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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정권의 우클릭
촛불 정권의 우클릭
  • 성일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18.08.3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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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나 하고 싶다. 직업상 신문을 꽤 많이 읽는 편인데, 요즘 중앙일보를 읽으면서 활자 곳곳에 밴 기업 논리에 새삼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이 신문의 솔직한 지면 구성에 경탄한다. 이른바 진보매체들에서는 문재인 정권과의 친밀감을 표시하기 위해서인지 친재벌이나 친삼성 같은 문재인 정권의 우클릭 정책을 알면서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지만, 중앙일보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말해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월호 마감일인 8월 28일 자 중앙일보만 해도, 주요기사 제목이 문재인 정권의 공식입장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동연 ‘소득성장, 고용에 부정적 영향 혼재돼 있다’”, “생활 SOC 이름 붙였지만, 문 정부도 결국 SOC로 경기부양”, “정성호 국회기재위원장, 최저임금 과속도 일괄적용도 안 된다.”
 
문정권은 촛불시민혁명 훨씬 이전부터 최저임금 인상, 소득성장, 인위적 경기부양 배제 등을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정권의 실세들이 어긋난 발언을 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팩트를 왜곡한 것일까? 진보 매체들이 문 정권의 노골적인 우향우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을 때 중앙일보가 정확한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셈이다. 촛불시민혁명의 바람대로 문 정권이 등장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는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출발한 자유한국당이 정권을 잡은 것과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특히 6.13지방선거 이후 본격화한 청와대, 정부 여당의 경제 우클릭은 두드러진다. 문 정권이 추진하는 ‘인터넷 전문은행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지배 차단)’ 규제 완화는,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기 위한 금산분리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반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정부·여당은 인터넷 전문은행의 산업자본 주식보유 한도를 4%에서 25~34%로 확대하고 자산 10조 원 이상 총수 있는 재벌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ICT 기업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방안 등을 야당과 협의 중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금융회사의 사금고화 우려가 총수 있는 재벌만의 문제는 아니며, 혁신경제의 이름하에 이미 충분히 영향력이 있는 ICT 대기업까지 허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에 문 정권이 처리하기로 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경우, 계약갱신 요구권 기한, 보증금 및 월세 인상률 제한 여부 등을 놓고 자유한국당의 입장차가 크다. 게다가 통신비 경감을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소비자권리보호에 필요한 징벌적 손해보상제 확대와 집단소송법 개정건은 아예 여야 협상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 의지 부족인가, 아니면 현실적 한계인가? 
 
문 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우려는. 우선 정책 집행자들의 전력 탓이다. 과거 관료들이 지금에도 중용돼 ‘창조경제’를 ‘혁신경제’로 이름만 바꿔 규제 완화를 부르짖고, 정치권 역시 김진표, 송영길, 이해찬 같은 시장 만능론자들이 득세하며 우클릭을 주도할 기세다. 
 
이제 청와대 내에 개혁적 경제학자는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기업 논리에 충실한 경영학과 출신이거나, 아예 문외한이면서 본인이 경제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수준이다. 초기엔 캠프의 정책을 담당했던 학자들이 많이 등용됐지만, 2년 차부터 보수성을 띤 당료와 관료로 빠르게 교체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혁도 후퇴할 가능성이 커진다. 촛불 시민혁명의 대의가 점차 시들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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