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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마시멜로
어린이를 위한 마시멜로
  • 올리비에 바르바랑 | 작가
  • 승인 2017.12.0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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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 속의 동화>, 1994 - 브뤼노 뮈나리

출판문화의 전반적인 어려움속에서도 어린이문학은 꾸준한 매출 상승세에 힘입어 프랑스 제2의 출판시장으로 자리매김되었다. 어린이 문학은 외형적인 성장 만큼이나 질적인 성장을  거둔 것일까?  


2세기에 걸친 출판업의 발전과 열혈독자에서 2세기에 걸친 출판업의 발전과 열혈독자에서 운동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보내온 열렬한 지지 덕분이었을까. 아동문학은 1980~1990년대에 이르면서 비로소 뜨거운 창작열기로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그리고 이런 눈부신 인기에 힘입어 기존에 ‘위대한’ 문학(고전 명작을 의미-역주)에게만 허락되던 높은 위상(물론 논란의 여지가 다소 있지만)을 누리게 된다.

아동문학은 금세 중요한 출판시장으로도 발돋움했다.(1) 꾸준한 매출 상승세에 힘입어(2016년 성인문학 매출이 3.88%가량 하락했다면, 아동문학은 5.25%나 상승했다) 프랑스 제2의 출판시장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바야흐로 1985년 센생드니 도의회가 관련 협회를 설립하며 몽트뢰이 어린이 도서전을 여는 등 용감한 선구자로 활약하던 시대는 이미 한물간 과거가 됐다. 당시만 해도 도서전 출품업체는 기껏해야 50여 곳에 불과했지만, 2016년 출품업체는 450곳으로 많이 증가했고, 도서전을 방문한 방문객 수도 무려 17만 5천 명에 달했다. 더욱이 출간작품 수도 크게 늘어서, 2016년 프랑스국립도서관(BNF)에 납본된 신간 중 어린이 소설과 교양서의 비율은 무려 12.66%를 차지했다.

출판사는 아동문학의 독자를 연령별로 세분화하고 있다. 연령별로 독해력이나 심리발달 수준이 다를뿐더러, 마케팅 측면에서도 독자층을 세분화하는 게 편리하기 때문이다. 가령 8~15세 독자의 경우, 기상천외한 상상력이나 라블레식 유머가 담긴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베르너 홀츠바르트 글, 울프 에를부르흐 그림. 프랑스어판 제목은 ‘누가 자기 머리에 똥을 쌌는지 알고 싶은 한 작은 두더지에 관하여’임-역주)>(밀랑 주니어 출판사, 파리, 2008년)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15세 이후 독자층을 위해서는, 교육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는 다소 모순적인 제약이 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규범적인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원작의 맛을 지워버린, 지나치게 친절한 편집

그 예로 영국의 소설가 에니드 블라이튼이 1942~1963년 저술한 유명 시리즈물 <페이머스 파이브>(2)가 대표적이다. 최근 이 작품은 프랑스에서 재번역 돼 출판됐는데, 프랑스어 새 번역본의 몇몇 문제점은 책장수의 매서운 눈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 책의 문제점도 앞서 말한 현상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우선 새 번역본에서는 단순과거 시제를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우리’를 의미하는 말도 ‘nous’라는 문어체 대신 ‘on’이라는 구어체 표현이 사용됐다. 뿐만 아니라 긴 묘사가 축약되고, 대화문은 간략해졌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현대어로 자연스럽게 고쳐 쓰려는 노력이었다는 핑계는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 등장하는 ‘super’나 ‘génial’과 같은 표현은 새삼 현대적이랄 것도 없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한편 새 번역본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몇 가지 과거의 모습을 현대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삭제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한 시리즈의 제목은 ‘곡예단’ 대신 ‘스타 서커스’로 손질됐다. 또한 순회 흥행사가 경찰에게 경멸적인 말을 건네는 장면은 삭제됐고, 매 맞는 아이라는 설정은 따귀 한 대 맞은 아이로 순화됐다.(3)

