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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월드컵으로
선거에서 월드컵으로
  • 안영춘/편집장
  • 승인 2010.06.07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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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르 디플로' 읽기]

 6월은 4년에 한 번꼴로 월드컵의 달이 된다. 축구공 하나를 놓고 푸른 행성(머잖아 화석이 될지 모를 이름이지만) 전체가 한 달 내내 열병을 앓는 풍경을 우주에서 바라본다면, 그 우주인이 메시나 호날두라도 무척 낯설어할 것이다.

그렇다고 월드컵이 좋으냐 나쁘냐를 따지는 건 부질없어 보인다. 축구는 괜찮지만 월드컵은 아니다라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사자는 괜찮지만 세렝게티에서 누를 사냥하는 사자떼는 나쁘다고 말할 수 없듯이. 축제는, 강요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싫어하는 건 자유다), 이성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 비이성적이어서 축제고, 탈일상적이어서 축제다. 축제의 기능이 한시적 일탈을 허용해 지배체제의 지속 가능성에 복무하는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타당하지만, 혁명을 위해 모든 노동자를 금욕주의자로 만들 요량이 아니라면,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월드컵은 나쁘다. 비이성적이서도, 탈일상적이서도, 체제에 복무해서도 아니다. 월드컵을 타락시키는 건 놀랍게도 ‘이성’이다. 월드컵을 싫어하는 당신이 올 6월엔 TV에서 축구 경기 대신 다른 것을 볼 수 있게 된 것을 빼고 나면, 그 이성은 욕망을 실현할 수단을 가진 극소수에게만 좋은 것이다. 이를테면 국제축구연맹(FIFA)의 과두 참주들, 월드컵을 마케팅의 시공간으로만 보는 거대기업과 방송사는 돈의 욕망을 좇는 도구적 이성으로 월드컵과 그 축제에 빠진 수많은 이를 눈치 못 채게 욕보인다. 그들은 자기네끼리 뒤를 봐주고 먹이사슬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공통적으로 부패한다(4~5면).

 

부패는 음지식물이 아니다. ‘일상의 외설’처럼 근엄한 양지에서 자란다. 부패는 햇빛 아래의 우점종이다. 정경유착은 한국 사회만의 부끄러운 자화상은 아닌 듯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판 6월호가 ‘황금 과두체제 시대’라는 대형 특집(12~19면)을 마련한 것은, 그만큼 전세계 곳곳에 사례가 풍부했다는 방증일 터이다. 정경유착이 이른바 후진국만의 질병이라는 생각은 서구가 만들어내 이식한 이데올로기, 오리엔탈리즘이다. <르 디플로>에는 서구 국가의 얘기가 훨씬 많다. 그런 나라일수록 금권 부패는 제도 안에서 대담하게 서식한다.

한국의 부패 양태도 이제 ‘G’(주요국)의 자격조건을 충족할 수 있을지는 독자께서 판단해보시길. 대신 <르 디플로> 한국판은 ‘대한민국 국격을 높이기 위해’ 열린다는 올가을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따져봤다(32면). 세계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G8을 대체했다는 G20은, 그러나 경제위기의 원인이자 위기 자체인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집행기구에 되레 힘을 실어주려 하고 있다. 우리 삶과는 도무지 아무 관련도 없을 것 같은 높은 인물들이 지금 여기 우리 삶을 얼마나 근본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지도, 미국이 유럽에 어깃장을 놓지 않았다면 한국이 이 서클에 들지 못했을 거라는 귀띔과 함께 들어볼 수 있다.

4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월드컵의 달은 한국에선 지방자치선거의 달이기도 하다. FIFA 일속이 스포츠 축제를 능욕할 때 한국의 정치 축제도 온전하지는 않았다(1, 28~29면). 그래도 교육감은 투표하신 후보가 당선됐는지 모르겠다. 어떤 후보들의 ‘교육 정상화’ 구호는 경찰이 진을 친 뉴욕의 학교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인다(1, 7면). 6월이면 꽃도 거의 지고, 봄은 다 간 것 같다. 그래도 6월엔 찔레꽃이 앞을 맡고 능소화가 뒤를 이어간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꽃들과 더불어 한 해를 나는 것이다. 지금 <르 디플로>와 희망을 얘기하자면 굳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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