선다. 지각할 일은 없다. 버스와 오토바이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무부 직원들은 NLD 의원들이 미니버스를 타고 국회의사당에 도착할 때까지 에스코트한다. 

 군대풍의 넓디넓은 대로 위의 의원 무리는 나약해 보인다. 의원들이 통과하면 국회의사당으로 통하는 입구의 군용 바리케이트가 다시 닫힌다. 보초를 서고 있는 군인들은 새로 선출된 의원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선출된 이 의원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군부죠!” 아웅산 수치의 측근인 윈 테인 의원은 대답한다. 윈 테인 의원은 자신의 대답이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언제라도 감옥으로 끌려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버스에 오르던 처음 며칠 동안 이런 생각을 했었죠”라고 윈 테인 의원은 빈정댄다.

 이런 일상적인 모습은 현재 미얀마에서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가 탄생했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1962년부터 형태와 이름을 바꿔가며 미얀마를 지배해왔던 군부가 민주주의를 통제하고 있다는 시나리오 말이다. 혁명 그 이상의 발전이라고 저널리스트 밍 쪼는 강조한다. “군부가 솔선해서 변화를 꾀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불가피한 존재입니다.” 물론 더 이상 독재자는 없지만, 이 첫 민간정부는 군부에 의해서 그리고 군부를 위해서 만들어진 2008년 현행 헌법에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미얀마 국민들은 오랜 기간 군부에 저항해온 아웅산 수치를 신뢰하고 있다. 수치의 초상화는 그가 두 살 때 암살당한 그의 부친이자 미얀마의 독립영웅인 아웅산 장군과 새로 취임한 틴 쩌 대통령의 초상화와 함께 길거리에서 팔리고 있다. 사람들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한다, “아웅산 수치는 우리의 어머니다.” “나는 아웅산 수치를 믿는다.” “아웅산 수치는 우리나라를 위해서 싸운다.” 이제 그는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2016년 4월 민간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수치는 자신의 정치적인 ‘행동’을 실행에 옮겼다. 현행 헌법의 59조에 따르면 수치의 두 아들은 영국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치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현행 헌법의 59조는 바로 이 점을 노리고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치여사는 NLD가 의회에서 과반수의 의석을 차지했다는 점을 들어 모든 군부 출신 의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가자문역에 임명됐다. 국가자문이란 수치의 최측근이자, 눈에 띄지 않게 협조적인 틴 쩌 대통령의 정부를 ‘그 위에서’ 이끌 수 있도록 신설된 직책이다. 수치는 외무장관직도 맡았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권력의 집중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느 한 사람의 두뇌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라고 일간지 <더 피플스 에이지>의 편집장, 룻 랏 쏘는 경고한다. 어떤 이들은 수치에 대해 “거의 타협을 하지 않고, 냉랭하고, 다른 이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서구에서 ‘아시아의 넬슨 만델라’와 인권 수호자로 여겨져 왔던 수치의 이미지가 점점 흔들리고 있다.  
 일부 NLD 의원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녹음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만, 윈 테인 의원은 거의 군대식에 가까운 원칙을 강력하게 요구하며 다른 의원들에게 이를 강요하고 있다. 

 “절대적인 복종이 필요하다. 이는 민주주의 건설과 국가적 화해를 위해서 필요하다. 현 상황은 매우 불안정하다. 우리는 군부에 맞서 단결해야 한다.”

 현재 수치는 군부와의 관계에서 신중을 기하고 있다. 모든 반군 세력과 함께 평화라는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땃마도(군부)와의 협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48년 독립 이후 전쟁만 겪어온 국가가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가?(1) 수치는 의욕적으로 2016년 8월 31일에서 9월 4일까지 ‘21세기 팡롱’ 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는 수치의 부친이 1947년 개최해서 미얀마 연방의 틀을 마련했던 ‘팡롱 협정’의 이름을 본떠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치가 토론을 시작하면서 말했던 대로, “우리는 평화 없이는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얀마 군부 영향력 건재

 군부와 정부 및 민족 단체 대표자들은 네피도 컨벤션 센터에 모여서 차례대로 연설을 하고, 각자가 바라는 미얀마 연방에 대해 의견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첫 만남은 공동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한 협상의 시작이라기보다는 귀머거리들 간의 대화에 가까웠다. ‘완전한 참가자 자격’이 아니라 발언원이 없는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했던 와(Wa)군 대표들은 회의장을 떠났다.(2) 다른 반군단체 3곳은 무장투쟁 포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본 회의에 불참했다.(3) 군부에서는 회의에 앞서 반군단체들에게 무장투쟁을 그만둘 것을 요구했지만, 군부에 대한 불신이 아직 컸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는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근본적으로 재인식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미얀마 전략 및 정치 연구소의 민 진 소장은 평가한다.(4) 이렇게 21세기 팡롱 회의 동안 소수민족 반군단체들은 자신들의 계급이 군복을 차려 입고 참석한 군부 측 참가자들의 계급만큼이나 눈에 띌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다. 

