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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는 귀족민주주의?
경제민주화는 귀족민주주의?
  • 성지훈
  • 승인 2017.02.01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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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누가 가짜 경제민주화를 말하는가?>
곧 탄핵 국면이 끝나고 대통령 선거가 시작된다. 선거에 즈음해 가장 많이 나오는 대선 공약은 재벌개혁, 그리고 경제민주화다. 너도 나도 대통령 후보들은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하겠다고 한다. 게다가 이른바 ‘경제민주화론의 원조’라고 불리는 김종인 전 대표는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하려면 개헌을 매개로 뭉친 제3지대 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경제민주화가 무엇인가?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경제민주화 관련 ‘촛불 입법’ 제안들은 하나같이 소수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주민주주의(Shareholders democracy)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주식투자자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것이 경제를 민주화하는 방향일까? 

정승일은 최근 발간된 <누가 가짜 경제민주화를 말하는가?>이라는 책에서 그런 방향의 경제민주화를 ‘가짜 경제민주화’라고 정면으로 비판한다. 그것은 경제를 민주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시장의 독재(주식투자자 독재)’를 가져올 뿐이라고 이 책의 저자 정승일은 말한다. ‘경제왕당파’인 0.001%의 재벌 총수 일가의 황제적 경제권력을 해체해서 우리나라 국민의 1%의 ‘경제귀족파’에 해당하는 상위 부유층 즉 주식투자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자는 것이고, 따라서 ‘귀족 민주주의’에 불과할 뿐이라고 비판한다.  

인과율에 어긋나는 양극화 진단

이 책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1부의 내용은 왜 한국경제에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지, 그 원인 분석과 해석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경제에 이식된 시장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때문에 불평등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관점이다. 둘째는 여전히 강력하게 잔존하는 과거의 전근대적인 중상주의적 경제구조, 구체적으로는 재벌그룹과 관치경제 때문에 불평등이 계속 심화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 책의 저자가 서있는 관점은 전자다. 김영삼 대통령 정부(1993~1997)가 세계화와 시장화, 자율화 등의 기치를 내걸고 1994년 WTO 가입, 1996년 OECD 가입을 추진해 과거의 국가 주도, 재벌 주도의 중상주의 체제를 해체하고 자유시장 자본주의(Free market capitalism)로 전환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시작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실제로 모든 통계수치는 매우 공교롭게도(?) 바로 WTO가입과 OECD 가입이 이뤄진 1994~1996년 시점에 불평등이 시작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의 관점은 적어도 야권에서는 소수의견에 속한다. 다수의 야권 및 진보진영 인사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이들은 과거 개발독재 시대 중상주의(Mercantilism) 경제구조의 유산인 재벌그룹 체제와 관치경제가 지금도 구조적으로 해체되지 않은 채 강고하게 지속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소득 불평등과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이들은 재벌그룹과 관치경제가 지배하는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한국 자본주의 때문에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경제에 필요한 개혁과 진보의 방향은 시장 자본주의를 완성하는 개혁, 즉 ‘고전적 자유주의 개혁’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후자의 관점을 대표하는 이들이 장하성과 정운찬, 김종인과 박영선 등 그간 경제민주화를 대변해온 학자와 정치인들이다.

그런데 장하성이 쓴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는 책조차 부인할 수 없는 또 다른 명백한 사실은, 재벌그룹과 관치경제의 전성기였던 1970~80년대와 1990년대 초까지는 불평등이 심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완화됐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든다. 왜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가까운 관치경제였던 1960~80년대에는 양극화가 오히려 완화되다가, 그것이 크게 쇠퇴해 기껏해야 ‘유산’으로 잔존할 뿐인 199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야 비로소 빈익빈 부익부의 소득 양극화가 본격화됐냐는 것이다. 사건 A(양극화 심화)의 발생 이전에 B(재벌 및 관치경제)라는 사건이 이미 존재했고 더구나 만연했다면, B는 A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인과율에 위배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서방 7대 자본주의 강국에서 헬조선

원-달러 환율 가치 변동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지만,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16년 말에는 3만 달러에 달했다. 세계적으로 인구가 5천만 명을 넘으면서 동시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6개국뿐인데, 여기에 한국이 합류할 경우 7개국으로 늘어난다. 한국의 종합 경제력이 세계 7위권에 진입한 것이다. 더구나 한국의 종합적인 과학기술 능력은 세계 7위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과학기술(R&D) 투자액 비율이 4.3%로 압도적인 세계 1위이며 연구개발(과학기술) 투자의 절대액수 역시 세계 6위로 이탈리아를 앞선다. 또한 기업 부문에 한정해 보더라도,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 비율에서 한국의 기업들은 3.4%로 세계 1위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1백만 달러(한국 돈 12억)의 금융재산을 보유한 백만장자의 숫자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이탈리아에 버금가는 서방 7대 강국임을 이 책은 여러 통계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이렇듯 한국경제의 발전된 모습을 굳이 보여주는 이 책의 목적은 다음의 두 가지다. 첫째, 한국은 전근대적 또는 봉건적 자본주의라고 규정하는 기존의 경제민주화론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다. 이 책의 저자인 정승일은 “한국경제는 전근대적, 봉건적 자본주의라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인 억지”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고전적 자유주의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가 여전히 21세기 한국 자본주의를 올바로 개혁하는 진보적 아젠다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야권의 자유주의적 경제민주화론자들 역시 시대착오적인 인물들이라고 비판한다. 

