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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향의 시네마 크리티크] 프랜차이즈 히어로물의 진화와 확장-‘어벤져스: 인피니티 워(Avengers: Infinity War)’
[이수향의 시네마 크리티크] 프랜차이즈 히어로물의 진화와 확장-‘어벤져스: 인피니티 워(Avengers: Infinity War)’
  • 이수향 | 영화평론가
  • 승인 2018.06.0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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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MCU 프랜차이즈의 확장성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이하, <인피니티워>)는 어벤져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이하, MCU)의 10주년 기념작이다. 마블 코믹스의 방대한 시리즈들은 영화화되면서 아이언맨, 토르, 헐크,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등의 핵심 캐릭터를 중심으로 솔로무비들이 만들어졌고, 이후 캐릭터를 협업시킨 설정을 기반으로 한 어벤져스 시리즈(Avengers Assembled)들도 교차적으로 개봉되고 있다. 2008년 개봉된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가장 최근 개봉된 이 <인피니티워>는 MCU의 19번째 작품이며, 시기에 따른 구분으로는 3페이즈(phase)이다. 앞서의 시리즈들로 이미 MCU의 영화들은 워낙 탄탄하게 자리를 잡았고 대중적인 각인도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각 히어로들의 솔로무비도 인기가 있지만 특히 <어벤져스>시리즈는 갈수록 인기가 높아서 이번 <인피니티워>는 시리즈 최고 흥행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3일 기준 1110만을 훌쩍 넘는 흥행스코어를 기록중이다. 엄청난 물량공세가 특징인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 히어로물이 가진 대중성은 익히 알려져 있으나 MCU만의 특이성과 확장성이 가지는 유의미한 지점들이 있다. 

첫째, 마블(이 판권을 가진) 캐릭터가 나오는 각개의 영화들을 이어 마치 하나의 세계관처럼 엮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굉장히 특이한 지점인데, 기존의 히어로물들이 속편이 나오더라도 해당 캐릭터의 설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스토리를 구성하는 것에 비해 MCU의 경우에는 개별 캐릭터들이 서로 다른 솔로 무비에도 종종 출몰하며, 어벤져스 시리즈로 묶여서 나오는 경우는 아예 큰 틀에서 스토리 라인이 이어져 있다. 이는 이 시리즈물에 대한 관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킬링타임용으로 영화를 소비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각 캐릭터의 특징과 기존 영화에서의 역할을 새 시리즈와 유연하게 연결시키면서 관객 나름의 능동적인 영화보기의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특히 시리즈가 점점 많아지면서 인물들이 점점 더 다양하게 엮이고 있어서 새로 나온 영화를 보려면 이전 시리즈의 캐릭터나 설정 정도라도 파악을 해야 이해가 가능한 경우도 종종 생긴다. 전편의 중요한 포인트와 흥미로운 지점들이 새 시리즈에 분산되어 흩뿌려져 있을 때 이미 시리즈에 대한 정보가 많이 쌓인 관객과 그렇지 않은 관객의 영화에 대한 집중도와 호응의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이라도 MCU를 즐긴 관객이 되면 그 다음 솔로 무비나 어벤져스 시리즈를 보기가 훨씬 용이해지며 이렇게 쌓은 영화에 대한 신뢰도는 충실한 MCU의 고객이 되도록 만든다. 


둘째, 익히 알려진 히어로물의 권선징악적인 단순한 도식에서 나아가 캐릭터의 측면에서 좀 더 층(layer)을 쌓는 방식으로 구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히어로물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존재와 임무, 사람들의 기대와 비난 사이에서 고민에 휩싸이게 되는 경향을 보이는 다크 히어로(Dark Hero)적인 특징은 D.C.의 <배트맨> 이후 꾸준히 등장하여 이제는 진화된 히어로물의 기본 공식이 되고 있다. MCU에서도 특히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으로서의 자신과 동료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는 설정들이 틈틈이 등장하고 있고, 캡틴 아메리카 역시 영웅으로서의 위치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내비친다. 마찬가지로 헐크는 종종 배너로서의 자신과 헐크로서의 자신의 내면적인 갈등을 드러내기도 한다. 즉, 히어로들을 단순하고 낭만적인 목표를 가진 평면적 캐릭터들이 아니라 갈등하고 회오하는 지각의 주체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캐릭터에 좀 더 입체감을 부여하는 이러한 방식의 설정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움직이는 히어로물의 극적구성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나아가 여러 명의 영웅들이 등장하는 MCU의 경우, 개별 인물들의 선의에 의한 선택이나 행위가 오히려 갈등과 문제의 기폭제가 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진행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므로 원작 코믹스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이 충분히 솔로 무비를 감당할 만한 매력과 소구력이 있다는 장점을 살려서 어벤져스 무비에서는 캐릭터들의 앙상블을 통해 더 연결가능성 높은 세계관과 내용적 층위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특히 이번 <인피니티워>가 가지는 특이성은 익히 알려진 서사적 공식을 비틀어내어 좀 더 확장성있는 세계관을 구축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빌런 프로타고니스트

