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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군소 노선들이 사라진다
철도 군소 노선들이 사라진다
  • 브누아 뒤퇴르트르 | 작가
  • 승인 2018.05.31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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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여행>, 2017 - 페르난도 코스타
정부가 공공부문 축소를 가속화해 결국엔 모든 이들이 철도 서비스 악화문제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철도 승객과 노동자가 지금처럼 대립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철도교통망을 와해시켜 자동차 및 도로교통 이용자들만 늘어나게 된다면, 대체 기후변화를 막겠다는 저 선언들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철도 군소노선 운영에는 너무 큰 비용이 들어간다고들 한다. 하지만 필자가 애용하는 낭시-생디에데보쥬 간 열차만 해도, 그동안 비용 절감에 주력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는 다른 대안이 없어 마지못해 계속 이용해야 했던 그 쓰레기 열차(녹이 슬고 지저분한 낙서로 도배된 낡은 차량)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낡은 차량은 이후 ‘봉바르디에’사가 만든 최신식 왕복 열차로 대체됐다. 물론 이마저도 내부는 몹시 조악해서, 열차가 운행되는 동안 플라스틱 부품들이 달그락거리거나 두 승객이 팔걸이 하나를 함께 써야 했다. 
 
여하튼 회사는 신형 열차를 도입하는 와중에도 여전히 비용 절감에 전력투구했다. 이를테면 출퇴근 시간대 외에는 기차 운행을 버스 운행으로 대체하며 1시간이면 갈 거리를 2시간씩 소요하게 했다. 그런가 하면 일부 열차의 차량에는 검표원마저 사라져 문제가 생겨도 승객들은 혼자 발을 동동 구르기 일쑤였다. 정확한 운행시간도, 안내정보도 기대할 수 없었다. 열차시간표와 무관하게 열차가 도착하는 상황에서, 하염없이 열차를 기다려야만 하는 일들이 흔했다. 예전에는 기술문제가 발생하는 즉시 인력이 투입됐지만, 이제는 ‘물주’인 지자체와 회사 상부까지 보고가 올라간 후에야 결정이 내려지기 때문에 승객이 철로 한복판에서 조치가 취해지기만 기다리는 일이 흔하다.

다른 하늘 아래에 있는 
TGV와 앵테르시테 
 
더욱이 프랑스 국영철도회사(SNCF)는 더 이상 고속철도망(TGV)과 지선으로 철도를 연결하는 데 관심이 없다. 그러다 보니 기차가 연착이라도 하는 날이면 제때 고속철을 갈아타지 못해 승객들이 낭패를 보곤 한다. 바야흐로 ‘연결’의 시대에 정작 철도만은 상호연결에 무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일까. 열차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광고는 줄기차게 우리가 하나의 총체적 서비스를 이용하는 승객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브랜드의 고객임을 유난히 강조한다. 
 
초현대식 철도 브랜드 TGV는 철도망이 폐허 수준으로 변한 앵테르시테(Intercités)와는 전혀 다른 하늘 아래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앵테르시테는 툭 하면 수리 때문에 연착하기 일쑤고, 기관차 고장으로 기차가 아예 출발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가 하면 꿋꿋한 ‘코라이(Corail)’ 기차는 재앙 속에서도 가까스로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따라서 우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더 넓고 쾌적한 열차를 운행하며 이등석을 포함해 승객에게 안락하고 편리하고 신속한 여행을 제공하던, 이 열차의 과거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앵테르시테의 일부 노선도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수익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간선노선과 횡단으로 연결된 지선 열차 운행 중단을 재고해야 할 형편이다. 이른바 ‘지방분권’이라 불리는 시대에 리옹에서 보르도를 가기 위해 파리를 거쳐야 하다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상황인가. 철도 개혁은 무엇보다 특히 TER(지역급행열차)를 정조준하고 있다. 회사 측은 저가형 지역 열차인 TER를 눈엣가시로 여기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정말 그렇다고 추정할 만한 것이 회사는 그동안 TER 열차 운행 수를 꾸준히 줄여왔다. 그 바람에 일부 승객은 자동차나 버스로 이용 수단을 옮겨가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충분치 않은 것이었을까. 최근 스피네타 보고서(1)는 이제 열악한 열차 운행 수준을 넘어, 군소노선 운영에 너무 큰 비용이 든다며 과감히 환부를 도려내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지침과 정반대 노선으로 달려온 
철도교통망
 
