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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케이크메이커> ― 기억에서 망각으로, 용서에서 소통으로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케이크메이커> ― 기억에서 망각으로, 용서에서 소통으로
  • 서곡숙 | 영화평론가
  • 승인 2018.06.04 1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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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과 사랑의 상처와 치유의 여정

최근 전쟁과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여정을 그린 영화들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 합작 영화인 <프란츠>(Frantz, 2016)에서는 1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 남자 아드리앵이 자신이 죽인 독일군 프란츠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그의 약혼녀인 안나를 찾아간다. 얼마 전에 개봉한 이스라엘과 독일 합작 영화인 <케이크메이커>(The Cakemaker, 2017)에서도 독일인 토마스가 죽은 동성애 연인을 그리워하며 연인의 유대인 아내 아나트를 찾아간다. 이 영화는 파티쉐 토마스와 카페 여주인 아나트를 중심으로 유대인/독일인, 이성애/동성애 등의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 갈등과 섹슈얼리티 문제의 교차

<케이크메이커>의 전반부는 유대인과 독일인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독일인 토마스가 유대인 아나트의 가게에서 일하게 되면서 인물들의 내적, 사적, 공적 갈등이 불거져 나온다. 토마스에 대해서 유대인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오렌의 엄마, 아내 아나트, 아들 이타이는 우호적으로 대하고, 동생인 모티는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래서 전반부에는 토마스/모티, 아나트/모티의 갈등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기에서 가장 심하게 변하는 인물은 거부에서 수용으로 바뀌는 모티이다. 

내적으로는, 토마스와 아나트의 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때 두 사람의 갈등 이유는 상이하다. 아나트는 호감과 욕망을 느끼는 젊은 남자가 독일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머뭇거린다. 토마스는 죽은 오렌의 가족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느낀다. 

사적으로는, 토마스의 채용 문제를 둘러싼 토마스/아나트, 토마스/모티 간의 갈등이다. 아나트는 처음에는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아르바이트 채용을 꺼려하지만, 토마스의 성실한 근무 태도와 훌륭한 제빵 기술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 모티도 처음에는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토마스를 싫어하지만, 토마스로 인해 형수 아나트의 가게 손님이 늘어나고 자신의 엄마에게 친절한 토마스를 호의적으로 보게 된다. 

공적으로는, 코셔 인증 문제로 인한 아나트와 모티·랍비 간의 갈등이다. 코셔 인증이란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라 만든 식품에 대한 인증제도이다. 랍비가 기업을 방문하여 심사한 후 1년간 인증 자격을 주고 매년 재검증한다. 아나트의 가게는 많은 노력 끝에 코셔 인증서를 힘들게 따지만, 토마스가 만드는 제빵으로 인해서 코셔 인증 자격을 잃게 된다. 그래서 아나트는 맛있는 빵을 자유롭게 만들고자 하는 토마스와 유대인의 율법에 맞게 운영하라는 모티 사이에서 갈등한다.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아나트와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는 모티가 서로 갈등한다. 나중에 아나트가 코셔 인증 자격을 포기하고 토마스의 레시피대로 제빵을 하게 되면서 갈등은 일단락된다. 

<케이크메이커>의 후반부는 이성애/동성애와 부부/불륜 문제로 인한 갈등을 그리고 있다. 오렌과 토마스의 불륜 동성애 관계를 알게 된 인물들은 두 가지 태도를 보인다. 아나트는 고통스러워하지만 토마스에 대해 미련을 가지고, 모티는 분노하며 토마스를 쫓아내 버린다. 

처자식이 있는 유대인 오렌과 독일인 토마스가 동성애 관계를 맺지만, 두 사람의 내적 갈등이나 사적 갈등은 나타나지 않는다. 오렌은 아내와의 성관계에 대해서 토마스에게 이야기하고, 토마스는 그의 말을 듣고는 그 장면을 상상하는 등 둘 사이는 평온하다. 특이한 것은 오렌과의 동성애와 아나트와의 이성애를 동시에 보여주는 토마스에게 내적 갈등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마 그 이유는 바로 토마스가 죽은 오렌을 그리워하여 그의 가족을 만나고 그의 아내와 관계를 가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상 토마스에게 아나트와의 이성애는 바로 오렌과의 동성애의 대체물이다. 

