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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부르디외가 모차르트에게 사랑의 청구서를 보내다
[안치용의 프롬나드] 부르디외가 모차르트에게 사랑의 청구서를 보내다
  • 안치용 기자
  • 승인 2017.05.07 0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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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부르디외가 모차르트에게 사랑의 청구서를 보내다

 

어쩌다 모차르트를 듣는다. 클라리넷 선율을 통해서 음악 자체에 몰입하기보다는 그 음악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떠올리게 되는 걸 보니, 어쩌다 모차르트를 들을 취향인가 보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프리카의 이미지가 나에게는 우습게도 백인 남녀 배우에 의해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다. 음악까지, <Out of Africa> 취향이다.

 

봄방학을 이용해 일본의 제 이모를 홀로 방문하고 돌아온 아들의 여행 후일담을 얼마 전에 들었다. “이모는 외롭지 않아?” 공항에서 그 질문을 받은 아들의 이모는 조카가 귀국하고 난 뒤 집에 돌아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토당토않게 그 영화의 대사가 떠올랐다.

 

외로울 때가 있어요?

가끔.

내가 외로울 거란 생각은요?

아니 안 했소.

내 생각은 해요?

자주 하지.

 

아들의 돌발 질문은 아마도 본질적 외로움을 대면한 적이 없는, 곧 행위 자체를 잊어버릴 사춘기 청소년의 무책임한 배려였을 테다. 영화의 대사는 공들여 썼을 것을 고려하지 않아도 완전히 다른 맥락을 생성한다. 대사만으로는, 메릴 스트립에게 외로움이 공유를 통해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라면, 로버트 레드포드에게 외로움은 단독으로 견뎌내야 하는 전유의 삶의 형식이다. 레드포드의 사랑은 우아하고, 영어식 표현으로 “쿨” 하지만 영화 속 인물에게서나 목격할 수 있는 사랑이다. 현실의 사랑은 스트립의 사랑이다. 하다못해 청년기를 맞아 한창 윤기 나는 털을 자랑하는 스콜을 가끔 안고 몸을 부비듯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사랑이라면 외로움의 전유를 덜어줄 모종의 위로를 청구하기 마련이다. 청구서 없는 사랑. 그런 사랑만큼 이상적인 사랑이 있을까만, 사랑이 본래 이상적인 기획이 아니라는 게 함정이다. 아마도 사랑은 예측 가능한 회피불가능성으로 정의되어야 하리라.

 

사랑에 따라 붙는 청구서를 피에르 부르디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랑은 누군가 다른 사람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는 방식이며, 따라서 자신의 운명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방식이기도 하다.” 단순히 부르디외가 사회학자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는 스트립의 사랑을 물론 “쿨” 하지 않지만 동의 받을 수 있는 사랑으로 파악하지 않았을까.

 

만일 나의 개와 나 사이의 관계를 크게 보아 사랑의 범주로 묶을 수 있다면, 적어도 나의 개 스콜의 사랑에는 청구서가 따라 붙지 않는다. (나의 사랑에도 청구서가 따라붙지 않지만, 청구하지 않고 강제 집행한다는 점에서 스콜과 동일하지 않다.) 식사와 산책 같은 것들은, 만일 사랑이라면 청구항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랑의 청구서에 적힐 항목은 위로와 배려, 공감 같은 비(非)물질적인 성격일 것이다. 신과 개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어정쩡한 포유류인 인간에게 사랑의 청구서는 모르긴 몰라도 모차르트의 음악을 능가하는 축복일 수 있다. 그러나 모차르트를 듣지 않고 축복을 누릴 수 없듯이, 청구하거나 청구당하지 않고서는 사랑의 축복을 누릴 수 없다. 청구서 생각하지 말고 이어폰으로 모차르트 들으며 개랑 산책이나 할 걸 그랬다. 황사가 심했다.

 

 

글ㆍ안치용 지속가능성과 CSR에 관심이 많다. 한국CSR연구소장이며,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을 대학생/청소년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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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기자
안치용 기자 carmine.draco@gmail.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