이 대대적인 개혁의 시기에 통치자들이 머릿속에 품고 있는 논리를 지켜보며, 필자는 그 모순적인 행태에 충격을 금할 길이 없다. 이 나라의 의원이라는 자들은 저마다 모든 언론매체의 지원 사격을 등에 업고 환경보호 약속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향한 신념을 열성적으로 설파해왔다. 환경그르넬(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한 개발에 관한 장기 목표를 설정하기 위한 프랑스 민관 환경협의체-역주)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가용 시대에 맞서 기차 편을 늘려야 한다거나, ‘촘촘한 지역 교통망’을 확실하게 구축하고, 대형 화물차량의 교통량을 줄이기 위해 화물열차 수준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철도 발전을 위한 일부 권고 사항에 경건하게 동의해왔다. 
 
그러나 지난 20년 철도교통망은 이런 지침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역행해왔다. 마치 도덕적 선언은 경제시스템과는 양립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저들은 한편으로는 ‘책임감 있는’ 교통수단의 필요성을 선전하는 한편, 경쟁체제를 정비하며 촘촘한 지역 교통망 구축에 기여하고 있는 일부 군소노선들을 폐쇄하는 등, 비용 절감에만 눈이 먼 SNCF의 행태를 방관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기후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주기 위함인지, 니콜라 윌로를 ‘국무장관급’ 환경 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정작 그로부터 2년 전인 장관 시절의 마크롱은 어떠했는가. 철도의 특수성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마크롱 장관은 버스 운행 규제를 철폐해 지선열차 노선망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환경문제에 그토록 관심이 많은 언론들조차 이를 그저 일자리 창출과 비용절감을 위한 대책으로만 이해했을 뿐이다. 저들은 한편으로는 철도의 장점을 널리 선전하곤 한다. 그러나 특히 SNCF의 명운을 손에 쥔 경영진들은 그저 하늘만 열렬히 우러러보며 항공 모델에만 침을 흘릴 뿐이다. 가령 SNCF의 기욤 페피 사장은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장 즐겨 하는 선물은 “비행기 표를 주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철도교통의 미래’에 관한 보고서를 다른 어는 곳도 아닌 바로 전 에어프랑스 KLM의 사장이었던 장시릴 스피네타에게 맡긴 사실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이 같은 선택은 1980년대 시작된 일련의 변화들과 일맥상통한다. 당시 프랑스 철도는 TGV 발전의 발판으로 삼겠다며, 아메리칸항공으로부터 ‘소크라테스’(SOCRATE·고객을 위한 유럽비즈니스관광예매시스템) 전자예매시스템을 도입했다. 이후 철도회사의 공공서비스는 점점 더 항공사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무조건 예매를 의무화하는가 하면, 티켓 가격도 구매수요에 따라 변동시켰다. 규칙적으로 운행되고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라는 개념, 만인을 위한 보편성에 역점을 둔 킬로미터 단위의 정찰제라는 과거의 관행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 셈이다. 
 
오늘날에는 보안검색을 강화하는 쪽으로도 발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수화물 처리를 위해 줄을 서 있는 동안, 또는 일부 열차 칸에 탑승하기 전 보안검색을 거치는 일이 일상화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도시 외곽에 공항 모델을 본뜬, 넓은 주차장으로 에워싸인 대형 기차역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엑스-TGV 역을 비롯한 이 신설 터미널들은 지선열차들과는 연결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승객들은 차들로 꽉 붐비는 매연 가득한 연결도로를 따라 다시 목적지까지 버스나 자동차로 이동해야만 한다. 말하자면, 이제 기차는 몇몇 인구밀집지역을 연결하는 ‘발 달린 비행기’가 돼버린 꼴이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은 여전히 공공서비스니, 지속가능개발이니, 지역 교통망 확충이니 하는 소리를 외치고 있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역설적인 상황인가.
 