한편 아나트는 토마스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보다는 남편이 자신과 아들에게서 떠나가게 만든 장본인이고, 토마스를 사랑하게 된 자신에게 그 사실을 숨겼다는 점 때문에 더 고통스러워한다. 아나트 자신이 직접 토마스에게 말하지 않고, 대신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던 모티에게 그 사실을 알려서 토마스를 떠나게 만드는 것은 바로 토마스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힘들어서가 아닐까?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토마스에게 가장 분노하는 인물은 모티이다. 모티가 토마스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토마스가 유대인을 학대한 독일인이고, 둘째, 자신의 형수에게 접근해 가족의 영역을 침범하는 젊은 남자이고, 셋째, 형이 독일인 동성애자와 불륜을 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티는 바로 자신의 민족적, 가부장적, 섹슈얼리티적 가치관을 훼손시킨 인물인 토마스에 대해 분노를 표출한다. 모티와 토마스 사이에서 민족적, 가부장적 이유로 인한 갈등은 해결되지만, 동성애와 불륜 문제는 끝내 해결되지 못한다. 


3. 일상생활의 공유를 통한 기억과 소통

<케이크메이커>는 인물의 사랑과 그리움을 음식에 대한 더블링과 클로즈업으로 표현함으로써 공유와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전반부에 토마스는 쿠키와 케이크로 오렌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오렌이 토마스의 카페에서 아나트가 좋아하는 시나몬 쿠키를 사고, 토마스가 추천하는 블랙포레스트 케이크를 먹는다. 토마스는 오렌과 자신을 연결해준 시나몬 쿠키와 블랙포레스트 케이크를 오렌의 가족에게 만들어줌으로써, 오렌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자신의 쿠키와 케이크가 계기가 되어 토마스는 오렌의 아들인 이타이와 소통하고 그의 아내인 아나트와 사랑을 나누게 된다. 토마스의 시나몬 쿠키, 블랙포레스트 케이크 등을 더블링을 보여줌으로써 오렌에 대한 사랑이 아나트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짐을 암시한다. 

후반부에 토마스는 오렌 엄마의 유대인 전통 요리로 오렌의 과거를 공유하고자 한다. 토마스는 오렌의 엄마가 만들고 가르쳐 주는 유대인 전통 음식인 샤밧, 감자라트스케 등을 먹고 배우면서 오렌의 과거를 함께 경험하고자 한다. 이러한 유대 음식으로 인해 토마스는 오렌의 엄마와 동생 모티와 소통하게 된다. 영화 내내 밀가루를 반죽하는 토마스의 손, 함께 쿠키를 만들다가 마주 잡은 토마스와 이타이의 손, 오렌 엄마의 부엌 선반 위 똑같은 병의 양념통 등 클로즈업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렇듯 독일인 토마스와 유대인 가족의 관계에서 소통과 공유를 더블링과 클로즈업으로 강조하고 있다. 

오렌의 옷, 성적 담론, 성적 관계 등을 더블링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인물들의 정체성과 욕망의 전이를 보여준다. 토마스는 오렌의 아내와 엄마가 준 오렌의 옷을 입고 오렌이 됨으로써 사랑하는 오렌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을 극복하려 한다. 토마스는 오렌이 들려주는 아내와의 성관계를 들으면서 오렌의 손길을 느끼고, 자신이 오렌처럼 그의 아내를 애무하면서 오렌의 공백을 메우고자 한다. 오렌이 아내와의 성관계를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토마스의 영상과 오렌의 사운드를 결합하는 가운데 카메라가 점점 토마스에게 다가가면서 이러한 동일시를 표현한다. 
 

4. 기억에서 망각으로

이전에 전쟁과 관련하여 민족이나 국가의 대립을 다룬 영화에서는 일방향적인 분노와 용서를 다루었다면, <프란츠>와 <케이크메이커>와 같은 최근의 영화는 쌍방향적인 갈등과 소통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영화로 인해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프랑스인과 유대인에게 전쟁의 끔찍한 고통을 주었지만, 독일인도 그에 못지않은 죄책감, 슬픔,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현재 존재하지 않는 프란츠와 오렌의 죽음이 남겨진 연인과 가족에게 계속된 고통을 주며 그 공백을 메우고자 하는 치유의 노력은 계속된다. <케이크메이커>에서 독일인을 둘러싼 유대인들의 갈등은 과거 고통스러운 역사와 죽은 오렌에 대한 기억/망각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독일인과 유대인이라는 민족적 갈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허용이 되지만, 동성애라는 섹슈얼리티 문제는 여전히 사회에서 배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 영화 - 케이크메이커 - 포토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미디와 전략』, 『영화와 N세대』등의 저서가 있으며, 현재 장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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