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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막걸리병 쓰러지는 도시공원의 아침
[안치용의 프롬나드] 막걸리병 쓰러지는 도시공원의 아침
  • 안치용 / 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17.07.19 2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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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가올수록 아침 공원이 분주해진다. 오늘 아침엔 여름밤을 지새운, 중년과 초로 사이의 두 남자를 목격하였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벤치 아래엔 여러 개의 막걸리병이 뒹굴었다. 두 남자 중 한 사람이 “오기가 생겨서 더 그만두기 싫다”고 말하고 상대가 맞장구치는 것까지는 대화 내용이 들렸다.

 

공원 구석에 자리한 정자의 평상 위에선 바로 옆에 자전거를 세워놓은 채 20대 청년이 잠들어 있다. 겨울철을 제외하고 세 계절을 공원에서 노숙하는 ‘차돌 아저씨’는 아니었고 처음 보는 얼굴. 벤치 마다는 아니고 하나 건너 하나 정도에 출근 복장을 한 남자들이 각자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묵묵히 앉아 있거나 간혹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

 

곳곳에 인간들이 포진한 상황이다 보니, 개와 함께 공원 안을 돌기가 적잖게 불편하였다. 세수하지 않은 채로 감지 않은 머리에 모자를 눌러쓴 내 몰골이야 누구 보겠냐만 혹시 스콜이나 걸리버가 배변 자세라도 취할까 봐 신경이 쓰였다. 나야 개똥 치우러 나온 사람이라 상관없지만 그들에게 아침 댓바람부터 그런 광경을 보게 하는 게 어쩐지 결례라는 생각이 들 듯 말 듯하였다.

 

두 명의 막걸리남이 마침내 “술 남기면 안 되지”란 말과 함께 여전한 러닝셔츠 차림으로 건배를 하고 공원을 떠났다. 벤치에 편안하게 걸어놓았던 겉옷이 떠나는 그들의 손아귀에서 대롱대롱, 그들의 불콰한 얼굴만큼이나 예쁘다. 너무 일찍 귀가하는 두 남자가 떠나고, 너무 일찍 출근한 공원의 남자들이 떠나고, 나는 두 마리 개와 호젓하다.  

 

 

글ㆍ안치용 지속가능성과 CSR에 관심이 많다. 한국CSR연구소장이며, 지속가능청년협동조합 바람 이사장과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속가능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을 대학생/청소년들과 함께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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