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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 <굿타임> - 격돌하는 소우주
[문성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 <굿타임> - 격돌하는 소우주
  • 문성훈(영화평론가)
  • 승인 2018.02.27 15: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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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지난 과거에 대해 묻는 노회한 정신과 의사와 마주하며, 지적장애를 지닌 청년의 흐릿한 눈빛은 정처 없이 동요한다.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그가 의사의 끈질긴 회유에 못 이겨 자신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려는 찰나, 갑자기 들이닥친 청년의 형은 의사의 진단서를 찢어버리며 상기된 얼굴의 동생을 이끌어 병원을 나선다. 영화 <굿타임>은 극의 도입부에서 청년이 차마 끄집어내지 못한 이들 형제의 과거사를 더 이상 부언하여 질문하지 않는다. 참혹한 결말을 예정한 폭주기관차의 탈선을 두고 열차가 탈선하게 된 원인을 거슬러 재단하는 것은 사후의 부차적인 문제일 터, 이 영화를 연출한 사프디 형제는 뉴욕으로 대변된 희망 없는 도시를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던 반(反)영웅이 비참한 패배를 맞이하기까지의 일련의 급격한 변곡점에 초점을 맞춘다.
 
장르물을 비롯해 숱한 영화들에서 접하게 되는 등장인물들의 갈등은, 자의와 타의를 불문한 크고 작은 범죄에 이들이 연루됨으로써 촉발하거나 증폭된다. 정상적인 세계의 질서를 벗어난 그들의 행태는 흔히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라는 다소 도식적인 수식어로 포장되기 일쑤지만, 적어도 몇몇 영화들에서는 이러한 ‘일탈’의 프레임이 무색해진다. 예컨대 60년대 이후 미국에서 쏟아져 나왔던 뉴아메리칸 시네마 조류의 작품들에서는 그들의 행태가 ‘일탈’이 아닌 ‘대결’의 모양새로 그려진다. <보니 앤 클라이드>(1967)의 워렌 비티와 <뜨거운 오후>(1975)의 알 파치노, 그리고 <파이브 이지 피시스>(1970)의 잭 니콜슨 등이 그려내는 폭력과 파국의 순간들은 그들이 각기 속해있던 제도권 사회로의 안전한 귀환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질서와의 대결의 양상을 빚는다.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지난한 대결 가운데서 영화 속 사회낙오자들은 돌아갈 길 없는 필연적 패배에 직면한 ‘반(反)영웅’으로 등극하게 된다.
 
영화 <굿타임>은 제 앞가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동생 닉(베니 사프디 분)에 대한 코니(로버트 패틴슨 분)의 비뚤어진 형제애를 다루고 있는데, 애정과 보호라는 명목 하에 자행되는 그의 행동들은 곧 형제를 위협하는 외부세계에 대한 다소 강박적인 방어기제의 외양을 띤다. 코니는 동생의 상태를 진단하려는 정신과 의사를 거짓말쟁이이자 사기꾼으로 매도하며, 영화 중반 감옥에 수감된 닉이 동료 재소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후 입원했다는 병원을 무턱대고 찾아가 동생을 빼돌리려 무모한 시도조차 서슴지 않는다. 동생과 함께 벌인 어설픈 은행강도 행각이 허무한 실패로 돌아간 이후, 플로리다로 떠나 새로운 삶을 영위하겠다는 코니의 희망은 악화일로로 치닫는 상황의 연쇄 가운데서 점차 이룰 수 없는 백일몽으로 귀결되고 마는데, 미래에 대한 일말의 꿈마저 박탈당한 이 남자에게 남은 것이란 오로지 자신의 처지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무자비한 세계를 향한 불신과 악다구니뿐이다.
 
사프디 형제의 세 번째 장편 연출작인 이 영화에서 특기할 부분은 인물의 동선을 좇는 촘촘한 속도감 가운데서도 중심인물과 그를 스쳐가는 주변 인물들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밀도 깊은 관찰을 기울인다는 점이다. <굿타임>은 코니와 닉, 두 형제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극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며 코니의 몰락에 일시적 제동을 걸거나 사태의 악화를 가속화시키는 주변 캐릭터들과의 역학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코니의 애정을 볼모로 그에게 끊임없이 착취당하는 여자친구 코리(제니퍼 제이슨 리 분), 코니가 동생 닉으로 오인하여 병원에서 탈출시킨 마약중독자 레이(버디 듀레스 분), 병원에서 도망한 두 남자가 경찰의 눈을 피해 하룻밤을 지새우게 된 가난한 가정집의 딸 크리스털(탈리아 웹스터 분) 등 각각의 인상적인 조역들은 그 자체로 제도권 사회의 궤도에서 몇 발자국 비껴난 ‘소우주’로서 코니와 조우하게 된다.
 
그 가운데 사프디 형제의 전작 <헤븐 노우즈 왓>에도 출연한바 있는 버디 듀레스는 영화 속 불운한 마약중독자 레이를 인상적으로 구현해냈다. 영화 중반 레이가 코니에게 들려준 자신의 지난 며칠간의 지리멸렬한 일상은 독특하게도 극 중 액자 형식으로 삽입되어 제시되는데, 다소 과장되고 익살맞게 연출된 이 시퀀스는 그 자체로 영화가 다루고자 한 삶의 우연성과 역설을 관통한다. 한 인물이 지닌 욕망과 감정은 그를 둘러싼 시간과 결부되어 오늘의 현재를 이루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연의 흐름은 현재의 시간을 갖가지 예측불허한 미래의 모습으로 탈바꿈시킨다. 레이의 회상 시퀀스에서 압축적으로 제시되듯이, <굿타임>에서 그려진 코니의 몰락은 숱한 선택과 만남의 순간들로 점철된다. 이렇듯 잔혹한 현실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소우주’들 간의 충돌은 일말의 회한을 느낄 겨를도 없이 찰나의 순간 불운한 운명을 집어삼키며 영화 속 비극을 완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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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훈(영화평론가)
문성훈(영화평론가) info@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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