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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10초가 무의미한 10년보다 가치 있을까?
추락하는 10초가 무의미한 10년보다 가치 있을까?
  • 권경원  다큐멘터리 감독
  • 승인 2017.06.01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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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아마도 내일은(원제: La vie nous appartient)
   
 

오스트리아로부터 도착한 이 영화, 스위스의 알프스 산길에서 사라(알릭스 베네제크 Alix Benezech 역)와 필립(플로랑 아르눌트Florent Arnoult 역)이 처음으로 만나 그들에게 주어진 단 하루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모습을 묵묵히 따라간다. 영화의 시작에 압착된 단 한 번의 플래시 포워드 장면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의 공간과 시간은 알프스의 풍경과 그 풍경을 오르며 나누는 둘 만의 대화를 번갈아가며 정직한 직선으로 주행한다. 이 영화의 주제를 온전히 소개하기 위해서는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선라이즈(1995)>의 한 장면이 필요하다. 


“아무도 모른 채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얘길 좋아했어.”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 충동적으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 함께 내린 제시(에단 호크 역)와 셀린(줄리 델피 역)은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눈다. 제시와 셀린이 일부러 찾아간 최초의 장소는 비엔나 변두리의 이름 없는 이들의 묘지(Friedhof der Namenlosen)다. 그곳은 도나우강에 떠내려 온 무연고자들의 시체들을 묻은 곳으로, 셀린은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은 13세 소녀 엘리자베스의 묘비를 찾으며 말한다.

“난 늘 아무도 모른 채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얘길 좋아했어. 나는 어릴 때 말야, 내가 죽었다는 걸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를 경우엔 정말로 죽은 게 아니라 생각했어. 사람에게 최상과 최악의 시간을 선사하는 건 바로 사람이지.”

과장된 플롯 없이 인물들이 여러 주제들에 대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Mumble)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모습들에 밀착하는 저예산 영화의 제작기법을 가리켜 ‘슬래커’ 혹은 ‘멈블코어’ 장르라는 말로 묶는다. 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는 이러한 장르의 시조 쯤 될 텐데, 슬래커는 그의 데뷔작(1991)의 제목이기도 하다. <비포 선라이즈>는 그의 세 번째 영화로, 사변적이고 일탈적인 슬래커 장르를 로맨스 장르로 확장하는 실험이기도 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들이 의도적으로 찾는 첫 장소가 묘지라는 것은 <화양연화>의 홀로 남은 남자주인공(양조위 역)이 엔딩에서 앙코르와트 사원을 찾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주인공들이 묘지나 유적처럼 인간의 영원에 대한 욕망이 덧없이 잠든 폐허에 경배하는 것은 사랑을 다루는 영화들의 관습적 제의(Ritual)라고 할 수 있다. 

“1,500미터의 산을 하이킹하고 싶니?”

영화 <아마도 내일은>은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십대 남녀가 자살을 결행하기 위해 함께 산에 오르는 이야기다. 제시와 셀린이 서로 사랑하게 될 것인가 하는 <비포 선라이즈>의 서스펜스(서사적 지연)와는 다르게 <아마도 내일은>에서는 사라와 필립, 두 주인공이 ‘결심’을 실행에 옮길 것인가 하는 비극적 서스펜스가 관객 앞에 놓인다. 그러나 영화는 그들의 어두운 계획과 동시에 그 자체로 아름다운 십대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사라는 기타와 캠핑 배낭을 버거운 듯 메고 있고, 필립은 자신의 스케치 노트를 숨긴 가방을 메고 있다.
사라와 필립은 산 입구에서 처음 만나 서로의 신원을 확인한 뒤 곤돌라에 함께 탄다. 영화 전반에 걸쳐 그들 사이에 잠깐씩 놓이는 침묵은 훌륭한 대사가 된다. 곤돌라 안에서 서로를 어색해하고 쭈빗거리는 둘의 모습은 기차에서 내려 버스와 트램으로 갈아타면서도 한없이 수다를 떠는 <비포 선라이즈>의 남녀 주인공의 모습을 반대로 뒤집어 놓은 모습이다. <아마도 내일은>은 이 <비포 선라이즈>의 전략을 빌려오지만, 감독은 그 전략들을 따르기도 하고 거스르기도 하며, 화면에 드러난 것들을 자신이 이야기고자 하는 것들에 영리하게 수렴시킨다. 
산에 오르는 경험 자체가 처음인 필립이 사라에게 묻는다, 
“왜 곤돌라를 탄 거야?” 
그러자, 길을 안내하는 사라가 답한다. 
“1,500미터의 산을 하이킹하고 싶니?”

