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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Her'을 통해 몸과 젠더정체성을 생각하다
영화 'Her'을 통해 몸과 젠더정체성을 생각하다
  • 조가원
  • 승인 2018.06.29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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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폰에는 시리라는 게 있다. 시리야, 하고 부르면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대신 찾아보고 알려주는 가상의 인물이다.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해 주기도 하고 내 취향에 맞는 노래를 찾아서 들려주기도 한다. 시리를 설정할 때 사용자는 시리의 국적은 물론이고 성별까지도 선택할 수 있는데, 시리에 자신이 원하는 인물상을 투영시킬 수 있는 셈이다.


 시리가 단순히 사용자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응하는, 혹은 응해야 하는 존재라면 영화 <Her>에 등장하는 사만다는 높은 학습 능력으로 폭넓은 쌍방 소통이 가능한 운영체제(OS)다. 그렇지만 이 둘 모두 사이보그 혹은 포스트 젠더에 해당하는 존재다. 어느 정도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지만 완벽한 인간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Her>속 사만다는 결국 가상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학습능력으로 주인공인 시어도어와 사랑이라는 감정을 공유하기까지 하며 ‘인간스러운’ 사이보그의 전형을 보여줬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시어도어라는 실제 인간이 가상 인간인 사만다에게 진실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유사성행위를 통해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우리가 시리의 성별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듯, 사만다는 초기 설정 시에 여자가 아닌 남자로 그려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남자로 그려졌다고 해서 시어도어가 자신의 OS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시어도어가 사만다를 사랑하도록 만든 것은 성별이 아니라 따뜻함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여자라는 성별보다도 ‘사만다’로 명명된 OS가 그에게 주는 관심과 애정, 소통의 가능성이 그 둘의 사랑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 안에서 사랑의 필요조건인 ‘몸’의 존재와, ‘일반적인’ 사랑의 필요조건인 ‘이질적인 젠더 정체성’의 담론이 모두 해체되기 시작한다. 영화 <Her>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가 바로 그 해체성이다.


 사만다의 몸이 실재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녀’의 성별을 인식하게 된다는 사실은 사회적으로 젠더 정체성이 구성돼 있음을 의미한다. 생물학적이고 물리적인 ‘몸’ 이라는 증거가 부재하더라도 젠더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젠더를 구성하던 물질적 육체성 개념의 해체, 즉 ‘탈육화’를 목격한다. 이 해체성은 현재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이버 공간 상의 젠더 스와핑을 통해 엿볼 수 있는데, 그것이 가능한 것은 사만다가 존재하는 사이버 공간이 유동성을 전제로 한 이미지 생산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사만다로 불리는 OS가 <Her>에서 그러했듯, 사람들은 이제 사이버 공간 속에서 그 자체로 사이보그가 되어 다양한 존재로서 타인과 소통하며 편재할 수 있다. 사실 시어도어도 그의 직업 때문에 사이보그로 구분 될 수 있다. 편지를 대필하는 일을 하면서 그 편지가 쓰이는 온라인 공간에서 가상의 인물로 분함으로써 타인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몸’이 더 이상 물질적인 육체성을 띄지 못하고 젠더 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새로운 공간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트렌스 젠더의 적용 경계가 단순히 신체적인 전환을 의미하는 것을 뛰어넘어 특정 공간 속 자아의 젠더적 전환으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이 영향은 가상적 공간인 사이버 세계를 넘어 현실 세계로도 퍼질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최근 활발히 논의됐던 젠더플루이드가 이를 증명한다.


 영화 <Her>은 이처럼 생물학적인 몸의 필요성 혹은 중요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함으로써 일반적이지 못한 사랑, 이를테면 동성애와 같은 사랑의 ‘일반화’에 대한 이해 가능성을 암묵적으로 열어 두기도 한다. 사랑의 적용 범위가 넓게는 ‘인간’의 범위를, 좁게는 ‘이성적 존재’의 범위를 뛰어넘어 무한정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만다가 여자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 남자였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고 해서 시어도어와 사만다의 관계의 깊이가 달라지는가? 신체적인 특징이 없는 존재 앞에서 성별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여성의 목소리’라는 정체성만 남아있을 뿐이다. 더 나아가, 사만다라고 불리는 OS는 어떤 사람에게는 제이슨 같은 남성의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가 되어 있을 수 있다. 초기 설정이 달라지면 OS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젠더 정체성이라는 것은 실제적인 몸의 형태와는 무관하게 개인이 스스로에게 부과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특정한 젠더 정체성은 특정한 성별과 무조건적으로 연결되곤 하는데, 이는 사회가 개인에게 강요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부당하다. 이런 의미에서 한 인간이 역시 자신과 비슷한 신체적 특징을 가지는 개인을 사랑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결국 동성애를 ‘이반’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입장은 도나 해러웨이가 주장했던 사이보그의 메타포에 의해 무력해진다.


 물론 시리가 <Her>의 사만다의 수준에 도달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사만다 수준의 인공 지능을 개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예측하기도 한다. 당장으로서는 제대로 된 대화도 이어가기 어려운 시리와 사랑에 빠지게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등장이 우리 사회에 갖는 함의는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여러 당위적 이분법을 인식하게 하고, 그것을 고쳐나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사이보그의 출현이 두렵지만은 않은 이유다.


글‧조가원
칼럼니스트. 작금의 문화 그리고 예술에 대하여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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