영화의 장르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구분하는 공식들이 생겨난 것은 제작의 주체와 관객 양측면에서 모두 기대 가능한 형식이나 내용에 관한 안정화된 모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히어로물들은 악에 맞서 싸워 지구를 지킨다는 아주 단순한 서사적 공식 위에서 유지되는 영화이다. 관객은 히어로의 고생이 이어지더라도 이것이 대의를 위한 것이며 곧 다가올 승리를 위한 갈등의 제스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아이언맨>이든, <토르>이든, <헐크>이든 마찬가지이다. 히어로물의 가장 중요한 공식은 결국 영웅은 승리하고 악인(빌런)은 처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험영화나 예술영화처럼 관객의 차가운 관조를 목적으로 하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영웅이 패배하거나 죽거나 하는 경우는 익숙한 오락적 공식을 바라는 관객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 그런데 <인피니티워>는 이러한 관객의 기대지평을 결국 배신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히어로가 죽는 서사는 히어로물의 종결을 의미하는 바가 아닌가. <인피니티워>에서는 기존의 공식을 뒤엎는 것으로 새로운 히어로물의 차원을 열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 등장한 타노스가 처음 토르와 로키 일행들에게 건넨 대사는 ‘패배lose’에 대한 것이다. “I know what it’s like to lose. To feel so desperately that you’re right, yet to fail nonetheless.” 타노스는 그들이 옳다고 필사적으로 느끼면서도 결국은 패배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는데 영화의 결말을 미리 앞질러 암시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어벤져스 무리들의 패배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히어로물 일반의 공식 자체를 위반하게 될 것임을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반복되는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일회차로 끝나는 악인의 위협은 점점 매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에 그간 암암리에 거악으로서의 존재로 내비쳤던 타노스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이 영화의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는 자리를 바꾼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타노스라는 거대한 악인이 인피니티 건틀렛을 완성하기 위한 스톤 5개를 모으기 위한 과정이 ‘중핵 서사’인 영화이며, 이를 저지하기 위한 히어로들의 방어가 ‘위성 서사’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영웅-중심인물/악인-보조인물의 ‘위계hierarchy’가 도치되어 구성된다는 것이 문제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MCU의 쿠키영상이 항상 후속작에 대한 힌트를 주면서 “The Avengers Will Return.”이라고 나왔었는데, <인피니티워>에서는 “Thanos Will Return.”으로 어벤져스의 자리에 타노스를 놓는 부분도 영화 전체의 의도와 잘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빌런 타노스의 전사(前史)와 스톤들을 모으려 하는 동기, 목표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어 그는 히어로들 보다 훨씬 더 영화 속에 자세히 설명되는 입체적인 인물이 된다. 그가 스톤을 모으려 하는 동기는 멜서스의 ‘인구론’과 비슷한 관점에서 기인한 것인데 유한한 우주의 자원 고갈을 방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개체수를 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이는 <설국열차>의 매이슨 총리의 연설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타노스를 설명하기 위해 그가 어린 가모라에게 ‘완벽한 균형’에 대해 역설하는 장면도 추가된다. 특히 그가 보르미르에 있는 ‘소울 스톤’을 모으기 위해 사랑하는 대상을 희생으로 바쳐야 한다는 말을 듣고 가모라를 죽이는 장면과 이후의 그의 환각 속에 나타난 가모라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빌런에 대한 묘사보다는 고뇌하는 주인공의 그것과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패배하는 히어로들