 
   
▲ 2차 대전 레지스탕스의 추모비 앞에 우연히 선 사라와 필립
 
“추락하는 10초가 
무의미한 10년보다 가치 있을까?”

도시 외곽으로부터 중심으로 수평 이동하는 <비포 선라이즈>의 여정과는 달리, <아마도 내일은>의 공간은 인간의 세상을 알프스의 가을 풍경에 죄다 묻어버리겠다는 듯 탈속의 경지로 수직 이동한다. 사라와 필립이 곤돌라를 벗어나 세상과 멀어질수록 두 사람의 대화는 깊어진다. 산등성이에 버려진 망루(<비포 선라이즈>의 이름 없는 묘지나 <화양연화>의 앙코르와트 공간설정과 대응한다)에서의 작은 말다툼은 그들의 숨겨진 내면의 이야기들이 발화하는 신호가 된다.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사라는 “난 그저 평균이야. 예쁘게 치장한 꼭두각시 인형이지”라고 고백하고, 병으로 늘 혼자였던 필립은 “추락하는 10초가 무의미한 10년보다 더 가치 있다”고 다짐하지만, 그들이 도달하기를 원하는 자살 지점에 가까워질수록, ‘한 가지일 뿐인 것이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나이의 그들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렇게 그들이 쉼 없이 주고받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영화의 후반부를 향할수록, 관객들은 어느덧 우리사회에서 외면하고 금기시해온 주제들의 빗장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 영화의 전통에서 자살을 결행하는 청소년들은 이야기를 하는 주체이기 보다 타자였다. <여고괴담>의 원귀처럼 두려움의 대상이거나 <수상한 고객들>처럼 구원이 필요한 문제적 대상으로 주로 공포물이나 코미디 같은 장르 법칙 속에서 반복적으로 타자화 돼왔다. 이 영화의 원제(La vie nous appartient)를 직역하자면 ‘삶은 우리에게 속한다’쯤 될 것이다. 필자가 1991년 사회적 자살을 택한 사람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으로서 마주하게 된 그들의 흔적 또한 무모함이기보다는 삶에 대한 애착들이었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공표한 '2016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4년 9~24세 청소년 자해 사망률(10만 명 기준)은 7.4명으로, OECD기준으로 보면 청소년 자살률에 있어서는 22개국 중 중위권에 위치한다. 뉴질랜드와 핀란드의 청소년 자살률이 최상위권이고, 청소년 행복지수 선두권인 오스트리아에서도 청소년 자살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우리나라가 OECD 기준 청소년 자살률이 1위’라는 잘못된 정보는 우리나라 청소년 사망원인의 1위가 자살이라는 점, 10만 명당 성인 자살률 1위라는 점, 우리나라의 청소년 행복지수는 최하위권(올해는 22개국 중 20위)이라는 점 등이 뒤섞여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유영하는 십대 자살 커플의 이야기를 깔끔히 빚어낸 이 영화는 한국계 오스트리아 감독 알렉스 K. 리(이광민)의 작품이다. 그는 프랑스 배우들이 캐스팅 된 뒤, 자신이 썼던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프랑스어로 각색해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아마도 내일은>은 <비포 선라이즈>의 유명한 대사를 시각화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신비한 마술이 있다면 그건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나누려는 시도 안에 존재할 거야. 그 시도가 성공하는 일이 거의 없지만, 대답은 그 시도 안에 존재할 거야.”  


글·권경원
연출작으로 다큐멘터리 <강기훈 말고 강기타>, 단편영화 <새천년 건강체조> 등이 있고, 역서로 <감독을 위한 영화연기연출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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