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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는 북한과 소통채널을 열고 특사 보내야”
“한·미는 북한과 소통채널을 열고 특사 보내야”
  • 문정인 |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 승인 2017.12.2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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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남북관계, 전망과 과제
▲ <어디 좀 보자>, 2012 - 최울가

촛불민심이 일궈낸 한국정치의 기적. 그것은 바로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었다. 적폐청산과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건설이 새 정부의 역사적 소명이 돼야 하는 이유다. 그 중에서도, 수구정권 9년간 망가진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만들라는 국민의 명령은 최우선적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민심을 반영해, 문재인 대통령도 남북관계 복원을 통해 한미·북미·한중·북중 관계의 선순환 구조를 이뤄내고,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누차 표명한 바 있다. 이런 의지 표명은 지난 7월 6일,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서 명시적으로 나타난 바 있다. “북한에 대한 적대적 의도가 없으며, 북의 체제변화나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희망한다”는 발언이 이를 압축해 준다. 이 연장선상에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 7월 하순, 이산가족 재상봉을 포함한 인도적 현안을 다루기 위한 적십자회담과 군사분계선에서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군사회담을 제의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북한에 대한 화해와 협력의 메시지를 지속해서 던져 왔던 것이다.

북한의 싸늘한 반응, 그 이유는 실망감?

그러나 북한의 반응은 냉담하다. 우리 측의 대화 제의에 대해 일절 반응하지 않고 있을뿐더러, 남측과의 통신 채널마저 완전히 차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국자 간 공식·비공식 채널은 현재 전무한 상태다. 지난 8월 9일 이후에는 아예 비정부 부분에서의 대남 접촉까지도 회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5월 9일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지금까지 북한은 열 한 차례의 탄도 미사일 시험발사와 한 차례의 핵실험(그것도 수소폭탄 실험)을 감행한 바 있다. 최악의 남북한 관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불행히도 문재인 정부는 아직까지도 반전의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왜 이렇게 나오는 것일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 아닌가 한다. “당선되면 북한부터 가겠다”, “미국에도 ‘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발언들이다. 북이 문 대통령에 높은 기대감을 가진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기대감은 이내 무너지고 말았다. 4강은 물론 EU와 동남아까지도 파견하는 특사를 북한에는 보내지 않았고, 금강산 사업과 개성공단의 파격적 재개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북 제재와 압박에 남측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데 대한 불만이 큰 것으로 보인다. 즉 문재인 정부가 지나치게 미국에 경도된 정책을 전개하면서, 북에 대한 배려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남측과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자존심도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더불어 ‘제재와 압박’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삼는 남측과의 대화에 북이 선뜻 나선다면, 이는 북한이 문재인 정부의 압박에 굴복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미관계가 풀리지 않는 상태에서 남측과 대화해봤자 별반 얻을 게 없다는 실리 계산도 한몫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북미관계 개선이라는 외적 여건이 성숙되지 않는 한, 문재인 정부와의 대화는 의미가 없다는 평양의 셈법이 깔린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에 볼모로 잡혀 있는 셈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북미관계가 교착·긴장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인가? 말할 나위도 없이, 북한의 핵 야욕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11월 29일 화성15호 시험발사 이후, ‘핵무장력의 완성’을 선언하고 나섰다. 때문에 비핵화를 전제로 한 어떤 대화에도 응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결코 용인할 수 없으며,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동결하고 비핵화의 구체적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한 북한과 어떤 대화도 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악마’, ‘범죄집단’이라는 선입견부터 버려야

이런 극단적 대치 국면에서 상황은 더욱 꼬이고 있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과 미국의 독자제재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이런 악순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국의 대응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염원을 무시하고 계속 일방적 도발을 감행한다면, 선제타격이나 예방전쟁과 같은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최근 입장인 것이다. 이제 한반도 위기론은 허구가 아닌, 엄연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현 국면을 1953년 7월 휴전협정 이후 가장 첨예한 안보위기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북핵문제에 돌파구가 마련돼야, 남북관계에도 반전의 기회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북한이 현실을 직시해, 현 단계에서 핵미사일 활동을 중지하고 대화와 협상의 테이블로 나와 비핵화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미미해 보인다. ‘핵 무장력의 완성’과 ‘조미대결의 최후 결전의 해’를 운운하는 북한이, 도무지 자발적으로 비핵화의 길로 나설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략 핵무기 보유가 북한의 체제안보와 국제적 위상과 직결돼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협상 환경에 의미 있는 변화가 오기 전에는, 핵무기보유 카드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미국의 태도 변화다. 우선 제재와 압박, 강압만으로는 북한이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히려 한반도의 전쟁 개연성만 높아진다는 현실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미국도 이제는 진솔함, 상호이해, 신뢰구축에 기초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북한을 악마화하고 ‘범죄집단’으로 취급한다면 상호불신과 적대의 골만 깊어질 것이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는 지혜가 미국에 필요하다. 속내를 털어 넣고, 북한의 말에도 귀를 기울임으로써 상호수렴 가능한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북한의 말에 귀를 닫은 채, 일방적인 전제조건을 내놓고 고함만 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게다가 불필요한 설전을 피해야 한다.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밖엔 선택이 없다”, “본인과 정권을 위한 자살미션을 수행 중인 리틀 로켓맨”과 같은 적대적 수사는 역효과만 초래할 뿐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소통 채널을 열고 북한에 특사를 보내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절충점을 찾는 외교의 묘미가 절실한 때
 