삽화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를 풍미한 장 시도브르의 육감적이면서도 선명한 그림은 섹시함이 한결 배제된 동글동글한 스타일의 그림으로 바뀌었다. 일간 <쉬드-우에스트>는 이번에 쫓겨난 삽화가가 1980년대 G. 레비스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에로틱한 만화를 그려 황금기를 누린 인물이었다며, “이런 점에서 기어 변경(삽화가 교체를 의미-역주)이 아주 불필요한 일은 아니었던 셈”이라고 지적했다.(4)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작가가 의도적이었든 그렇지 않았든 원작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파괴(또는 전복)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작가가 남겨놓은 이념적 지표들에서 벗어나, 한층 다채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다. 가령 주인공 클로드의 두드러지는 양면성(클로드는 현대판에서 ‘선머슴 같은 소녀’로 설정되지만, 원작에서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혼재된 모호한 존재로 그리고 있다)을 읽어낼 수만 있다면, 원작을 무조건 현대적이고 교육적인 기준에 맞춰 편집한 작품보다 한결 더 흥미롭고 유익한 독서를 제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이들은 현대어로 고쳐 쓰면 독자가 읽기 편하다는 점을 들어 새 번역본을 지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아동문학에는 고전이란 것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우리와는 다른 이념(설령 현대 독자의 눈에 부정적으로 비치는 이념일지라도)을 가진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와는 다른 어법으로 말을 하는, 우리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삶을 발견하는 경이로움을 느낄 수 없게 되는 것 아닐까? “저를 때렸잖아요”를 “저를 혼내셨잖아요”로 옮기는 행위는 흡사 암스테르담에 있는 레이크스 미술관이 최근 창작자가 살던 시대와 감상자가 살아가는 시대가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한 작품의 제목을 시대착오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젊은 흑인 여인”에서 “부채를 든 젊은 여인”으로 바꿔버린 사건과 비슷하다.
이 사건의 이면에는 결국 ‘공통된’ 준거를 통해 어떻게든 독자와 인물 사이의 거리를 좁혀보려는 편협한 편집관이 감춰져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출판사들은 현대의 독자가 이질적으로 느낄 만한 모든 역사적,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마케팅은 이와 같은 자기 환원적인 나르시시즘의 경향을 더욱 강화한다. 그러나 우리가 독서를 하는 목적은 오로지 자신의 세계를 알기 위해(혹은 알아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을 탈피하기 위함이기도 하지 않은가. 

심지어 청소년 문학 중 소위 ‘잘 나가는’ 장르인 판타지 문학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판타지 장르에서조차도 편집자는 독자가 조금이라도 이질적으로 느낄만한 요소는 모두 걷어내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일곱 번째 아들> 시리즈(5)의 스토리와 주인공(물론 그는 “어둠의 힘에 맞서 일어난” 인물이다)이다. 이 책은 현실 세계, 혹은 현실 세계의 가치관을 조금이라도 뒤흔들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배제한 채 예상 가능한 수준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편집자들은 오싹한 공포를 약속하지만, 정작 작품은 판타지라는 장르의 정의가 무색할 정도다. 어떻게든 자연과 초자연의 경계를 유지하기 위해 집요하게 매달린다.(6) 이런 경계 짓기는 작품 속에 그려진 세계만이 아니라 작품이 추구하는 윤리성의 측면에서도 똑같이 발견된다.

오늘날 현대 아동문학은 ‘금기’의 종말을 예찬하지만, 그것이 정녕 자유를 추구하는 행위인지 아니면 그저 한낱 순응적인 태도에 불과한지는 모호하기만 하다. 사실상 “이제는 어떤 주제도 금기시되지 않는다. … 카스테르만 출판사에서 나온 경찰 수사물 <세뤼브>도 이단 종파에서 무기상, 코카인 거래까지 모든 문제를 다루고 있다.”(7) 그러나 이 책은 정식으로 ‘문제’라는 타이틀까지 붙여가며 세계의 잔혹성과 ‘더불어 사는 삶’을 다루고 있지만, 실상 과거의 보수적 작품보다 훨씬 억압적인, 새로운 종류의 도덕성을 제시하고 있다. 아무리 놀라우리만치 현실적인 주제를 내걸었다 해도 결코 새롭거나 파격적인 상상력은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금기를 건드리는 것만으로, 금기시되는 주제를 다룬 문제작인 양 현실을 호도한다. 그리고 한층 완화된 형태의 좀 더 고차원적인 검열을 선보이는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말하자면 온갖 불행을 지적하지만, 결국 모든 이야기는 화해로 끝나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이상으로 간주되는 바로 그 화해 말이다.

유혹해야 한다, 그러나 교육적이어야 한다!

