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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정권에 요구되는 ‘합리적 의심’
문 정권에 요구되는 ‘합리적 의심’
  • 성일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17.09.2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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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늘 미완성일까? 구체제의 적폐청산을 외치면서 영하의 냉 추위 속에 우리가 굳은 손 비비며 촛불을 들었을 때만 해도, 촛불시위가 아닌 촛불혁명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광장무대에 용기 있게 올라와 저마다 희망사항을 외쳤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양심수 없는 세상, 학력·학벌·지역 차별이 없는 세상, 힘 있는 사람들의 갑질, 남북 간 대립과 갈등이 없는 세상, 그리하여 번영과 화합과 평화가 가득한 세상을 말이다. 

이렇듯, 새롭게 출범하는 정부가 가히 ‘혁명적’ 상황에서 ‘혁명적’ 대의를 실현하는 ‘혁명정부‘가 돼주길 염원했다. 구체제의 악몽에 시달렸던 많은 국민들은 촛불혁명에 힘입어 탄생한 문재인 정권의 출범초기에 그가 발탁한 장관후보자들의 소소한 흠결이 발견돼도 이미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깔려 뒤로 사라져야 할 ‘어둠의 세력’들의 도발적 음모 정도로 치부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촛불혁명의 ‘대의’에 부합하지 않는 문 정권의 진실이 하나둘씩 드러나는 걸 목도하는 심정은 착잡하다. 시계 태엽을 거꾸로 돌려보자. 온 국민이 거의 달달 욀 정도로 후보시절 반복했던 인사탈락 4대 기준을 첫인사부터 적용안하고 넘어가면서도 그는 사과 한마디 없었고, 박기영, 박성진 같은 인사참사로 온 나라가 들끓어도, 유감의 뜻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나라 전체가 살충제 달걀이며 발암물질 생리대로 야단법석일 때 그가 지킨 ‘침묵’이 농축산농가와 제조업체의 어려움을 감안한 것이라 쳐도, 대선 전에 철저한 환경영향평가를 약속했던 그가 성주 주민들의 성난 반대에 아랑곳 않고 사드배치를 느닷없이 결정한 것은 새삼 그의 본질적 한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국민들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민주화 이후에 멋진 색깔과 무늬를 띤 민주주의의 시대에는 ‘진실이 담긴 사실’과 ‘거짓이 밴 사실’을 구분 짓기가 쉽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도 냉정한 ‘합리적 의심’의 잣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문제는 우리가 갖춰야 할 ‘합리적 의심’의 잣대가 별다른 논리적 비판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살아있는 권력’에 의해 주어지고 또 눈금이 그어진다는 점이다. 막스 베버는 정치가들이 저지르기 쉬운 죄의 하나로 ‘자신’에게 옳은 것을 주장하고, 적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윤리적 문제를 끌어들이는 일’을 꼽으며, 이는 누가 더 옳은지를 두고 의견을 양분시킬 뿐, 모순적 요구와 갈등적 상황 속에서 사회적 균형을 만들어 가야 할 정치의 기능을 파괴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고도로 정치화한’ 정권의 윤리적 눈금은 지극히 상대적이고 편의적이어서 종종 우리의 합리적 의심의 잣대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합리적 의심이란 특정화된 감(感)이나 불특정한 의심이 아닌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실에 기반을 둔 의심을 말한다. 대법원판례에서는 ‘합리적 의심이라 함은 모든 의문, 불신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경험칙에 기해 증명을 필요로 하는 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의 개연성에 대한 합리성 있는 의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즉, 기존에 나타난 직·간접의 증거와 양립할 수 없는(반대되는) 사실이 드러날 때, 이에 대해 가지는 “왜?”라는 의문이 바로 합리적 의심인 셈이다.
“왜 4대 인사기준에 안 맞는 박기영, 박성진이고, 왜 대선공약에 어긋난 사드배치인 것인가?” 

 우리는 촛불혁명과 맥을 같이 한다는 문재인 정권의 진정성을 끝까지 믿고, 응원하고 싶다. 그런 만큼, 혼돈의 시대에서 그가 광장혁명의 대의를 늘 간직하도록 ‘합리적 의심’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10월은 러시아 혁명의 100주년이다. 논란여부를 떠나서, 10월 혁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구체제의 폐습을 일소하고 새 질서의 상상력을 구축하는 혁명적 시공간으로 부단히 기억된다. 촛불혁명에서 혁명의 코페르니쿠스적 재발견을 꿈꾸다니, <르디플로> 10월호는 대단히 불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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