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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만나는 집단지성의 짜릿함
수요일에 만나는 집단지성의 짜릿함
  • 김형규 ‘논현’ 르디플로 읽기모임 상근멤버
  • 승인 2017.03.02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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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현역 인근 북티크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갖는 르디플로 읽기모임은 고된 삶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해준다.

사람들은 나의 이력서를 보면서 “많이 배웠다”고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굳이 짚고 가자면, ‘많이 배움’보다는 ‘오랫동안 배움’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오랜 배움의 시간 동안 나는 몇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배움의 끝은 없다. 둘째,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셋째, 배움의 시간과 실력은 정비례하지 않다. 씁쓸한 깨달음이었다. 

그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아등바등 하던 2016년 여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이하 ‘르디플로’)에서 마련한 고전읽기 모임을 신청했다. 남들은 대학교 신입생 때 읽는다는 고전을 10여 년 뒤에 처음 읽는 사실이 나름 가방끈이 긴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식은 죄가 아니다”라는 뻔뻔한 ‘아재정신’으로 무장하고 과감하게 참여했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밀의 <자유론>, 홉스의 <리바이어던>,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 등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들어본 제목들의, 한 때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들고만 다녔던 책들을 함께 읽었다. 세월이 지나고 읽으니 이해되는 부분들도 있었고, 여전히 까만 것은 글자요, 흰 것은 종이였던 책들도 있었다. 만약 고전의 권위자에게 배웠다면 정설의 지식과 배경을 풍부하게 학습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전읽기 모임의 좋은 점은 보통 사람들로 이뤄진 구성원들이 자신이 아는 만큼 이야기를 하고 공감을 얻으며,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기도 하면서 어느 방향으로 결론이 날지 모르는 무한대 확정성의 매력이다. 학습이 아닌 혼자 힘으로 배워서 익히는 자습을 통한 배움의 매력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자습의 매력은 ‘고전’이라는 이름이 주는 딱딱할 듯한 부담감과 대한민국 야경을 밝혀주는 ‘야근’이라는 현실적 장벽 앞에 막히고 말았다. 그 때 고전읽기 모임 멤버 중 박종원이라는, 이름은 평범하지만 아는 것도 많고 말도 잘하는 근래 보기 드문 진지한 청년이 말했다. “형님, 제가 논현역 근처에서 매주 수요일 <르디플로> 읽기 모임을 만들었는데 한번 오시겠습니까?” 익히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생소한 주제와 어려운 문장으로 쉽사리 구독하지 못한 월간지 <르디플로>! 나는 고전읽기 모임에서 확인했지만 미처 발현하지 못한 집단지성의 재현을 위해 그의 초대에 응했다. 
10월의 어느 수요일, 모임이 처음 만들어지고 세 번째 되는 시간부터 참여한 나는 지금까지 매주 <르디플로> 논현 읽기 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개근상 수상의 우직한 DNA 때문일까? 미국 프로야구(MLB) 2,632경기 연속출장에 빛나는 전설 칼 립켄 주니어의 기록에 도전하듯, 가끔은 정말 피곤해 쉬고 싶은 수요일에도 나는 논현역으로 향했다. 가끔은 매주 참석하는 나를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의문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임이 지닌 매력 덕택에 나는 칼 립켄 주니어처럼 논현 모임의 ‘철인(The Iron Man)’에 가까워지고 있다. 
내가 느끼는 이 모임의 첫 번째 매력은, <르디플로> 기사를 통한 공감과 문제의식 공유다. <르디플로>는 독자들에게 도발적이고 민감한 화두를 던지고, 워싱턴 정계와 CNN의 앵글 밖 세상에 대한 국제문제들을 알려준다. 또한 우리나라 곳곳에 만연한 ‘삼성’이란 ‘공기’ 같은 존재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 공기가 없이도 더 잘 살 수 있음’을 환기 시켜주고 있다. 논현 모임 구성원들의 성향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비슷한 범주에 있다. 그 대략 비슷함을 단순히 ‘좌파’라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이 사회 속에서 일반적인 상식을 추구하는 성향에 가깝다 볼 수 있다. 이렇게 유사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르디플로> 기사들을 통해 갑론을박식 토론 보다는 공감대 형성과 문제의식을 통한 지적 자극이 이뤄지는 따뜻하고 훈훈한 시간이 될 때가 많다. 물론 날선 토론이 형성되지 않아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담론문화 형성, 세대 간·성별 간 공감대가 부족한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이런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매력은 기사 브리핑을 통한 ‘자습’이다. 읽기모임에서는 매회 두 시간 동안 3~4개의 기사를 브리핑하고 토론한다. <르디플로> 기사는 현학적 표현과 배경 설명이 친절하지 않다는 매력과 단점이 공존한다. 때문에 한 번 읽고 완벽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종종 있다. 단순히 텍스트의 의미를 파악한다 해도, 그 기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브리핑을 위해 우리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다. 모임에 참여하는 한 30대 직장인은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소모되고 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브리핑 준비를 하면서 충전되는 느낌을 얻는다.” 브리핑에 대한 금전적 혜택과 보상은 없다. 반대로 질책도 없다. 어떠한 이슈를 자신의 지식과 스스로 익힌 배움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여 공유할 때 오는 뿌듯함과 성취감이 유일한 보상이다. 기사 브리핑에 대한 의무 역시 없다. 무조건적인 발언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싶어 참여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도 준비하지 않으면 모임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체제를 유지하려는 공동체 정신(?)이 매회 3~4개 기사 브리핑의 원천이 돼준다. 출석도 자신의 의지와 일정에 따라 자유롭고, 모임의 탈퇴 여부, 자기소개도 완벽한 자유양식이다. 자신에 대해 자세히 밝혀도 되고, 이름만 밝혀도 된다. 또는 “안녕하세요?”란 인사 한 마디로도 충분하다. 이러한 자유로움이 모임의 외연을 30명 가까이 확장한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매주 모임에서 진행되는 토론과 이야기를 뜨거운 하루 저녁의 열정으로 휘발하긴 아쉬웠다. 원시인류가 동굴에 벽화를 남겼듯 우리도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르디플로> 읽기 형식의 팟캐스트 방송을 제작하기로 했다. 이미 모임장 박종원씨는 고시원 방송국(GBS-Gosiwon Broadcasting System)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팟캐스트 방송국 사주였다! “고시원에서 만들어가는 지식 콘텐츠 무한 방출 플랫폼 GBS와 세계를 보는 창,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콜라보라시옹!” “혼자 읽기 어려운 <르디플로>를 함께 알아보는 시간!” 이러한 캐치프레이즈로 팟캐스트 ‘주간 <르디플로>’는 매주 인터넷을 통해 업로드 되고 있다. 이 방송이 부디 <르디플로>가 어려운 까닭에 읽기를 망설이는 분들, 읽기 모임에 참여하고 싶지만 소심하거나, 생계 때문에 바쁜 많은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모임장 박종원씨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파이(π)라고 했다. ‘3.141592…’ 끝을 알 수 없는 무한대의 매력이 그가 파이(π)를 좋아하는 이유라 했다. <르디플로> 논현 읽기 모임은 이미 무한대의 영역에 진입했다.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 끝을 알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그것이 내가 매주 수요일 저녁, 삶의 고단함을 견디며 논현역 북티크 카페로 향하는 이유다.  


글·김형규
팟캐스트 GBS ‘주간 <르디플로>’ 공동 진행자, <르디플로> 논현 읽기 모임 상근멤버. 아이에게 보다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딸바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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