 연방주의 계획은 과거 군부로부터 방해를 받았지만 미얀마의 단결을 보장해주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미얀마가 다뤄야 할 과제이다. 하지만 연방주의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이다. “민족별로 이루어진 주들이 모인 연방주의가 나타날 위험이 있다. 다수를 차지하는 바마르족이 수십 년 동안 소수민족에게 강요해왔던 바가 재현될 수 있다”고 미얀마 전문가 카린 자케는 설명한다. 일부에서는 바마르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을 묶어서 바마르주를 만들고 미얀마 지도를 다시 작성하자고 제안한다. 미얀마 내 모든 민족 구성원들 간에 자원을 좀 더 공정하게 배분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 말이다.  

 이제 대표단들은 6개월마다 만남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저널리스트 버틸 린트너는 이런 방식이 “각자가 디바를 자처하지만 코러스를 하려는 이는 아무도 없는 오페라”(5)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군부를 공통의 적으로 보았다. 오늘날 군부는 평화 절차에 따라 정부와 협력하고 있다(6)”고 민 진 소장은 지적한다. 수치는 자신의 부친이 세운 군부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2015년 11월 수치는 북부연합군 중 단체 4곳이 샨주에 있는 경찰서 여러 곳을 습격하자 전투를 중지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군부의 공격에 대해서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군부는 옛 민주주의 캠프의 관계 역학을 뒤흔들고 있다. 예전에는 공통의 비전을 위해서 민족 간 분쟁을 해결할 수 있었다”고 카린 쟈케는 덧붙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이제 끝이 났다.

 NLD는 운신의 폭이 좁다. 민간정부는 무장 세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공무원들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국방부 장관, 국경부 장관 및 내무부 장관 등 핵심 요직은 NLD가 차지할 수 없다. 이 세 핵심 요직은 전적으로 군부의 영역에 속한다. 만약 공무원들의 신뢰를 잃는다면 정부는 어떻게 자신의 정책을 수립하거나 펼칠 수 있겠는가? 

 취임한 지 몇 달이 지났지만 일부 NLD 소속 장관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계획을 따르게 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피 밍 정보부 장관도 풋내기로 여겨지고 있다. 피 밍 장관은 넓은 집무실에서 방황하고 어색해 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피 밍 장관의 일정은 공무원들이 관리한다. 이들은 이미 전임 장관을 위해 일했었다. 게다가 15년째 정보부의 행정 수석을 맡고 있는 인물은 현 정부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전혀 없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전임 장관들은 군인 정신에 의해 좀더 명확한 지시를 내렸어요”라며 아쉬워한다. 하지만 그는 단언한다, “우리 공무원들은 NLD에 투표했습니다.”

 수치 자문역의 미국 공식 방문 동안 2016년 9월 미국이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 조치를 예고한 후 10월부터 경제제재를 전면 해제하자, 미얀마 정부는 군부를 압박할 수단을 잃게 됐다. 경제제재 조치 하에서는 미얀마 인들이 ‘친구들(패거리)’이라고 부르는 군부 소유 기업과 그 협력사들에게 취해진 조치처럼, 104명의 인물에 대해서도 비자가 거부되고 교역이 금지됐다.(7) 독립잡지 <더 이라와디>의 아웅 자 편집장은 시기상조라며 미국의 결정을 비난한다. “(경제제제 조치 해제를 하면 안 됐었는데) 이제 망한 거죠.”