‘타깃층’을 유혹해야 하는 동시에, 교육적인 효과를 원하는 어른들의 욕망까지 충족해야 한다는 문제는 특히 교과과정과 연계해 더욱 잘 드러난다. 가령 ‘폴리오 주니어’(갈리마르 출판사의 문고판 어린이 총서-역주)에서 출간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교육 자료>는 교사들을 위해 초등 CM1과정에서 중학교 첫 과정(한국의 초등 4~6학년에 해당-역주)에 필요한 각종 교육 자료를 소설 발췌문, 질문지, 다양한 독후 활동안 등 원스톱으로 제공하며 독서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니 학생들은 이제 등장인물에 애착을 느끼며, ‘착한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현대 아동문학은 현재 초등교육과정에서는 널리 권장되며 학교 교과 내용에도 포함돼 있지만, 중등과정의 경우 수십 년째 참고 자료로만 활용되고 있다. 최근 중등과정(프랑스에서는 중학교 2~4학년, 한국의 중학교 1~3학년-역주)과 관련해 발표된 프랑스어 교육 개편안은 2008년이나 2015년도와 비교해 내용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여전히 현대 아동문학의 기능을 정규 교과 외의 역할로 한정하고 있다. 가령 2008년도처럼 개인별로 읽어야 할 권장도서로 지정하든, 2015년도처럼 수업에서 다뤄지는 ‘고전 명작’들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로 지정하든, 현대 아동문학은 정규 교과 과정 안에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출판사들은 교사들에게 문화나 교육현안과 관련된 각종 견본제품, 참고자료용 책자, 스티커 등을 꾸준히 보내 교실 안에서 자사 책이 교재로 사용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가령 출판사는 중세기사, 피라미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을 학습할 수 있도록 연계 상품으로 <마법의 오두막> 시리즈를 선보이기도 한다. 현대 시대의 어린이들이 언제까지고 무한 반복적으로 과거세계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모험담을 그린 시리즈물이다.(8) 한편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에 맞춰서도 관련 서적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현재 학교교육총국은 권장도서목록 선정기준으로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작품의 질’, ‘교과 연계성’, 그리고 ‘중학생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내용’이다.(9) 그러나 문제는 이런 작품을 검토할 만한 독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이런 경향은 여러 가지 교육적 논거를 근거로 고등학생들에게까지 널리 확대되고 있다.

이제 천재적이고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자랑하는 클로드 퐁티(10)류의 문학은 어린이용으로만 출간된다. 청소년을 위한 출판시장은 교화를 중시하는 시대적 흐름과 시장의 법칙 안에 갇혀 있다. 그러니 이제 학교와 학부모는 하루빨리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어린이용 도서 속에서 진정한 옥석을 가려낼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시급하다.  


글·올리비에 바르바랑 Olivier Barbarant
작가. 프랑스 교육감독기관인 국가교육총괄장학총국(IGEN) 소속 감독관.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2014년 출판시장의 14.2%, 2016년에도 13.5%를 차지했다. 그러나 교육 개편안에 따라 학습서 시장이 크게 성장하면서 매번 2위를 차지하던 아동문학의 자리를 빼앗았다. ‘출판관련 주요통계수치’, 프랑스출판협회, www.sne.fr.
(2) Daniel Garcia, ‘Le club des 5 et les traitres immondes(페이머스 파이브와 야비한 배신자들)’, www.livreshebdo.fr, 2011년 11월.
(3) Clément Solym, ‘Le club des 5, la nouvelle traduction qui laisse sans voix(페이머스 파이브, 할 말을 잊게 만든 새 번역본)’, www.actualité.com, 2011년 10월 6일.
(4) SudOuest.fr, 2011년 10월 7일.
(5) Bayard Jeunesse 출간.
(6) Tzvetan Todorov, <Introduction à la littérature fanatique(판타지 문학 입문), Seuil, 파리, 1970년.
(7) Emilie Grangeray, Catherine Simon, Macha Séry, ‘Livre jeunesse: les raisons d'un succès florissant(어린이책: 눈부신 인기의 비결)’, <Le Monde des livres>, 2014년 11월 19일.
(8) 미국 작가 Mary Pope Osbone이 쓴 <La Cabane magique(마법의 오두막)> 시리즈는 지금까지 50권이 출간됐고, 전 세계적으로 6백만 부가 팔렸다.
(9) ‘Lectures pour les collégiens(중학생 권장 도서)’, eduscol.education.fr, 소개란.
(10) <L'Album d'Adèle(아델의 앨범)>(Gallimard, 1986년)을 시작으로, Claude Ponti는 L'Ecole des loisirs 출판사에서 수십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 가운데 <Le Mystère des Nigmes(니금의 신비>(파리, 2016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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