‘자동차 없는 생활’을 가능케 할 유일한 수단
 
미국으로부터 많은 모델을 도입하고 있는 사회에서, 이런 변화도 역시 북미식 사고방식을 유럽 차원에 적용하는 또 다른 사례가 아닌가 싶다. 미국의 경우 대도시가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어 철도나 항공기로는 일부 주요간선 노선만 연결하고, 나머지는 시외버스와 렌터카로 보완하는 모델이 가능하다. 그러나 유럽은 국가와 도시, 지방이 서로 인접해 있는 데다, 19세기부터 물려받은 철도망이 촘촘하게 구축돼 있어 미국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공공교통 개념이 요구된다. 가령 가까운 인근에서 규칙적으로 운행하는 동시에 출발·도착 시각이 정확하고 이용이 간편한 교통수단을 필요로 한다. 
 
스피네타 보고서는 대도시에 대해서는 기차의 이러한 필요성을 인정하는 한편, 나머지 대부분 지역에 대해서는 등한시하고 있다. 스피네타 보고서는 기차란 자고로 최대한 많은 승객을 싣고 타이트하게 운행돼야 할 일종의 ‘대중교통수단’으로 정의하며, 농어촌 열차는 이용객이 너무 적고, 전기설비가 미비한 군소노선이 버스에 준하는 공해를 발생시킨다는 논리를 들어 많은 지역노선의 폐쇄 필요성을 권고한다. 
 
그러나 철도교통수단과 도로교통수단은 단순히 이 문제만 가지고 비교할 사안이 아니다. 버스는 기차보다 더 느리고 운행시간도 정확하지 않아 교통체증을 일으키며, 공해로도 이어진다. 반면 철도는 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교통 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일하는 사람에게나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에게나 모두 안성맞춤인 교통수단이다. 기차 안에서는 갑작스럽게 커브를 틀거나 속도가 바뀌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승객은 식사나 휴식, 독서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또한 기차는 고등학생들에게도 편리한 등하교 수단이 돼준다. 일례로, 현재 폐쇄 위기에 처한 생디에와 셀레스타 사이에 위치한 보쥬 산악지대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철도로 등하교를 하고 있다. 명실상부한 철도망 구축과 원활한 운행만 이뤄진다면, 교통체증 해소가 절실한 이 시대에 자동차 없는 생활을 가능케 할 유일한 교통수단이 기차다. 이런 많은 이점을 고려할 때, 기차는 수익논리로만 그 가치를 따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자체로 훌륭한 문명 수단이 될 수 있다.
 
사실상 인류의 미래에 깊은 관심을 지닌(그들이 그러함을 결코 의심하지 말라) 많은 정치인들이 대규모 환경·정치 행사에서 그토록 철도의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다만 유럽연합과 세계적인 통상 규범을 널리 확대하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이런 신념에는 배치될 뿐이다. 자유시장과 절대수익을 표방하는 교리는 공공서비스라는 개념과는 완전히 상치된다. 공공서비스(기차, 병원 등)란 지자체의 재정 지원 아래 우수한 인프라를 어느 곳에서나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니 말이다. 
 
‘동시에’라는 수사학에 빠진 의원들
 
결국 모순에 빠진 의원들은 ‘동시에’라는 수사학 외에는 달리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가령 지구를 보호하는 ‘동시에’ 버스 부문도 발전시킨다. 대중교통을 개발하는 ‘동시에’ 수익 논리에 따른다. 국가 주도 대형 사업을 실시하는 ‘동시에’ 지자체장의 입맛에 따라 지역 차원에서 국가 주도 사업을 포기하기도 한다. 심지어 전면에 나서주어야 할 환경운동가들마저 좀 더 폼 나는 투쟁(원자력 발전소, 유전자변형작물, 파리 교통 문제 등)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철도 문제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프랑스의 총리 역시 지역 균형 발전 문제에 소홀하지 않는 선에서, 모든 문제를 사안에 따라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앞으로도 결국엔 철도 서비스의 축소 및 악화(지난 20년간 꾸준히 열차 운행상황이 악화돼온 아브르 시를 보라)로 이어질 현재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는 뜻인 듯하다. 이에 따라 삼류고객 취급을 받는 많은 철도 승객들은 차라리 자동차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기차이용객의 수는 점점 더 감소할 것이다. 결국 또다시 군소노선들의 필요성은 더욱 낮아지는 악순환이 거듭될 것이다.
 