강력한 빌런 타노스에 맞서는 어벤져스의 진영은 이전 시리즈에는 나오지 않았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 무리들과 닥터 스트레인지, 블랙 팬서, 윈터 솔져, 스파이더맨까지 총출동하여 과연 마블 10주년 기념작다운 위용을 보여준다. 이 많은 히어로들의 등장은 MCU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 마블 캐릭터와 세계관의 집대성으로서 즐거움을 주며 영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등장인물 때문에 구성상 난삽해 보일 수 있는 부분을 방지하기 위해 크게 세 가지의 상황으로 인물들을 나누어 놓았다. 먼저 토르와 로켓, 그루트 등은 니다벨리르로 가서 스톰브레이커를 얻고,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닥터 스트레인지, 가오갤의 스타로드 등은 타이탄에서 타노스와 맞붙으며, 최후의 결전지인 와칸다에서는 블랙팬서와 비전, 캡틴 아메리카 등이 싸움을 벌인다. 

 타노스의 자원 효율성론에 반기를 드는 히어로들의 논리는 숫자로 치환될 수 없는 생명-목숨의 소중함에 대한 윤리적 역설이라고 할 수 있다. 스파이더맨이 이웃들이 있어야 자신의 존재가치가 있다며 돕겠다고 나서는 장면이나, 캡틴 아메리카가 죽음을 무릅쓰는 비전에게 “We don't trade lives."라고 말하는 장면이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의 엔딩이 충격적인 것은 히어로들의 이 모든 선의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그들이 타노스를 막는 데에 실패해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닥터스트레인지는 타임 스톤을 이용해서 1400만 605개의 미래를 보고 그중 자신들이 승리하는 미래는 하나뿐이었다고 하며 타임 스톤을 넘긴다. 그가 “We're in the end game now.이게 최종단계야.”라고 말한 것은 후속작에서 어벤져스들이 살아남을 명분을 위한 것이지만, 어쨌거나 실패를 해야 이길 수 있다는 것, 그 아이러니함 자체가 기존의 히어로물의 공식을 뒤집은 것이 된다. 이를 표현하는 방식 또한 흥미로운데, 타노스가 핑거스냅을 하자마자 거대한 진공상태가 되면서 타노스의 진짜 내면을 묻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리고는 핑거스냅이 위력을 미치는지 불분명해서 의아해질 무렵, 와칸다에서는 버키를 시작으로 블랙 팬서, 스칼렛 위치, 그루트 등의 몸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타이탄에서는 드랙스, 맨티스, 스타로드, 닥터 스트레인지, 스파이더맨 등도 사라진다. 마치 불에 탄 종이처럼 검은 재로 변하며 히어로들이 사라지는 장면은 꽤 충격적이다. 타노스의 건틀렛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의 의도대로 인구의 절반을 날려버리는 장면인 것이다. 쿠키영상에서도 마리아 힐과 닉 퓨리가 차례로 사라진다. 다만, 닉 퓨리가 누르던 호출기에서 캡틴 마블의 로고가 뜨면서 다음 편이 이어질 것임을 미리 예고한다. 

<인피니티워>는 기존의 히어로물의 공식을 비틀면서도 그 세계관을 확장한다. 물론 이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해서 충성도가 높은 팬층을 만들어내면서도 반대로 이 프랜차이즈 영화의 진입 장벽을 높이게 만드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액션과 볼거리의 킬링 타임용 장르가 안전하게 대중적 코드로 관객을 포섭하는 대신 기존의 공식을 뒤집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히어로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진화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이 확장된 세계관을 통해 마블 10주년이 자축의 잔치만이 아니라 다음 10년을 준비하기 위해 칼날을 벼르고 있는 중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수익 창출을 위해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대중들을 기분 좋게 길들일 뿐이라고 때때로 저평가 받는 헐리우드 히어로물이 진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본과 대중이 움직이는 곳에서 기술적-내용적 새로움이 시도되는 측면은 결국 영화라는 매체가 제작사나 감독 등 창작자만의 것이 아니라 관객본위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어벤져스: 인피니티워>
* 이수향: 영화평론가. 2013년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수상, 웹진 문화다 편집 동인. 공저로 『영화광의 탄생』(2016), 『1990년대 문화 키워드 20』(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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