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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개와 함께 도모하는 달의 폭파
[안치용의 프롬나드] 개와 함께 도모하는 달의 폭파
  • 안치용 / 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17.10.07 1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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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너무 길어서였는지 정작 달에 관한 담화는 시들하고, 한두 차례 비 소식이 있었다. 노벨상 수상 후보자로 오르내리는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달이 두 개 뜬다. 만일 내가 근대의 혁명가였다면 달을 폭파할 궁리를 했으리라. 그리하여 달 대신, 토성처럼 띠를 두른 지구를 만든, 지구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흔적을 남겼으리라.

 

잠결에 달이 뜨는 대신 비가 내린다. 기별 없이 내리는 듯 마는 듯, 추석 무렵에 오는 비는 부인할 수 없는 가을비. 잠결에 오는 비는 소리로 온다. 내가 사는 집의 구조에 맞춰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무의식인 양 의식인 양 개들의 아침 행사를 걱정한다. 스콜과 그의 형제 걸리버는 이상하게 버릇이 들어 집에서는 생리현상을 해결하지 않는다. 하루에 두세 번 반드시 밖에서 용무를 봐야 한다.

 

집 밖에서만 오줌 싸고 똥 누는 개와 사는 일이 꼭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화장실이 밖에 있던 과거에는 제가 똥이 마려우면 기절하듯 피곤해도 순순히 걸어 나갔겠지만, 남이 똥 마려운 걸 해결하러 아침마다 나가는 삶의 방식이 쉬운 일일 리가 없다. 문득 숭고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같이한다는 게, 상대가 개이든 사람이든 혹은 달이든 불편 없는 순도 100% 기쁨이거나 즐거움일 리가 없겠지만 같이한다는 사실은 순도 100%다. 같이하거나 같이하지 않거나, 두 가지 중에 하나의 선택밖에 없다. 현대적 사유에서 존재는 확률로도 구현되지만, 선택은 선택 그 자체는 확률을 배제한다. 존재함으로써 선택한다면 종국엔 확률에 지배되지만, 선택이 존재를 구성한다면 (표면적으로) 우린 확률에서 벗어나 조금은 존엄해질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달랠 수 있다. 마치 근대의 테러리스트가 달의 폭파를 기획하듯이 말이다.  

 

존재 말고 생활을 얘기하자면 어차피 같이 하는 거, 이 상황을 언급할 형편일 때 나는 아침에 개와 함께 산책을 다녀온다고 말한다. 개가 오줌 누고 똥 누고 싶어 해서 억지로 끌려 나갔다가 아침식사도 하기 전에 개똥을 치우고 돌아오는 게 산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긴 해도. (이렇게 말하기 쑥스럽지만) 나이가 이만큼 들어서 아마 산책이라고 표현하는 것일 수 있다. 만일 조금 더 어렸다면 ‘팩트’에 맞춰 후자의 표현으로 설명했을지도. 그런데 (아직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산 날이 살 날보다 많은 시점에서 보니) 모든 팩트가 꼭 팩트만으로 팩트를 결정하지 않더라. 팩트는 모종의 선택이라는 깨달음. 하여 근대의 종언 이후에도 어쩌면 달의 폭파를 꿈꿀 수 있겠다는 나의 견해에 나의 개들은 꼬리를 격렬하게 흔들어 찬동하려나. (한데 아침잠은 언제나 없어지려는지. 나이 들면 아침잠이 없어진다고 하더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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