정치권이 실질적인 의지를 가질 수만 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변화도 가능하다. 가령 어느 지역에서나 가까운 역에서 예약 없이도 어느 시간대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철도를 유지하고 장려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오늘날 유럽 전역의 화물트럭으로 도로가 꽉 붐비는 프랑스와는 달리 스위스의 경우처럼 화물열차를 널리 발전시키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프랑스의 정치인들은 사회복지 축소에 대해서는 외국 모델, 그 가운데서도 특히 독일 모델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런 그들이, 독일의 SNCF로 통하는 도이치반이 철도망을 현대화하기 위한 계획에 나서고, 철도사업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자회사인 버스 사업을 접는가 하면, 화물열차의 운행을 활성화하기로 결정하는 등 최근 프랑스와는 정반대 노선을 취했다는 점에는 전혀 주목하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역설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생디에 데보쥬역의 화물 창고는 완전히 방치된 상태다. 이미 식당가가 문을 닫은 지 오래인 생디에 데보쥬역의 역사 앞에는, 기차가 운행하지 않는 시간대가 되면 버스들이 줄줄이 대기해 승객을 실어 나를 준비를 한다. 이 버스들은 얼마 안 가 거북이걸음으로 도로를 채우는 저 끝없는 자동차와 트럭의 행렬에 합류할 것이다. 그리하여 인근 대도시와 보쥬 지역 간의 격차를 점점 높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 정부와 SNCF(화물트럭, 시외버스 사업 부문 포함)는 그동안 철도의 장점은 무시한 채 도로 공해만 가중시킨, 나쁜 선택을 해온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하튼 현 개혁안을 보면, 현재로서는 그다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글·브누아 뒤퇴르트르 Benoît Duteurtre
작가. 저서로는 『La Nostalgie des buffets de gare(기차역 식당가의 추억)』(Payot&Rivages·Paris·2015)이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1) Jean-Cyril Spinetta, ‘Rapport sur l'avenir du transport ferroviaire(철도교통의 미래에 관한 보고서)’, 2018년 2월 15일 필립 에두아르 총리에게 제출. 
 
 

 

“상관없다”
 
