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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 영화제: ㅡ 틀 속에 갇혀 죽은 영혼에게 생명을 되돌리는 ‘시의 임재’
이봄 영화제: ㅡ 틀 속에 갇혀 죽은 영혼에게 생명을 되돌리는 ‘시의 임재’
  • 남유랑(영화평론가)
  • 승인 2018.07.11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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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모든 영혼들은 저마다의 고유한 무게와 밀도 그리고 색감과 진동의 주파수를 갖는다. 하지만 제도화된 사회는 존재자들의 다성적 특질들을 쉽게 용인하기가 힘겹다. 그 모든 것을 고스란히 포용하기 위해선 결코 만만치 않은 에너지가 필요한 까닭이다. 쉽게 말해 비효율적이란 뜻이다. 따라서 현실은 관리의 용이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도 표준화의 전략을 동원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표준화 작업을 대리 수행하는 대표적인 기구가 바로 교육시스템이다. 
 
사회전체의 지형도를 짜임새 있게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하고 정교한 기계구조로 치환하고자 하는 현실원리의 욕망과, 그 기계도식 속에서 모쪼록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핵심 부속들을 생산해내고자 하는 교육의 욕망은 긴밀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런 이중의 욕망 속에서 마치 샌드위치처럼 끼인 채 자신의 본연한 존재다움을 잃어가고 있는 이들이, 소위 명문학교 웰튼의 아이들이라 하겠다. 웰튼으로의 입학은 스스로의 이름에 괄호를 치겠단 선언이기도 하다.
 
이로써 자기에게만 허락된 독특한 ‘있음’의 차원은 무엇이 ‘되기’의 차원 속으로 떠밀려 사그라진다. 적확하게 틀 짜인 그리고 그 속에서 명확히 위치 잡힌 지식의 형질들만을 오랜 시간에 걸쳐 흡수하고 익히는 동안, 자신의 본모습은 사라지고, 어느덧 내 가면을 쓰고 있는 모종의 역할들만 남게 된다. 거부하며 항거하고 싶어도 그 방법을 모른다. 그러니 소극적인 반항의 자세밖엔 취할 게 없다. 본래의 내 모습을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기에, 이제 그것을 돌려달라고 외칠 수도 없는 것이다. 예술 작품의 풍부한 생명을 말소시킨 채 다만 그것을 낱낱의 부분들로 분절하여 인식하고 이해하는 철저히 기계화된 예술 교육을 시행하는 것 역시, 혹여나 영혼의 목소리를 자각하게 될까 우려하는 모습과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보긴 좀 어렵다.
 
그러니 새로운 영어선생의 존재가 교육당국의 눈에 가시인 건 당연하다. 그의 목적은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넘치는 고유성과 약동하는 생명력을 되돌려주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키팅은 아이들이 그간 내면에 깊이 유폐되었던 영혼의 시에 부대끼도록 하며, 더 나아가 시로서의 삶을 살아낼 수 있기를 적극적으로 권면한다. 그런 이유로 그가 취한 교육의 방법이란 것 역시 다소 특이할 수밖엔 없다. 선생은 이미 생산성을 상실한 채 단단하게 굳어버린 정제된 지식을 아이들의 머릿속에 주입하는 일을 한사코 거부하고 배격하며, 실제로 그들의 몸과 맘, 그러니까 생생한 경험지평 속으로 시적인 것을 호명해 들이는 눅진한 체험의 현장 한 가운데 아이들을 끌어간다. 나아가 물화된 사고와 정해진 체계에 가둬져 포섭되지 않으려는 새로움의 투쟁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시적인 것을 간직하고 계속해서 일깨우는 일임을 가르치기도 한다. 더불어 아이들이 서로를 통해 영혼의 다양한 모습을 비춰보도록 응원함으로써, 시적인 것의 실로 넉넉한 포용력과 또 무한한 열림으로의 가능성을 지각하도록 독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의 교육당국과 제도는 일련의 일들을 좀처럼 용납하기 어렵다. 따라서 다시금 튼실하고 견고한 의미구조 속으로 모든 탈구된 것들을 그러모아 되돌려놓으려는 재-상징화의 전략이 불을 뿜어낸다. 허나 유의미한 효력을 얻어내진 못한다. 이미 존재론적 비상과 자기고양을 경험한, 요컨대 이전과 전연 다른 삶의 형식을 갖게 된 이들을 아무리 억압해본다 한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순 없다.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쫓아낸다고 해도 결코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도리어 비로소 자신의 고유한 색을 찾게 된 이들이 여기저기에서 산발적으로 미광을 비추이며 예측불능의 존재감을 뿜어냄으로써, 거대한 폭력적 힘의 역사를 능히 무력화할 터이다. 나아가 끊이지 않을 빛들의 변증법이 제 스스로 견실함을 자임하는 제도의 욕망아래 매설된 허구성과 불안정성을 밝히 드러냄으로써, 더 나은 세계를 꿈꿀 변화의 불씨를 제공하리라. 
 
 
재개봉일: 7월 17일(화) 저녁 7시
장소 : 이봄씨어터 (신사역 가로수길_문의 : 070-8233-4321)
 
글 : 남유랑
평론가.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 당선 및 2017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현재 남병수라는 이름으로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논문이나 에세이 등속의 영역들과 구별되는 지점에서 '과연 비평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감당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에 답하려고 늘 고민하는 중에 있다. 이를테면 비평의 비평다움 내지는 비평의 고유한 위치에 대한 문제설정이 삶의 중요한 화두인 셈이다. 더불어서, 정치철학적 거대담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구원과 새로운 유형의 혁명을 호명해낼 가능조건으로서의 예술에 관하여 치열하게 사유하는 노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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