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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의 말마따나 이번 대선에서 하지 말아야 할 ‘지랄’은?
홍준표의 말마따나 이번 대선에서 하지 말아야 할 ‘지랄’은?
  • 안치용 기자
  • 승인 2017.05.07 1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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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빠’가 싫다. 이런저런 정치세력이 많지만 ‘문빠’가 보여주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나아가 더러 폭력적으로 비칠 수 있는 행태까지, 대체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그들의 열정과 적극적인 현실관여는 지지하지만, 그들이 표방하는 이른 바 ‘진보’라는 가치에 걸맞은 태도를 갖췄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늘 따라붙는다. 열성적인 문재인 지지자를 말하는 ‘문빠’의 ‘빠’란 규정이 위험하다. ‘빠’의 양면성이다.

 

그렇다고 6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한 ‘엄마부대’보다 더 싫은 건 결단코 아니다. 주 아무개란 엄마부대 대표란 사람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시켜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특히 “(홍 후보가) 당선되면 하루빨리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의 부당성을 철저히 조사해 명예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한 대목에 이르면 이런 인간과 대화하느니, 차라리 재래식 화장실에서 면벽수행을 하겠단 생각이 든다.

 

엄마부대와 같은 기이한 정치현상은 빙산의 일각이다. 그 아래 어마어마한 현대사의 병집이 있다. 인체와 동거하는 어떤 바이러스처럼, 박근혜란 병리현상으로 드러나기 전까지, 종국에는 우리 사회를 괴멸시키고 말 그 병집은 인체의 정상적인 부분으로 인정받았을 뿐더러 인체를 지배하려 활개를 쳤다.

 

‘문빠’는 일종의 안티테제라 할 만하다. 안티테제라는 속성상 극복 혹은 전복을 위해, 극복하려는 대상 전복하려는 대상의 행태를 어느 정도 답습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식 어법으로 ‘비정상의 정상화’가 ‘문빠’의 기치인데 비정상을 정상화하려다 보니 비정상의 문법을 일부 차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반론이 예상된다.

 

우리는 5월 9일 19대 대통령 선거 이후에 우리 사회의 병집을 완전히 넘어서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는 씬테제를 모색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그러한 변증법적 지양은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선거 이후에 세상이 갑자기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바이러스와 동거’ 상태는 지속될 것이다. 오히려 비정상 세력의 강력한 역습으로 대통령 선거에 걸었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지지부진한 개혁으로 ‘문빠’들조차도 정치혐오 혹은 정치이탈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이상의 ‘실망스런’ 상황은 지지율 공표 금지 이전까지의 지지율에 근거하여 문재인이 19대 대통령이 되었을 때를 상정한 것이다. 만일 뒤집기에 성공해서 안철수가 집권한다면 적잖이 실망한 ‘문빠’들이 대선이 끝나고 흔히 하는 말로 “이민 가겠다”는 말들을 남발할지 모른다. ‘만일’을 조금 더 진전시켜서 만일 유승민이나 심상정이 집권한다면? 또 만일 홍준표가 집권한다면 ‘문빠’들은 어떤 말을 하게 될까. 나아가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의 복원을 외쳤던 광장의 시민들은 어떤 감정에 사로잡히게 될까. 민주주의에 대한 현존하는 가장 치명적 위협은, 우리가 만들어낼 선택 중에 ‘실망’을 넘어서 ‘절망’을 산출할 선택이 분명 존재한다는 점이다.

 

1987년의 언제인가, 나는 통일민주당 당사에서 후보단일화를 외치며 농성을 벌이는 대학생 무리 안에 섞여 앉아 있었다. 13대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과 김대중의 후보단일화를 요구한 당시 민주화진영 움직임의 하나였다. 나는 후보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하나 보탠 일개 대학생에 불과하였고, 그해 겨울 대선은 군사독재 정권의 연장이란 뼈아픈 결과로 이어졌다.

 

요즘 더러 1987년과 2017년을 비교한다. 기시감을 느낀다는 사람이 있다. 너무 빨리 선거전이 진행되다 보니 토론과 분석 없이 직관에 의지해 상황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다만 상식적으로 판단해 이번 장미 대선이 광장의 촛불과 박근혜 탄핵에 따른 일련의 과정에 속한 일이라고 할 때 19대 대선이 끝나고 어떤 결과가 “가장 뼈아픈 일”이 될지는 자명하다.

 

자유한국당은 최근 홍준표 후보의 결정에 따라 바른정당 탈당파 13명의 일괄 복당과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친박계 핵심 의원들에 대한 징계를 해제했다. ‘친박’보다 못한 바른정당 탈당파의 존재, 친박의 복귀 등이 엄연한 정치현실이다. 그래서 박근혜 너머로 우리 정치를 우리 사회를 전환시키라는 촛불의 시대정신이 더 유효하다.

 

홍준표는 “내가 집권하면 어쩌려고 이 지랄을 하나”라고 말했다. 19대 대선 투표에서 꼭 하지 말아야 할 ‘지랄’이 무엇인지 역설적으로 웅변한 셈이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을 확고하게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해야 할 일 또한 쉽사리 정해진다.

 

‘문빠’들에겐 못마땅하겠지만 1987년 같은 후보단일화 요구는 물 건너갔으며 타당하지도 않다. 역설로서 안철수가 옳다. 내용상의 단일화든 무엇이든 국민이 스스로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 2017년의 시대정신은 무엇을 향해 가느냐보다 무엇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느냐일 것이다. “to의 투표”가 아니라 “from의 투표”가 시대정신이고 “뼈아픈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 길이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우리 시대는 1987년을 능가하는 역사와 민주주의의 잔인한 퇴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문빠’뿐 아니라 온 국민이 내뱉은 “이럴라고 촛불을 들었나 자괴감이 든다”는 한탄이 나라를 가득 채우게 되지 않겠는가.

 

안치용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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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기자
안치용 기자 carmine.draco@gmail.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