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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섭의 시네마 크리티크] 무주가 세월호를 애도하는 방식 ― 제6회 무주산골영화제의 한국영화들
[정동섭의 시네마 크리티크] 무주가 세월호를 애도하는 방식 ― 제6회 무주산골영화제의 한국영화들
  • 정동섭 | 영화평론가
  • 승인 2018.07.09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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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많이 있습니다.

1. 놀라운 생존력, 무주산골영화제

2018년 올해로 무주산골영화제는 벌써 6회를 맞이했다. 인구 180만의 전라북도. 그리고 ‘무진장’으로 알려진 무주와 진안, 장수. 산간에 위치한 이 세 개 군(郡)은 농도(農道) 전북 내에서 오지로 이름이 높았고, 근대화와 탈근대의 시대를 통과하면서도 낙후의 이미지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예전 같으면 산으로 둘러싸여 육지의 섬처럼 고립됐던 이 산골에 고속도로가 놓이면서, 그나마 교통이 원활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극장은 단 한 개도 없었다. 그런 무주가 6년 전 영화제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다음 해를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매해 마지막의 각오로 개최했던 무주산골영화제. 많은 영화제가 훈장처럼 달고 있는 ‘국제’라는 타이틀 대신 무주는 ‘산골’을 표방했다. 겸손하면서도 지역을 부각하는 당당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무주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시골스럽지 않았다.

2. 주목할 만한 한국장편영화들

총 27개국에서 온 77편의 영화들이 상영됐다. 그리고 한국장편영화경쟁부문에 총 아홉 편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청년 감독들이 연출하는 많은 작품 속에서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대부분 방황하고 아파하며 삶을 힘겨워하고 있었다. 별다를 것도 없다. 젊은이들이 어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고통과 실패와 좌절이라는 필수코스는 동서고금의 진리이니.

 

2018년 무주에서는 많은 영화가 ‘물’과 ‘죽음’을 연결하며 잊을 수 없는 사건을, 그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있었다. 적지 않은 아이들이 물에 빠져 죽고 있었다. <한강에게 To My River>(박근영, 2018)에서 애인을 잃은 여주인공은 슬픔과 상실감이란 것이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일상에서 새록새록 마주치는 기억과 슬픔들. 불행의 당사자들과 비교할 때,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은 아무 일 없음을 통해 죄책감을 만난다. 그리고 그 죄책감을 극복하는 것이 죄스러워 그냥 그 고통을 그대로 수용하기도 한다. 그녀가 마지막 장면에 “그의 말이 떠오르고 / 떠오르는 모든 것을 미워했다. / 다음 말을 골라야 했지만 / 물길이 높아져 있었다.”라고 자신의 시를 낭독할 때,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 그러자 나는 나 자신이 미워졌다.”라는 브레히트의 시구가 떠올랐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며 TV를 보던 그 날의 기억이 미안함이 되어 떠올랐다.

 

<죄 많은 소녀 After My Death>(김의석, 2017)는 한 발 더 나갔다. 여고생 경민의 죽음은 그녀가 좋아했던 급우 영희를 용의자 또는 자살을 부추긴 당사자로 지목하게 만든다. 경찰과 학교는 각각 책임 전가와 조직의 안전을 위한 방어 논리 하에 진실을 밝히려 하지도, 영희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사건의 한 가운데서 영희는 희생양을 찾는 반 친구들의 먹잇감이 된다. 친구의 죽음은 자살이며 영희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음이 밝혀지지만 이미 그녀는 많은 것을 잃은 후의 일. 이제 죄책감은 또다시 공기 속에 떠돌고, 사람들은 새로운 희생자를 찾아 나선다. 영희는 다시 돌아왔지만, 목소리를 잃은 그녀가 급우들 앞에서 수화로 한 말(“나는 여러분이 그토록 원하던 나의 죽음을 완성하러 왔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가장 멋지게 죽고 싶습니다.”)은 또다시 이해되지 못하고 비극과 희생은 계속된다. 이 작품은 한 소녀의 죽음이 불러일으키는 죄의식과 책임감을 토대로 우리 사회의 이기적인 현실을 드러낸 수작이었다. 우리 모두의 윤리의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관객을 공포의 한쪽 구석으로 몰아세우는 감독의 구성력과 스토리텔링이 배우들의 열연과 어우러져 놀라운 흡입력을 발휘했다. 미스터리 형식의 비선형 구조도 지극히 당연하고 논리적인 외피였다.

