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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저 대추보다 아름다운 가을
[안치용의 프롬나드] 저 대추보다 아름다운 가을
  • 안치용 / 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17.09.10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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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한 일요일 오후의 산책에 마주한 하늘이 흐리다.  

흐린 가을 하늘 아래 개 두 마리와 아직 반바지를 입은 중년 아저씨 서성인다. 순서는 늘 같다. 들어오는 입구는 집에서 가까운 쪽이고 나가는 출구도 집과 가까운 쪽이다. 오고 감에 정처가 있으니 산책이라고 해봐야 특별한 묘미가 없다. 사실 개 시다바리? 영화 <친구>에서 기억나는 그 장면, 김광규가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하던. 내 아들에게 김광규가 묻는다면, “우리 아버진 개 시다바리예요” 하려나.

흐린 가을 하늘 아래 편지를 쓴다는 오래되고, 관점에 따라 구질구질한 노래가 상투적으로 떠오르는 풍광, 오랜만에 등장한 '소주남'은 빈 소주병 없이 맨 정신으로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그 맞은편엔 동네에서 처음 보는 내 또래 남자가 검은 비닐봉지에서 삼각김밥 같은 걸 꺼내서 먹는다. 사발면도 있다. 어떻게 더운물을 부어서 여기로 가져올 생각을 했을까. 

익숙한 MSG 냄새. 스콜이나 걸리버 모두 그 향기에 취해 그쪽으로 코를 킁킁거린다. 냄새 맡는 것도 결례겠지만, 혹시 식사 중에 우리 개들이 용무를 볼까 봐 MGS 향에서 멀찍이 돈다. 

빗방울이 하나 바닥에 툭 떨어졌다. 개털이 젖기 전에 빨리 들어가야겠다. 서두르는 발길에 유난히 빛나는 대추 하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저 대추보다 아름다운 여인이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날씨. 오늘은 사발면 아저씨를 피하느라 집에서 먼쪽 출구로 나가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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