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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첫눈 내린 날엔 상투적으로 사랑을 떠올린다
[안치용의 프롬나드] 첫눈 내린 날엔 상투적으로 사랑을 떠올린다
  • 안치용 / 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17.11.21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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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의 저녁 모임을 다녀오며 나 홀로 달리는 차 안에서 가요 프로를 듣는다. 영어나 외국어로 된 노래가 아마도 마찬가지겠지만 가사가 제대로 들리는 한국 노래에서는, 특히 늦가을 초겨울 자정 전후의 가요프로에서는 사랑이 전부다. 게다가 첫눈이 온 날이라지 않은가.

 

계절 특성상 이별 노래가 많았고, 가끔 시작을 논하는 노래가 섞였다. 사랑은 설렘으로 시작해 후회로 끝난다. 사실 사랑에는 시작과 끝밖에 없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사랑의 달콤함과 기쁨, 같은 말인 사랑의 씁쓸함과 슬픔은 만남과 이별만큼 강렬하지는 않다. 간단히 말해 본질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랑할 나이를 넘겨, 사랑 노래를 들을 나이를 넘겨 서울 교외의 국도를 달리며 늦은 밤에 사랑 노래를 듣자니, 결국 회자정리라는 사자성어를 상투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항상 깨달음은 늦다. 상투성이야 말로 사랑의 고갱이이다.

 

돌아다니는 말 중에 “죽을 만큼 사랑한 사람을 남인 척 지나치게 되는 게 인생”이라고 하더라만, 첫눈 슬그머니 내린 만추의 밤과 잘 이별하면 저절로 가을을 외면하게 될까. 설렘 없는 우아한 세월, 겨울이 목전이다. Winter is coming?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 조성모의 노래가 국도 중앙선의 구불거림에 맞춰 구질구질하게 흘러나온다. 하고 많은 사랑 노래 중에서 젊어서 들은 사랑 노래가 여운을 가장 많이 남기는 걸 보면, 사랑은 역시 청년의 특권이다. 청년이 아닌 세월에겐 추억 없는 빈자리에 일상을 낙엽처럼 차곡차곡 채우는 특권이 부여된다. 바람 한 번 세게 불면 다 날아갈, 아마도 고마운 특권일 게다.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듯” 일상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당장은 가시보다 감기로 인한 목의 염증이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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