 오랫동안 군부는 경제 전 분야에 관련된 컨소시엄을 키워가며 고위급 인사들의 부의 축재를 보장했다. 그야말로 국가 안의 국가였다.(8) 소수민족들이 사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가스, 보석 및 천연자원은 하늘이 내린 선물이었다. 예를 들어서 NGO ‘글로벌 위트니스’에 따르면 카친 주에는 310억 달러의 경옥이 매장돼 있다고 한다. 그것은 전리품이다. 경옥 광산의 일부는 탄 슈웨 장군 등 옛 군부 출신의 최고위급 인사가 장악할 것이라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경옥을 판매한 대금은 경옥에 대한 자신들의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군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카친 군을 지원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했다. 미얀마 민간정부는 카친 주의 광산 채굴권에 대한 일체의 허가를 상세하게 재검토하기를 바라고 있다. “가장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유익한 토론의 장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카린 자케는 언급한다. 하지만 경제제재 해제 조치 이후, 군부와 연루된 기업들은 서구 투자자들과 협력할 수 있다. 주주들, 즉 군부 측 인사들에게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민 진 소장은 부의 분배의 불평등이 가져올 위험에 대해 강조한다, “빈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계속해서 평화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빈부 격차가 심각하다.”(9) 미얀마 국민의 1/3만이 전기 공급을 받고 있다. 미얀마의 옛 수도 양곤시 서부의 흘라잉 따 야 지역에서 원하는 건 딱 한 마디로 요약된다. “Sar wat nay yeikt”, 즉 “의식주”다. 이 표현은 13만 명의 사망자를 기록했던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로 큰 피해를 입은 이라와디 강 삼각주 지대의 이주민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말이다. 이 곳 이주민들은 양곤시 교외 지역에 있는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새벽부터 거리는 소규모 무리들로 북적이고 있다. 젊은이들이 웅크린 채 공장으로 가는 트럭을 기다리고 있다. 트럭 발판에 발을 올려놓고 트럭에 올라서기 무섭게 이미 만원인 트럭은 출발한다. 이들은 12시간 노동을 하러 떠난다. 좁은 집에서는 노인들이 도랑을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을 돌본다. 

 “새 정부는 임금 인상을 결정해야 한다”고 노동자 탄 에이는 말한다. “앞으로는 우리 이야기를 들어줄 거예요. 이제 우리는 다른 곳으로 이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2010년 이 지역으로 온 틴 밍은 이 사실을 믿고 싶어 한다. “걱정을 덜었어요. 예전에는 계속 두려움에 떨었거든요.” 틴 밍의 이웃인 아웅 자 역시 “부당한 일들이 사라질 거예요”라며 ‘운신의 폭이 넓어진’ 새 정부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정치에 대해서 아는 건 없지만 나한테 중요한 건 부패가 줄어들고 있다는 거예요”라고 이 지역 주민 툰 웨이는 말한다. 

 미 차이와 마웅 지 부부는 이 지역 이주민들의 권리 수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데, 군부에 대항했던 이들의 과거 활동을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들은 수치가 자신의 옛 동지들에게 “‘나무를 베는 것’을 그만두라”, 즉 제자리로 돌아가서 더 이상 예전처럼 투쟁하지 말 것을 권한다는 사실을 듣고는 씁쓸하게 미소를 짓는다. 수치의 말은 이해하기 힘든 명령이다. “이렇게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데 어떻게 투쟁을 그만둘 수 있나요?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는 게 아닌데요. 투표만으로는 부족하죠”라고 마웅 지는 말한다. 

미얀마 인구 5,100만 명 중 67%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개발 계획을 위해서 또는 군부 소유 기업과 그 협력사들을 지칭하는 ‘친구들’ 기업에 의해서 토지를 몰수당한 무일푼 농민이 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본  사안의 책임자인 NLD의 세인 윈 의원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에 따르면 농지 1백~2백만 헥타르가 몰수당했다. 토지 독점 현상은 2000년대 들어서 가속화됐다. 새 정부는 2017년 4월까지 1년 내에 몰수된 토지를 원주인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무모한 계획이 아닐까? 

 “우리는 일자리를 제공해야 하고, 이와 더불어 우리의 노동력을 훈련시켜야 한다. 걱정스러운 건 미얀마의 최근 발전에 이끌려 미얀마에 자리 잡은 외국계 기업이나 비정부기구들이 지역 투자자와 지역 프로젝트를 희생시켜 자원을 독점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라고 민주주의를 위한 청년 운동인 88세대의 지도부 중 한 명인 꼬꼬 기는 말한다. 

아웅산 수치, 소수 민족 인권 ‘모르쇠’ 

 틴 쩌 대통령과 수치 국가자문역의 임기가 끝나는 2020년이 되면 미얀마가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른다. “2008년 헌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저널리스트 밍 자는 말한다. NLD의 우선과제였던 이 목적은 현재 후순위로 밀려난 듯 보인다. 사회운동가들과 지식인들은 가난하고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인구를 희생시킨 채, NLD와 군부 사이에 엘리트 조약이 맺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NLD는 실망만 안겨줄 것인가? 2017년 4월 1일 보궐선거가 예정돼 있다. 일종의 시험이 될 것이다.

