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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호우경보
[안치용의 프롬나드] 호우경보
  • 안치용 / 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18.08.28 2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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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재채기를 했다. 가을인가? 콧속에 약간 둔중한 느낌까지, 여름이 떠날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나는 진즉에 떠나보낼 준비를 마쳐두었다.

 

글빚을 갚느라 늦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열어놓은 창문 밖으로 빗소리가 요란하여 자다 깨다 하였다. 개 한 마리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선에 몸을 일으킨다. 물을 마시고 외출용 반바지로 갈아입고 모자를 쓰는 동안 어느새 두 마리로 늘어난 개들이 빨리 나가자고 성화다.

 

여름 나느라 깎아놓은 털이 아직 덜 자랐다. 예상 못한 강한 빗줄기가 털을 거쳐 몸에 스미자 개들이 당황한다. 개들은 아직 여름을 떠나보낼 준비를 마치지 못한 모양이다. 나의 개들은 몸을 털어 몸에서 물기를 털어내느라 분주하다. 꽤 넓은 처마 밑이나 정자 밑을 놔두고 굳이 한데서 비 맞으며 부산을 떤다. 개똥이 물에 젖었다.

 

한동안 밀쳐둔 알레르기 약통을 찾는다. 쌀알만 한 하얀 알약 하나로 이제 나는 출근 준비를 마친다. 하루는 온전히 비에 젖는다. 아침 공원의 나의 개들과 달리 나의 하루는 한껏 머금은 비를 털어낼 생각조차 않는다.

 

어느 남쪽 도시는 적잖이 침수됐다고 한다. 서울의 중랑천엔 홍수주의보가 내려졌다. 술집 모든 자리에서 일제히 핸드폰이 울렸다. 빨리 귀가하라는 국가의 친절. 어차피 술을 먹었고, 길이 젖었으니, 갈 요량이면 차를 두고 기야 한다.

 

전철역을 나서니 하늘에 구름이 가득한데 빗방울은 현저히 줄었다. 접어놓은 채인 우산을 그 상태로 들고 지하철 출구를 나선다. 조금 걷자니 아침의 공원이다. 개 없이 잠시 홀로 공원을 걸어본다. 하늘은 푹 젖지 않았지만 벤치는 흥건하다. 어차피 앉을 생각이 없었다. 공원 운동기구를 몇 번 천천히 움직여 본다. 플라타너스의 잎들이 무거워 보인다. 여태껏 너무 많은 번민을 이고 살았나 보다. 빗방울이 굵어진다. 여름에게 작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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