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안치용의 프롬나드] 4월의 마지막 햇살 옛사랑 소환하다
[안치용의 프롬나드] 4월의 마지막 햇살 옛사랑 소환하다
  • 안치용 기자
  • 승인 2017.04.30 02: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치용의 프롬나드] 4월의 마지막 햇살 옛사랑 소환하다

  

5월을 불러들이고 있는 햇볕을 한참을 쬐게 되면 한 나절이 더 지나 한밤에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꽃이 질 때 슬퍼하였지만, 낙화의 애잔한 기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둑길 주변에서 바스락거리는 분홍색 가루처럼 무상하다. 늦봄의 변덕스러운 바람 불면 하늘에 떠올랐다가 내 꿈속을 어지럽힌다.

 

플라타너스 이파리가 연한 녹색의 아기 손 같으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도시의 매연을 배경으로 플라타너스는 늘 큼지막하고 거친 초록색의 잎들로 뒤덮여 있었다. 오늘 4월의 마지막 봄 햇살 아래 여리디 여린 그 잎들을 보았다. 정맥이 드러난 인간의 손처럼 햇살 아래 미성숙한 잎맥이 완연했다.

 

언젠가 어느 여자 아이가 제 부모의 사랑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처럼 햇살이 눈부신 날이 아니라 눈발이 날리는 과거 포근한 어느 날, 아마도 어느 날의 밤, 지금 그 아이 또래의 남자는 같은 나이 또래의 여자에게 편지를 쓴다. 눈이 많이 내리면 늘 누군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오늘은 그게 너라고.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썼을 법한 뭐 그런 내용이다. 이메일이 아닌 종이편지를 통해서 물화한 사랑은 흐릿하게 바래져가지만 언제나 호명을 기다린다.

 

요즘에서야 지난 사랑은 사랑이 지났어도, 세상 어딘가에 결코 없어지지 않을 디지털정보로 남아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는, 불멸의 사랑이 된다. 결코 바래지지 않는 현존재로, 핸드폰 하나로, 약간의 노고로 옛사랑은 플라타너스 잎맥보다 더 생생하게 눈앞에 소환될 수 있다. 햇살 감당하기 힘들게 찬란한 날, 너는 0 아니면 1 밖에 없는 저쪽 세상에서, 늙지 않은 그날의 존재로, 늙어가도 최상의 존재로, 영원히 물화하지 않으며 불멸의 사랑을 기록한다. 우리의 사랑은 바래지지 않는다. 잊히지 않는다. 다만 외면된다.

 

글ㆍ안치용 지속가능성과 CSR에 관심이 많다. 한국CSR연구소장이며,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을 대학생/청소년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안치용 기자
안치용 기자 carmine.draco@gmail.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