 

 

<살아남은 아이 Last Child>(신동석, 2017) 역시 물에 빠져 죽은 소년을 소재로 한 작품. 자식을 잃은 고통 앞에서 그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부모의 처절함이 작품을 이끌어 간다. 그러나 그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진실을 원치 않는다. 진실은 또다시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고, 비효율적인 것이었다. 보상금 받고 잘 끝났는데 뭐가 억울하다고 이 난리냐며, 또는 이제 그만하라고, 지겹다고 말하는 저들의 폭력 앞에서 뿌리 뽑히는 평범한 부모의 삶. 그런데 이 작품은 상실과 죄책감을 뛰어넘어 애도와 용서를 이야기하기도 했고, 그러다가 다시 진실의 인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결국 진실이었다. 그래서 <살아남은 아이>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세월호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나아갔다.

3. 세월호 ... 그리고 <초현실>

다큐멘터리 <초현실 The Real>(김응수, 2017)은 이러한 작품들 중 가장 정직하게 고통을 길어 올리는 작품이었다. 단원고 2학년 5반 김건우는 대학에 영혼 입학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따라 MT에 가서 아들의 친구들 속에서 아들을 추억한다. 사랑한다. 그리워한다. 안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빛나는 젊은이들 가운데 아들은 없다. 초현실처럼 믿기 어려운 이 현실(the real)의 잔잔한 이야기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그리움과 사랑의 고백이지만, 69분 동안 관객을 불편함 혹은 고통으로 밀어붙인다. 사랑은 속삭일수록 좋지만, 고통은 직선이자 절규다.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래서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과 다도해(多島海), 그리고 ‘학살자 이 나라, 너무 아름답구나.’라는 노골적 표현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미덕은 형식에도 있음이 분명하다. 바흐의 아다지오 단 한 곡의 음악만을 사용하지만, 대부분은 침묵으로 구성된 절규와 흐느낌 그리고 자막으로 처리된 가슴 저미는 에세이. 가장 훌륭한 형식은 그 내용을 오롯이 담아내는 것임을 믿기에 이 실험적인 형식과 내용에 박수를 보낸다.

제6회 무주산골영화제의 개막작은 1972년 신상옥 감독의 <효녀 심청>을 각색한 퓨전 음악극 <AASSA, 필름 심청>이었다. 열여섯 살 나이에 물에 빠져 죽는 심청의 이야기를 개막작으로 선택한 것은 우연이었을까, 아이들의 부활에 대한 바람이었을까.

 

아마도 기억 혹은 추억은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폭력이 아닌 기록이 있는가. 모두를 화평케 하는 역사가 있는가. 무주에서 영화는 힘겹게 기록이 되고, 아프게 역사가 되었다. 2018년의 무주는 2014년의 슬픔을 잊지 않았다. 의식 또는 무의식의 세계를 통해, 2018년의 무주로 하여금 2014년을 애도하게 한 모든 작품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아울러 이 소중한 자유의 시간에 검열 없이, 보다 가벼운 혹은 치열한 작품들이 앞으로도 무주산골영화제를 풍성하게 해 줄 것을 기대한다.

 

* 사진 출처: 네이버 - 영화 – 포토

 

글: 정동섭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연구자. 현 전북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돈 후안: 치명적인 유혹의 대명사』, 『20세기 스페인 시의 이해』, 『영화로 보는 라틴아메리카』등의 저서와 『바람의 그림자 (전2권)』,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돈 후안 테노리오』, 『스페인 영화사』, 『스페인 문학의 사회사 (전5권)』 등의 번역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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