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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털 없는 진화를 생각하는 가을 아침
[안치용의 프롬나드] 털 없는 진화를 생각하는 가을 아침
  • 안치용 / 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17.09.30 2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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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이 역대급 무더위다 하며 참 힘들게 난 여름이 지금에서야 언제 있었나 싶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게 생각보다 많다. 개와 함께 산책에 나서며 맞는 아침 공기가 어느새 서늘해졌다. 거추장스러워 아직 긴바지가 아닌 반바지를 입지만 위엔 바람막이다. 바람막이에 주머니가 달려 있어 반바지의 주머니가 홀쭉해졌다.

 

반바지 아래 드러난 맨살이 약간은 철 지난 느낌이나 (내 생각에) 그리 흉물스럽진 않다. 많은 털 때문에 여름을 힘들어하던 우리 집 강아지들은 요즘 바야흐로 제철 느낌이다. 제철 과일처럼 싱싱하다. 조금 더 추워져도 아니 더 많이 추워져도 무방하다. 사실 녀석들은 추운 지방 혈통이라 훨씬 더 추워도 잘 지낸다. 

 

집에서 스콜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는 돌로 된 화장실 바닥이나 문턱. 특히 여름엔 종종 화장실 문턱에다 머리를 괴고 수면을 취하는데, 혹시 입이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한 적이 있다. 술에 취해 널브러진 것도 아니고 개가 입 돌아가는 일이야 없겠지 하며 내버려두었다. 실제로 아직까지는 스콜에게서 구안와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인간은 왜 진화과정에서 털을 벗어버렸을까. 원래 더운 지방 출신이라 그런가? 이설이 있긴 하지만 우린 모두 아프리카인이긴 하다. 털이 남아 있는 진화의 도정을 상상한다면 그리 나쁠 것도 없지 싶다. 영화 <혹성탈출>처럼 털이 아주 많이 남은 채로 진화했다면 아예 의복 걱정 없이 타고난 대로 살아가면 될 테니 편리한 측면이 있다. 누군가 그건 원숭이 얘기 아니냐고 묻는다면, 글쎄 꼭 인류가 진화하는 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대답과 우리 인류 또한 벌거벗은 원숭이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대답 등이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는 우연찮게도 벌거벗은 진화를 선택하였다. 털 입은 진화가 주어졌다면 아침에 개와 산책 나갈 때 잠옷을 외출복으로 갈아입을 수고를 덜 수 있었을 테니 크게 유용하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털 관련 산업은 지금의 미용업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게 발전했겠다.

 

한데 탈모 스트레스가 훨씬 더 심해지겠다. 지금은 머리털 빠지는 걸로도 난리인데, 온몸에 털이 있으면 노화 등의 이유로 전신에서 털이 빠질 터이고, 부여된 유전자에 따라 탈모 진척의 차등화가 일어날 것이니 말이다. 중년의 시각에선 현재의 진화의 길이 더 나은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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