“(철도 노동자들의) 지위 종료가 신규 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될 거라고 언급했다는 점이야말로 뻔한 수작이다. 노동총연맹(CGT) 지도부는 정부 방침을 막을 정당한 구실은 찾을 수 없어도, 현재 철도 노동자들이 신규 노동자들이 입을 피해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프랑스 국무총리 에두아르 필리프의 이 발언을 보도한 <르 카나르 앙셰녜(Le Canard enchaîné)>(2018년 3월 7일 자)에 따르면, 총리는 자신의 계산에 흡족해하는 눈치다. 즉 현재 근무 중인 기존 철도 노동자들과는 ‘무관하므로’ 파업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 텔레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당시, 이미 개진된 정부 측 주장에 즉각 열정적인 반응들이 연이어 쏟아졌다. 『부유해진다는 것, 프랑스의 금기(Être riche, un tabou français)』의 저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에릭 브뤼네는 “여러분의 지위는 위협받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신규 노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라며 ‘연대, 단합, 민주주의(solidaires, unitaires, démocratiques/SUD)’ 대표에게 맞섰다(<라디오 브뤼네>, RMC, 3월 14일). 
한편 카날뉴스(CNews) 앵커인 파스칼 프로는 “총리의 발언은 현재 근무 중인 철도 노조원의 지위가 유지됨을 알려준다! 그러니 무엇이 문제인가?”라며 되물었다(2월 20일). 
과연 이런 논리는 어떤 관점으로 뒷받침해야 할까? 정부와 그 지지자들은 자신의 직접적인 이익 수호를 위해서만 집결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논리는, 보다 광범위한 목표를 설정하고 연대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굵직한 해방운동들의 근간이 됐다. 
앙드레 말로는 장 물랭(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운동을 이끌었던 전설적인 지도자-역주)에게 바친 유명한 추도사(1964년 12월 19일)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심오하고, 본질적이며, 천 년의 세월을 간직한 감정은 그가 강조한 이후 전설이 됐습니다. 나는 그렇게 그를 만났습니다. 독일인들은 코레즈의 한 마을에서 무장 지하단체 소속 전투원들을 살해한 후, 시장에게 동틀 무렵 비밀리에 그들을 매장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망자의 장례 때마다 여인들이 자신의 가족묘에서 참배하곤 합니다. 알자스인이었다는 것 외에는, 이 망자들의 신상에 대해 아무도 모릅니다. 농민들이 독일군의 총부리로 위협을 받으며 이들을 묘지로 운반했을 때, 바다처럼 밤이 빠져나가자 상복차림의 코레즈 여인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여인들은 산꼭대기부터 산 밑자락까지 가득한 고요 속에 미동도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그녀들은 각자 자기 가족의 묘에서 죽은 프랑스인들의 장례를 치릅니다. 전설이라 불리는 이 감정, 아마 이것이 없었다면 레지스탕스(오늘날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것은 아마도 쉽게 말해 ‘동포애’라는 불굴의 감정일 겁니다. 그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이런 동포애를 어떻게 조직해야 할까요?”이 질문은 지금에 와서 돌이켜도 생생하다. 
 
글·피에르 랭베르
 
 

 
 
열정
 
“공기업의 민영화는 보조금, 또 다른 소득의 재분배, 국가의 보장 축소뿐 아니라 공공 부채 감소에도 기여한다. 민영화는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함으로써 기업의 효율성과, 더 일반적으로는 경제 전반에서 경쟁력을 향상할 수 있다.” 
 
유럽위원회, 브뤼셀, 2012년 10월 30일
 
 

 
 
의심
 
“지역편중 해소, 민영화, 민관협동으로 인해 공채가 사채로 변환될 때 자금조달 비용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것들(지역편중 해소, 민영화, 민관협동)이 이런 높은 자금조달 비용을 상쇄할 만한 효율성을 창출할 수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지역편중 해소, 민영화, 민관협동을 지지하는 대다수는 민간 부문이 보다 효율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논리를 뒷받침하는 학술적 문헌들이 많지만, 그 이론은 모호하고 논거들에는 결함이 있다. 따라서 지역편중 해소, 민영화, 민관협동이 공공투자나 국가주도 서비스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결론짓기는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 워싱턴DC, 
2004년 3월 12일
 
 

 
 
교육
 
2018년 3월 20일, 세계 제4대 부호이자 경제 일간지 <레 제코(Les Échos)>지의 소유주인 베르나르 아르노는 “정부는 프랑스인들에게 민영화를 납득시켜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에두아르 필리프 정부는 공기업 매각 재개를 준비 중이지만, <레 제코>가 실시한 조사는 “프랑스인들이 기업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을 여전히 매우 중요시한다(65%)”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이런 공감대는 “거의 모든 정치무대를 통틀어 공통적이며, 장뤼크 멜랑숑 지지자들(75%)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지지자들(71%)까지, 심지어 프랑수아 필롱의, 자유주의 성향이 좀 더 강한 지지자들(58%)까지 아우른다.”
이런 ‘3인3색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조사를 담당한 설문조사기관 책임자인 브뤼노 장바르는 “선거운동 기간에 이 문제에 관한 공개토론은 없었고, 그 결과 에마뉘엘 마크롱의 의도를 이해시킬 설명도 부족했다”고 평했다. 언론은 이런 교육 부족 문제는 개선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아마 베르나르 아르노의 언론사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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