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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드넓은 바다를 향한 희망
5월, 드넓은 바다를 향한 희망
  •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
  • 승인 2018.04.30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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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삶에서 혁명은 소중한 순간이다. 사회 규범을 가둬둔 뚜껑이 들리고, 그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 온 것들, 관습 등에 대해 난데없이 성찰하며 새삼스럽게 문제로 삼기 때문이다. “드넓은 바다를 향한 희망이 없는, 회색 도시들의 강”(1)이 여기서 다른 강줄기들을 만나 밝게 빛나고, 마침내 모든 강줄기가 바다로 합류한다. ‘사는 게 다 그런 것이지’라며 체념하던 삶에서 ‘왜 안 되는데?’라는 반론이 불거지고,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진다. 50년 전 아직 ‘투쟁의 결집(Convergence des luttes)’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던 때에, 반란이라는 전염병은 역사가 끝나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 역사를 빚어낸 개혁과 혁명들이 어쩔 수 없이 참고 따라야 하는 의무감을 끊임없이 지우려 했음을 되새긴다.


1968년 5월, 혁명의 예행연습은 본 공연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노동자 파업으로 기록된 총파업조차도 후대에 오점을 남긴 것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혁명의 투사들이 가장 형편없는 모습으로 혁명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17년 10월 타계한, 학생 신분으로 혁명을 이끈 자크 소바조(Jacques Sauvageot)는 찬연히 빛나고 그렇기에 더더욱 제자리로 되돌려놓을 수 없는 68혁명의 면면을 체현(體現)했다. 그는 이 혁명에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시각에서 작동하는 집단의 산물”을 목도했다.(2)

그는 “당시의 혁명 세력이 비정한 자본주의의 폐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회상하면서, 그러나 그 문제가 “더 넓은 세상에서 다뤄지지 못했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자크 소바조와 그의 동료들은 일자리 공유나 부의 분배보다는 노동의 합리성과 효율성에 밑바탕을 둔 ‘현대성’에 반대했다. 그들이 열망한 ‘세계화’란 나날이 더 빨라지는 상품의 유통이 아니라, ‘국가 간 연대에 필요한 발전’을 겨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1968년 5월, 이미 ‘대학을 돈벌이 수단’(3)으로 전락시키고, 사회적 재생산 수단을 확보하려는 권력에 맞서는 투쟁이 부각된다.  

그러나 권력자들이 이러한 기억을 자의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담론’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한다. 예컨대 에마뉘엘 마크롱, 앙겔라 메르켈, 저스틴 트뤼도 등이 주장하는, 68혁명에서 변종된 문화진보주의와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역시 68혁명에서 끌어온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는 모순투성이임에 불구하고, 기존 정치에 대한 투쟁의 일환으로서 새로운 지배담론을 주도한다. 요컨대, 이들은 민족주의적 권위주의에 맞서는 열린사회의 다원주의를 표방하되, 거기서 나오는 권력관계와 경제시스템은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이다.(4)

따라서 프랑스 대통령을 마치 모든 ‘극단적인’ 것들에 맞서는 민주적 현대화의 세계적 상징으로 묘사하는 것은 참으로 듣기 거북한 역설이다. 더구나 그가 “프랑스 젊은이들은 억만장자를 갈망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노조와 대치하고 불가침적 기본권을 위협하는 이 시점에 말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68혁명을 기리겠다고 예고했다. 그런 기념행사는 의미 있는 일일 것이나, 그가 대변하는 ‘구세계’에 맞서는 것이어야 한다.

반세기 이상 지난 지금에도, 이 ‘구세계’는 여전히 (68혁명에 대한) 두려움을 기억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처절한 복수(復讐)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번역·조민영 
서울대 불문학과 석사 졸업.
(1) René Crevel, 『Détours(모퉁이)』, <La Nouvelle Revue française(신 프랑스 평론)>, 파리, 1924년.
(2) Jacques Sauvageot, <Débats de l’ITS(사회주의 논단 연구소 토론집)>, 파리, 2018년 3월.
(3) 장 카펠 낭시대학교 학장의 말을 인용.
(4) Pierre Rimbert, ‘De Varsovie à Washington, un Mai 68 à l’envers(바르샤바에서 워싱턴까지, 거꾸로 된 68혁명)’,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한국어판 2018년 1월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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