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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든 어떤 책의 두 얼굴
잘 만든 어떤 책의 두 얼굴
  • 한기호
  • 승인 2010.05.10 15:4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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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노무현재단 엮음, 돌 베게 펴냄, 1만5천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출생부터 서거에 이르기까지 인생역정을 담은 <운명이다>는 탁월한 저술가인 유시민이 직접 나선 덕도 있겠지만, 노무현이 지난해 5월 23일‘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을 선택한 후 줄줄이 출간된 어떤 노무현 관련서보다 완성도가 높다.

 

이 책은 평전이 아닌 자서전이다. 서거한 지 1년이 채 안 되어 노무현의 삶과 죽음을 평가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인 만큼 자전적 기록을 토대로 한 자서전이란 방식을 택한 것은 옳은 듯하다. 기존 자료를 모두 이용하되 부족한 부분은 짧은 기간에 인터뷰까지 해서 펴낸 책치고는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아마 최근에 출간된 책 중에서 이만한 수준을 유지한 자서전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보기 드문 수준의 자서전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출세’, ‘꿈’, ‘권력의 정상에서’, ‘작별’ 등 4부로 구성되어 있다. 한 인간의 삶에서 결정적 전기가 되는 모습을 트리밍했기 때문에 임팩트가 강하다. 3부에서는 대북송금특별법, 이라크 파병, 대연정 제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지지층이 등을 돌리게 된 4대 정치적 선택을 비롯해 부동산 정책, 방폐장과 세종시, 탄핵, 남북 정상회담, 검찰 개혁 실패, 정치권력과 언론권력 등 권력의 정상에서 벌인 굵직한 사건에 대한 노무현의 정확한 입장과 잘못을 일일이 밝힌다.

노무현은 프롤로그에서 ‘대통령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책은 ‘영광과 성공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시행착오와 좌절과 실패의 회고록’이다. 하지만 그는 정치인이나 대통령으로서는 실패했지만 시민으로서는 성공해 실패를 만회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은퇴한 전직 대통령으로라도 성공하기 위해 퇴임 후 고향에서 벌인 봉하 들판 생태농업, 봉화산 숲 가꾸기, 화포천 습지 복원, 장군차 심기 등의 사업을 진척시키려던 모습을 담은 4부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꿈 많은 청년’으로 살다간 노무현의 애절한 모습을 읽을 수 있어 안타까웠다.

우리가 기억하듯이 노무현은 가족이 관련된 불법자금 때문에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모든 것이 내 책임이었다. 대통령을 하려고 한 것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꾼 지도자가 되려고 한 것이 나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는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운명이다”는 유언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남겨놓고 이 세상을 하직한다.

 죽음을 정치공학적으로 이용한 흔적

<운명이다>라는 한 권의 책이 갖는 무게는 얼마나 될까? 이 책은 노무현 서거 1주기를 기념하는 절묘한 시점에, 비슷한 시기에 치르는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사람, 더구나 한때 야권 연대의 판을 깬 장본인으로 지목받은 사람이 주도해 펴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크다.

책 내용에서도 노무현의 죽음을 정치공학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가령 군사 쿠데타 세력이 강탈한 <부산일보>의 주식을 100% 소유한 정수장학재단의 잘못을 바로잡고 싶었지만 박근혜가 야당 대표로 있어 국민 여론으로는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리고 1988년에는 ‘반란군의 총잡이’라고 규정한 허삼수를 1992년에는 ‘충직한 군인’이라고 말을 바꾸고, 측근에게 수시로 두툼한 돈봉투를 준 김영삼은 ‘훌륭한 정치 지도자’가 아닌 ‘조직의 탁월한 보스에 불과하다’고 규정한다. 또 이회창은 ‘분열주의의 상징’으로, 이인제는 ‘기회주의 화신’으로 간주하고, 대통령 선거운동 마지막 날 등을 돌린 정몽준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하는 등 반대세력을 단정적인 표현으로 격하한다. 반면에 방폐장 문제를 매끄럽게 처리한 이해찬, 장항산업단지 문제나 대추리 갈등을 잘 마무리한 한명숙, 보험급여 제외 의약품 목록(네거티브 리스트)에 들지 않은 모든 의약품에 대해 급여를 하는 제도에서 가격과 효능이 인정된 의약품 목록(포지티브 리스트)에 한정해 보험급여를 하는 제도로 전환한 유시민 등은 ‘훌륭한 재목’으로 치켜세운다.