우선순위 또한 분명히 설정돼야 한다. 현시점에서 북한 문제는 핵무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화생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사이버 안보 위협,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주민들의 삶의 질 등 시급한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을 일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람직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망라형 의제 설정과 그에 따른 대북압박은, 북한의 불신을 고조시켜 협상 환경만 어렵게 할 뿐이다. 현 시점에서는 핵문제에 주력해야 한다. 핵문제가 해결되면 신뢰구축의 파급효과를 통해 다른 문제들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더불어, 미국은 보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외교적 접근법을 모색해야 한다. 협상의 목표는 상황변화에 따라 조정돼야 한다. 단기적으로 북한의 핵무기와 시설들을 완전히 폐기할 수는 없다. 따라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잠정 중단시키고 핵 시설과 핵 물질의 검증 가능한 폐기를 통해 추가적인 핵무기 생산을 막는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조건만 충족된다면 핵 프로그램을 중단할 것”이라고 누누이 밝혀 왔다. 따라서, 지그프리드 헥커 박사의 “핵 동결과 사용금지, 롤백, 검증 가능한 폐기”라는 단계적 접근법은 실행 가능한 출구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6자회담에서 나왔던 기존의 합의를 재검토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실용적인 방안들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유연한 협상 자세 또한 필수적이다. 한미연합 군사훈련의 잠정 중단, 휴전협정의 평화조약으로의 전환, 북한의 원자력 에너지 및 우주·위성 프로그램의 평화적인 이용 허용, 북미 외교관계 정상화 등 가능한 카드는 모두 협상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 그저 북한이 요구한다고 해서 이 옵션들을 배제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물론 미국도 이에 상응하는 비핵화 조치들을 치밀하게 요구해야 한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북한의 의도를 파악해 신의를 저버릴 경우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북한이 원하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의 해체, 그리고 미국이 원하는 검증 가능하고도 완전하며 불가역적인 핵무기의 폐기는 쌍방이 제시하는 목표다. 이 상충하는 목표들 간에 새로운 절충점을 찾는 것이 외교의 묘미 아닌가. 

세 가지 입장을 포괄하는 창의적 로드맵  

그러나 미국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비록 북핵문제가 본질적으로 북미 간 문제이고 그에 대한 우리의 역할이 제한돼 있다 해도, 우리 정부 또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큰 그림, 로드맵을 그리는 데 우리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현재 북핵 해법은 국가마다 다르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유지한 가운데 대화와 협상에 나오겠다고 하고, 미국은 오로지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한 대화 재개를 고집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중지와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지를 교환하는 쌍중단과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연계시키는 쌍궤병행을 제안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 세 가지 입장을 창의적으로 절충하는 포괄적 해결책을 제시하는 로드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북한과의 당국자 대화 재개를 위해 주력해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과의 대화가 쉽지는 않다. 북한의 비협조도 문제지만 미국, 일본 모두 현시점에서의 북한과의 대화를 반대하고 있다. 더구나 유엔 안보리 제재 국면에서 우리 정부의 독자적 대북 대화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남한이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이 대화에 선뜻 나선 적은 드물다. 그러나 기존의 안보리 제재 구도 하에서도 북한에 줄 유인책이 전혀 없지는 않다. 한 연구에 의하면 10.4 정상선언 합의 45개 항목 중 28개 정도는 가능하다고 한다. 이것을 하나의 유인책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정부가 각종 대화의 복원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우선 북미대화가 가동될 수 있도록 측면 지원을 해야 한다. 북미대화와 남북대화가 병행추진 될 계기도 마련해야 한다. 이 둘은 상호 배타적이 아니라 보완적이기 때문이다. 6자회담의 재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6자회담은 아직도 최적의 대화수단이라 본다. 관련 당사국들은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양자·3자·4자·5자 회담이 가능할 것이다. 9.19 공동성명 또한 여전히 북한 비핵화를 위한 최고의 외교문서가 될 수 있다. 북이 ‘핵무기 완성’을 운운하는 현시점에서, 단기간 해결(Quick fix)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긴 안목을 가지고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2018년 남북관계 전망은 다분히 불투명하다. 북한이 계속 자제해 핵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고 북미대화와 남북대화가 재개된다면, 2018년 한반도 정세는 지극히 희망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북한이 지난 12월 23일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2397에 항의해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거나, 7차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한반도 상황은 지극히 어려워질 것이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더욱 강화될 것이고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행동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전쟁이 우리의 운명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문재인 대통령도 누차 강조했듯, 한반도에 또 다른 전쟁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전쟁의 비극은 6.25 만으로도 충분하다. 전쟁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북한, 미국, 그리고 관련 당사국들은 조속히 대화 모드로 돌아와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은 대단히 중요한 리트머스 실험지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된다면, 그리하여 북한이 모든 군사도발 행동을 중단하고, 우리도 한미 연합군사 훈련을 중단 또는 연기해 이를 계기로 북미·남북 간의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현 상황은 엄중하다. 시간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2018년 새해 아침, 남북관계가 정상화 되면서 북핵 해결의 물꼬가 트이고,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글·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 교수. 김대중 대통령 도서관장, 계간 <글로벌 아시아> 편집장. 최근 저서로 <중국의 내일을 묻다>(삼성경제연구소·201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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