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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남자
밑줄 긋는 남자
  • 성일권/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17.04.07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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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의 일이다. 신문읽기를 좋아해서 첫 직장으로 신문사에 들어갔지만, 오히려 신문을 제대로 읽기가 쉽지 않았다. 한 부서에 신문사별로 1부씩, 대략 10여부가 할당되는데 데스크와 선배들이 먼저 집어가고, 막내인 나는 한가한 오후쯤에야 눈치껏 훑어보는 정도였다. 볼만한 기사들엔 어김없이 누군가 빨간 색 사인펜으로 밑줄을 그어놓았다. 처음엔 기분이 상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빨간 밑줄이 심심해서가 아니라, 그날의 중요기사들을 강조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가끔씩 밑줄 쳐진 부분을 읽으면서, 그 누군가의 관심사를 살짝 훔쳐보는 듯한 쾌감도 느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빨간 밑줄의 장본인이 내게는 무섭기만 하던 데스크라는 사실을 알았다. 회의석상에서 출입처와 취재현장을 가보지 않고도, 모든 걸 훤히 다 아는 데스크의 정보원은 신문을 빨갛게 물들인 사인펜이었던 것이다. 꾸지람할 땐 포효하는 호랑이 같던 데스크가 뮤지컬이나 영화평에 밑줄을 친 것이 참 신기했다. 데이트할 때 그의 밑줄을 그대로 읽고서 나는 꽤나 잘난 척했다.       

 어느새 그런 부장이 존경스러웠고, 나는 그를 닮아갔다.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신문을 읽거나 책을 읽거나, 그게 새것이든 헌것이든 가리지 않고 빨간 밑줄을 그었다. 다만, 부장의 경우 평소의 깔끔한 성격대로 늘 단정한 옷차림을 유지했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사인펜을 잡은 손가락 뿐 아니라, 팔목과 얼굴, 심지어 와이셔츠, 양복에도 빨간 잉크가 늘 묻었고, 그것 때문에 아내의 잔소리를 자주 듣게 됐다. 아무리 빨아도 빨간 흔적이 남아, 적지 않은 와이셔츠들을 내다버렸으니 말이다.    

 시간이 흘러, 나도 데스크가 되었다. 책상위에 쌓인 신문들에 사인펜을 들고서 습관대로 빨간 밑줄을 그어댔다. 어느 날, 갓 입사한 까마득한 후배가 불평했다. “저도 깨끗한 신문을 보고 싶어요.” 날카로운 모서리에 머리가 받힌 느낌이었다. 얼떨결에 “응, 그러지”라고 답했지만, 섭섭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날부터 난 신문을 펼칠 때, 행간을 손가락으로 짚을 뿐, 밑줄을 많이 치진 않았다. 밑줄 긋기의 욕망이 꿈틀거렸지만, 그걸 손가락으로 억누르고 있자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자, ‘깔끔한’ 신문에 점차 적응되었다. 신문 보는 시간이 빛의 속도처럼 빨라졌다. 1분 만에 40쪽이 넘는 신문 하나를 후딱 다 보았고, 제목만 슬쩍 보아도 뭔 말인지 다 알았다. 신문 10여개를 보는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읽는 게 아니라, 쇼핑하듯이 훑어보는 거였다. 어떨 땐 내가 쓴 글도 다시 읽지 않았다. 신문들이 수북이 쌓여도 펼쳐보는 것조차 귀찮아 손대지 않은 때가 많았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개나 구독하던 신문을 하나로 줄였고, 덕택에 분리수거 폐지를 버리는 노고를 줄일 수 있었다. 신문은 정육점 포장지로 재활용해도 좋을 만큼 깨끗했다. 아내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신문제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신문을 꼼꼼히 읽지 않는다면 그 업계를 떠나야 한다. 기자로서 일이 심드렁해지자, 도피성 유학을 떠났는데, 그곳이 프랑스 파리였다. 어느 날, 정치사상의 대가로 잘 알려진 지도교수의 집을 방문했는데, 빨간 밑줄이 쳐진 신문들이 눈에 들어왔다. 송충이가 솔잎 냄새를 맡은 기분이어서 “밑줄 친 기사가 뭐냐”고 묻자, 노 교수는 마침 기다렸다는 듯 이제 막 학문의 길에 들어선 초급 불어수준의 제자에게 20여분이나 알아듣기 힘든 고급불어로 기사내용을 설명했다. 아마도 당시,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내각이 직면한 개혁정책의 딜레마에 관한 내용이던 것 같다.  그날부터 난 프랑스 신문을 정기구독해서 읽으며, 중요한 부분에 빨간 밑줄을 치고, 모르는 단어를 찾고, 멋있는 문장은 노트에 옮겨 적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수습기자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전공서적보다는 신문에 더 손때를 묻혔다. 귀국하면서 수년 치 신문들을 모두 버리는 게 안타까워 스크랩북과 신문, 잡지 몇 박스를 챙겼다. 그건 내가 남들로부터 인정받든 말든 스스로 ‘프랑스 전문가’로서 세상을 버티게 해주는 ‘비밀병기’인 셈이다. 지금도, 나는 신문을 읽을 때면 사인펜부터 찾는다. 기자 수백 명의 손을 거친 싱싱한 신문에 빨간 밑줄을 쫙 긋는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떨 땐 나 자신이 숙제를 검사하는 선생님 같고, 또 어떨 땐 과거 안기부의 검열요원 같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지금 신문이 버림받고 있는 현실이다. 위르겐 하버미스가 “신문은 한 나라의 지성의 상징”이라고 말했지만, 기자들만 그렇게 여기는 것 같다. 일반 시민들은 물론, 대학교수들이나 연구자들도 신문을 외면하고, 심지어 신문방송학과 교수들조차도 신문을 멀리하는 걸 지식인의 덕목처럼 자랑한다. 그러면서도 보수와 진보라는 대립적인 진영 논리에 갇혀, 무작정 신문을 진영화하고, 적대시하는 이들이 많다. 스마트폰으로 신문을 본다고? 인터넷에서는 내용이 빈약하고, 문법에 맞지 않고, 오탈자가 많으며, 제목과 내용이 불일치하는 이른바 카멜레온식 기사들이 넘쳐난다. 며칠 전, 상의 안쪽 주머니에 넣은 빨간 사인펜의 잉크가 흘러서 아내가 사준 새 옷을 중고품으로 만들어 꽤나 야단을 맞았다. 그럼에도 지금, 난 신문에 빨간 밑줄을 긋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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