이 책에 의하면, 한국은 이미 서방 7대 자본주의 강국에 속할 정도로 시장경제가 발달했다. 그런데 그러한 발전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자본주의자들 즉 돈 많은 부르주아들, 즉 정유라와 이재용처럼 속칭 ‘금수저’들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이 책은 단언한다. 대다수의 서민과 청년들은 오히려 삼포-오포 등 ‘포기’가 삶 그 자체인 헬조선의 비참함에 빠져 있다. 

그런데 인생을 포기하는 청년들의 비참함은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버니 샌더스는 오늘날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청년세대가 그 부모세대보다 더 가난한 인생을 살게 됐다고 개탄했다. 청년들에게는 한국만 아니라 미국도 지옥이며, 헬조선은 헬미국이다. 삶의 희망과 의욕을 잃은 비참한 청년들의 모습은 한국에서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 그리고 스페인과 그리스, 이태리 등 선진국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피케티가 말한 21세기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이 책은 “헬조선과 헬미국, 헬유럽의 ‘포기한 청년들’, 현대판 ‘비참한 사람들’ 즉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이야말로 21세기 자본주의의 거대한 전환, 혁명적 변화를 이뤄낼 새로운 역사의 보편적 주체다”라고 감히 선언한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론’과 
‘삼성동물원 비판’의 한계

한편 한국경제에 만연한 헬조선 불평등의 또 다른 모습은 대기업-중소기업 간에 나타난다. 현대차와 삼성전자 임직원의 연봉은 평균 1억 원에 육박하는 반면, 중소기업의 경우 평균 3~4천만 원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이 문제의 해결에 있어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제시된 주된 해법은 대중소기업 간의 동반성장 또는 상생정책, 그리고 재벌그룹 또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축소 해체해 중소벤처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 대선에 출마하는 선언한 정운찬과 안철수 등의 해법이다.  

이 책의 제2부, ‘그들은 왜 경제를 민주화하는데 실패했을까?’는 이러한 기존의 해법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먼저 동반성장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다. 장하성 교수가 2015년 가을에 발간한 책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 따르면 동반성장 정책을 시행할 경우, 연 7.6조 원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트리클다운 된다. 그런데 과연 이 액수는 한국경제의 핵심적 불평등을 제거할 수 있는 수준일까? 오늘날 한국경제 전체 취업자의 절반인 1천만 명이 받는 월급이 200만 원이 채 안 된다. 이들의 월급을 최소한 300만 원으로 높이려면 연 160~200조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경제가 직면한 경제민주주의의 핵심 과제는 1천만 명에 이르는 저임금 노동자들, 중소기업 직원들을 어떻게 하면 월급 3백만 원 이상, 연봉 4천만 원 이상 받는 정규직 중산층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직장민주화가 진짜 경제민주화

따라서 이 책의 저자가 제시하는 양극화 해법은 대중소기업간의 공정한 하청질서 즉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넘어선다. 경제민주주의의 본래 세계보편적 의미는 산업민주주의(Industrial democracy)이며, 따라서 주주민주주의 또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의 아니라 직장 민주주의가 본래의 경제민주주의라고 역설한다. 궁극적으로 직장 내 인권과 노동권을 높여 근로소득(월급)을 높이고 근무시간을 줄여 저녁과 휴가, 여가가 있는 삶으로 귀결되는 경제민주주의라야 한다는 것이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와 복지격차를 넘어서려면 동반성장론 또는 주주민주주의론 같은 것이 아니라, 프랑스대혁명이 제시한 세 번째 가치인 ‘박애(Fraternity)’ 또는 공동체적 사회연대의 정신을 가지고 고임금의 대기업 노동자와 저임금의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이 하나의 가족, 하나의 형제·자매처럼 단결하고 서로 상부상조하는 업종별 연대와 지역별 연대, 전국적 연대정신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1원 1표 또는 1주 1표가 아니라 1인 1표 원칙의 관철되는 산별노조와 노동이사제, 그리고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자유(Liberty)와 평등(Equality), 박애(Fraternity)라는 3대 가치가 경제생활과 일상생활에서도 확보되는, 실질적인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의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한국의 촛불혁명에서 시작된 혁명적 변화를 향한 열정과 기대가 칼 폴라니가 말한 ‘거대한 전환’으로 성장하려면 미국의 버니 샌더스처럼 커다란 기획과 구상, 꿈과 비전을 야권 정치가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청년들이 열망하는 ‘헬조선 탈주’의 꿈은, 한갓 몽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글·성지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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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훈
성지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