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마주한 탐스러운 대추들. 며칠 사이에 누군가 따버렸다. 햇볕 눈부신 가을날, 대추 없어 대추나무인지 식별되지 않는 식물, 이파리만 눈부시다. 이파리에 햇빛이 부딪혀 산란하며 부서져 내리는 이런 토요일 가을의 길에는
무조건 그리움이 애틋함이 가득해야 한다. 가득해야 할 것 같다. 그 그리움과 애틋함은 말랑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징건한 것이어야 한다.
무작정 소화만 잘 되는 가을날,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의 개들은 털끝에 가을을 잔뜩 묻힌 채 가끔 질책하는 시선으로 날 돌아본다. 보복이라도 하듯 가을을 밟고 돌아온 스콜과 걸리버의 발바닥 털을 정리한다. 쓸모라곤 없는 발바닥 털들이 전자바리깡에 잘려나간다.
꼬리꼬리 한 냄새를 풍기는, 개의 몸에서 분리된 개털들을 청소하며 계속 생각한다. 대추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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