 NLD당 양곤 지역구 의원이자 작가인 테인 르윈 하원의원은 최근 일들을 일보전진을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수십 년 간 겪었던 독재는 외국 개입과는 관련이 없다. 이는 우리 사회가 병들었다는 표시다. 우리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이런 과정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렸을 때처럼 말이다.”

 “두려움과 불안, 폭력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고 작가이자 펜클럽 회장 마 띠다는 덧붙인다. 마 띠다 회장의 눈에는 2012년부터 무슬림 소수민족, 특히 로힝야족에 대해 자행되고 있는 폭력(10)은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결과물이다. “더 힘이 센 이들이 두려워서 가장 약한 이들을 억압했다. 과거 군부가 두려워서 표현하지 못했던 분노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표출되고 있다. SNS를 타고 퍼지는 소문이 분노를 부추긴다.” 더군다나 수치는 종교적 배타성이 점점 더 심각해짐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군부가 아라칸주에서 자행하는 인종 청소에 대해 비난을 받고 있지만, 수치는 ‘국제사회’가 로힝야족의 운명에 대해 끊임없이 비난하는 것을 성가시게 여기고 있다.

 2017년 6월이면 수치 자문역은 72세가 된다. 2016년 9월 미국과 영국을 방문한 후, 수치 자문역은 기력이 쇠해서 며칠 동안 활동을 쉬어야 했다. 수치 자문역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은 NLD가 2015년 총선 후보자 명단에서 지난 1988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88세대를 배제한 것에 대해 비난한다. “88세대 후보가 아웅산 수치를 능가했을 수도 있었다. 당 내에서 또 다른 당을 만들 수도 있는 인물들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라고 윈 테인은 인정한다. 윈 테인은 수치가 후계자를 준비하지 않았다고 시인한다. “어쩌겠는가? NLD는 수치를 위해, 그리고 수치를 주축으로 만들어졌다. 아마도 우리는 개인숭배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움직이는 방식이다. 그가 사라지면 다른 당이 생길 것이다.”

 마 띠다 회장은 “우리는 공통의 꿈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며 이미 처음부터 돌덩이 속에는 형상이 있으니 그게 무엇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된다는 미켈란젤로의 말을 인용해 지적했다. ‘군인들’로부터 불과 두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하원의원들이 살고 있는 도시, 네피도의 한 주민은 2015년 11월 처음으로 투표를 했는데, “적어도 지금은 비판은 가능한 시대다”라며 위안을 삼는다.  


글·크리스틴 쇼모 Christine Chaumeau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이연주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어나니머스의 여러 가지 얼굴>(가브리엘라 콜맨 저) 번역, <Manger cent façon> 참여


(1) 르노 에그르토, ‘자유 버마, 아웅산 수치의 과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2015년 12월호 참조.
(2)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알려진 와군은 샨주의 넓은 영토를 다스리고 있다. Cf. ‘Panglong fractures with UWSA delegation’s indignant exit’, <Myanmar Times>, 양곤, 2016년 9월 2일.
(3) 탕민족해방군, 아라칸군 및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
(4) Nyan Hlaing Lynn, ‘Min Zin: “It is essential that the democratic transition not be derailed”’, <Frontier>, 양곤, 2016년 9월 23일.
(5) Bertil Lintner, ‘Burma’s misguided peace process needs a fresh start’, <The Irrawaddy>, 2016년 10월 11일.
(6) ‘Min Zin: “It is essential that the democratic transition not be derailed”’,상동.
(7) 무기 금수조치는 1993년 내려져서 1997년부터 미 투자 제한으로 이어졌다.
(8) André and Louis Boucaud, ‘Valse-hésitation des dirigeants birmans’,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11월호 참조.
(9) ‘Min Zin: “It is essential that the democratic transition not be derailed”’, 상동.
(10) 수치 자문역은 로힝야족이 심각한 인권 침해를 겪고 있는 아라칸주 내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화합위원회의 장으로 코피 아난을 임명했다. 수치 자문역은 해당 분쟁에 대해 논의하는 것조차 망설이면서 크게 비난을 받았다. Warda Mohamed, ‘Des apatrides nommés Rohingyas’, 2014년 11월, www.monde-diplomatique.fr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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