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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프랑스가 닮아간다
한국과 프랑스가 닮아간다
  • 안영춘/편집장
  • 승인 2010.04.0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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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르 디플로' 읽기]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본사 앞 안내판.
   발행인과 나는 지난달 프랑스 파리에 업무차 다녀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본사는, 문 앞에 붙은 명함 절반 너비의 안내판이 없었다면, 그곳이 전세계 73개국에서 발행되는 좌파 지성지의 본산이라는 걸 알아채기도 어려웠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좌파 경제 주간지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대안 경제’라는 뜻) 건물 앞에는 안내판마저 없어, 그 앞에서도 길을 물어야 했다.
 좌파 언론인들도 건물을 닮아 있었다. <르 디플로> 발행인 세르주 알리미와 ‘국제금융관세연대’(ATTAC·아탁)의 명예의장 베르나르 카상,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편집장 귀용 뒤발은 하나같이 겸손하면서 격의 없고 웅숭깊어 보였다. 한국 언론인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보며, <경계도시2>의 군상을 떠올리는 일은 민망했다. 타자를 대하는 한국 진보 진영 인사의 이미지는 과잉과 결핍의 분열적 병립이었다(37쪽).
 그러나 귀국 뒤 4월호를 만들면서 나는 파리 신사유람단의 낭만적 일원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4월호에 재현된 프랑스는 내가 본 프랑스와 상반됐고, 한국과 많이 겹치거나, 설령 다른 것도 두 나라 간 역학의 위상차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였다.
 4월호 1면 머리를 장식한 ‘금융 빅브러더의 출현’에는 국가와 은행에 의해 조지 오웰의 <1984>로 끌려 들어가는 프랑스의 현주소가 폭로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인터넷실명제를 뼈대로 한 이른바 ‘최진실법’이 시행되고 있다. 우리가 파리에서 인터뷰한 베르나르 카상은 거침없이 “사르코지는 미쳤다”고 비난했고, 사르코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한국의 대통령에 대해 “의아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르코지는 지난달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
 한국과 프랑스가 직접 대면하는 모습은 우화 속 한 장의 삽화 같다. 옛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를 두고 지금 프랑스 정부는 “역사적 우연”이라고 언명하며 한국에 ‘영구 임대’의 ‘양보안’을 던졌고, 이에 감읍하는 한국 정부와 달리 시민사회는 “역사적 정의의 복원”을 외치며 ‘완전 반환’을 위해 싸우고 있다(32쪽).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이스라엘 앞에서 역학적으로 전복된다. 자국 외교관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린치를 당해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 프랑스 정부(17쪽)와 일본의 독도 도발에 ‘조용한 대응’으로 일관하는 한국 정부는 어느 면에서 모두 ‘루저’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발언의 진위 여부는 여전히 논란 중이다.
 전 지구적 경제위기는 프랑스에서 계급 간 대립을 예각화하는 대신 계급 내부의 파열을 심화했다. 부유층 계급은 단결하고, 하층 계급은 위만 바라보며 분열한다(10~11쪽). 계급은 도시를 둘러싸고 비대칭적 힘의 대립 관계에 놓이고, 도시는 갈수록 자본의 전유 공간이 되어간다(12~16쪽). 특히 신체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한국과 프랑스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낙태로 내몰고 낙태를 금지하는 역설 안에는 남성만의 성적 자유로 상징되는 지배질서가 숨어 있다(28∼29쪽). 약자가 공간에서, 그리고 자기 몸에서 소외·배제되는 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공통된 현상이다.
 섣부르게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좌파는 풀뿌리 생활정치를 통해(22~24쪽), 소비자는 소비 중단을 통해(25쪽) 지배질서를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은 교과서 밖으로 걸어나올 수 있을까? 베르나르 카상의 말은 희망의 단서로 들린다. “약자들이여,전 지구적으로 연대하라.”

 

글·안영춘 편집장 editor@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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