한 권의 책은 읽는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기도 하고 혁명에 눈뜨게 하며, 때로는 한 사회의 흐름을 절묘하게 뒤바꿔놓는다는 점에서 ‘폭력적인’ 미디어로 볼 수 있다. 물론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평화로운 미디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강력한 힘을 지닌 책은 검의 양날과 같다. 잘 쓰면 좋지만 잘못 활용하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목숨’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수렁에 빠져 있다. 세종시 해법은 지리멸렬한 상태이고, 4대강 ‘살리기’는 ‘죽이기’로 변질되어 핵폭탄으로 성장하는 중이며, 천안호 침몰로 국가위기 관리능력 또한 같이 잠수하고 말았다. 게다가 극우 언론과 극우 정치세력, 정치적인 검찰, 삼성을 비롯한 경제권력 등이 결합해 차기 권력을 만들어낼 태세다. 그러기 위한 걸림돌은 온갖 무리수를 동원해 제거하기에 바쁘다.

이런 현실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나라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야권은 지리멸렬이다. 노무현 지지 세력은 1주기를 맞이해 수백만 명의 추모객을 경남 김해에 집결시킴으로써 정치적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노무현이 마지막까지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적어도 한발 물러서서 새로운 관점으로 저를 평가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라고 역설했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노무현을 활용하고 있다. 이 책은 그런 활동을 위해 징발된 대표 무기로 볼 수 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노무현의 선거구호는 백범 김구 선생의 글씨에서 따온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헤엄친다’였다. 그렇다. 노무현은 유리한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가서 떨어지는 미련한 선택을 한 ‘바보 노무현’이 되었기에 ‘노사모’라는 강력한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었다.

 그의 뜻을 살리려면…

“노사모는 반칙과 권위주의를 싫어했고 상식과 원칙을 중시했다. (중략) 노사모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큰 기업을 만들고서도 전셋집에 그대로 산다는 안철수를 존경했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였던 김민석이 정몽준 진영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후원금이 쏟아졌다. 모두 <운명이다>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노무현은 ‘원칙과 신뢰, 투명과 공정, 분권과 자율, 대화와 타협’의 국정 원칙을 지키려 했지만 ‘대화와 타협’은 자신도 부족했다고 밝힌다. 이것이야말로 <운명이다>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이자 우리가 앞으로 지켜나가야 할 덕목일 것이다. 그렇다면 노무현의 어깨를 빌려 세상을 다시 한번 개혁하려는 세력은 분열이 아닌 통합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것만이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명박호’를 넘어 ‘청년 노무현의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헌신하는 길이 아닐까?

<운명이다>는 출간되자마자 모든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양장본 1만2천 부, 반양장본 5만 부의 초판이 바로 매진되는 바람에 양장본 1만5천 부, 반양장본 3만 부가 중쇄에 들어갔다. 이 책을 정리한 유시민은 민주당 김진표 의원과 경기지사 후보단일화에 합의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진보세력은 통합을 위해 모든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그들은 결국 노무현의 죽음을 ‘새털보다 가벼운 죽음’으로 떨어뜨리고 말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운명이다>가 지닌 함정이 아닐까?

글•한기호
출판평론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출판전문 격주간지 <기획회의>와 월간 <학교도서관저널> 발행인. <디지털과 종이책의 행복한 만남> <열정시대> <디지로그 시대 책의 행방> <책은 진화한다> <위기의 책 길을 찾다>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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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 2010-05-25 00:00:19
운명이다가 노무현대통령의 자서전이라는 말은 그 분의 생각을 과거 써놓은 것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살려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죽음부분에 대해서는 편집자의 욕심이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에 대해서는 '나'의 시각이 아닌 '그'의 시각이었어야 온당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